여기는 스포츠가 공용어입니다.


❝스포츠에서 유일한 것이 승리라면 이기는 그 순간 다시 경합을 벌여야겠다는 욕구는 사라질 것이다. 그렇다면 마이클 조던과 로저 클레멘스가 나이 마흔에 계속 경쟁을 벌였던 사실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 '소크라테스 야구장에 가다' 中에서

32년 넘게 육상 여자 100m 세계 기록을 지키고 있는 플로렌스 그리피스조이너. 동아일보DB

7월 21일(이하 현지시간) 막을 올릴 예정인 2020 도쿄(東京) 올림픽 종목은 총 33개입니다.

 

이 가운데 성별 구분 없이 참가할 수 있는 종목은 딱 하나 승마뿐입니다.

 

나머지 종목은 남녀 사이에 운동 능력 차이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트랙'을 나눕니다.

 

예컨대 현재 육상 여자 100m 최고 기록은 1988년 플로렌스 그리피스조이너(1959~1998)가 세운 10초49입니다.

 

32년 동안 여자 선수 누구도 이보다 빨리 100m를 달리지 못했지만 남자 경주에서는 지난해(2020년)에만 이보다 빠른 기록 335번 나왔습니다.

 

따라서 만약 성별 구분 없이 올림픽 육상 경주를 진행하면 여자 선수는 아무도 메달을 따지 못할 겁니다.

 

한국 여자 양궁 국가대표 안산. 세계양궁연맹 제공

흔히 '기초 종목'이라고 부르는 수영과 육상에서만 이런 성별 차이가 나타나는 건 아닙니다.

 

얼핏 생각하면 사격이나 양궁은 남녀 차이를 두는 게 큰 의미가 없는 것 같기도 합니다.

 

그러나 사격은 총 무게, 양궁도 활 시위(줄) 장력 때문에 보통 힘이 더 센 남자 선수에게 유리합니다.

 

올림픽 사격에 쓰는 소총은 무게 8㎏짜리로 하루 종일 총을 쏘고 나면 몸무게가 2, 3㎏ 정도 줄어드는 일이 흔합니다.

 

양궁에서는 시위를 강하게 당길수록 화살이 빠르게 날아가기 때문에 바람 영향을 덜 받게 됩니다.

 

그러니 역시 성별 구분이 없다면 여자 선수가 메달을 따는 장면을 지켜보기가 쉽지 않을 거라고 예상할 수 있습니다.

 

올림픽 육상 여자 800m 3연패 도전 자격을 잃고 만 캐스터 세메냐. 스탠퍼드=로이터 뉴스1

이런 이유로 각 종목 세계 기구는 여자 선수를 '보호'할 수 있는 규정을 마련해 놓고 있습니다.

 

혈중 테스토스테론(남성 호르몬) 농도가 일정 기준 이하일 때만 여자부 경기(경주)에 출전할 수 있도록 허락하는 방식이 가장 일반적입니다.

 

올림픽 육상 여자 800m 3연패를 노리던 캐스터 세메냐(30·남아프리카공화국)가 도쿄에 아예 갈 수 없게 된 것도 테스토스테론 수치가 너무 높기 때문입니다.

 

세메냐는 그저 선천적으로 테스토스테론 분비량이 많을 뿐인데도 세계육상연맹(WA)은 '약물 처방을 통해 호르몬 수치를 낮추거나 아니면 남자 선수와 경쟁하라'고 주문했습니다.

 

물론 성전환수술을 받은 트랜스젠더 선수 역시 여자부 경기에 출전하려면 호르몬 수치 기준을 충족해야 합니다.

 

아니, 호르몬 수치 기준만 총족한다면 여자부 경기에 출전할 수 있도록 허락하는 게 여자 선수에게도 정말 '공평한' 일일까요?

 

미국 아이다호주 의회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아이다호주는 지난해 3월 30일 '여성 스포츠 공정성에 관한 법률'(the Fairness in Women's Sports Act)을 통과시켰습니다.

 

이 법안에 따르면 공립 학교 주최 스포츠 경기에서 각 선수는 '출생 증명서'에 나와 있는 성별에 따라 출전해야 합니다.

 

따라서 성전환수술을 받아 남성에서 여성이 된 경우에도 남자부 경기에 출전해야 합니다.

 

미국 50개 주 가운데 이런 법안을 마련한 건 아이다호주가 처음이었습니다.

 

현재는 미시시피, 아칸소, 앨라배마, 웨스트버지니아, 테네시주도 비슷한 법안을 마련한 상태입니다.

 

또 몬태나와 플로리다주도 주지사가 결재만 하면 비슷한 법안이 효력을 발휘하게 됩니다.

 

또 성소수자(LGBTQ) 권이 옹호 단체 '프리덤 포 올 어메리칸스'(Freedom for All Americans)에 따르면 최소 33개주 의회에서 트랜스젠더 여학생이 여자부 경기에 참가하지 못하도록 하는 법안을 발의했습니다.

 

반면 사우스다코타주는 의회에서 비슷한 법안을 마련했지만 크리스티 놈(50·공화당) 주지사가 거부권을 행사한 상황입니다.

 

아이다호에서 첫 법안을 마련한 뒤로 미국 전역이 트랜스젠더 선수 대회 참가 문제로 홍역을 앓고 있는 겁니다.

 

미국 아이다호주 의회. 보이시=AP

사실 아이다호 법안은 아직 효력을 얻지 못한 상태입니다.

 

아이다호 지방 법원에서 지난해 8월 17일 '위헌 소지가 있을 수 있다'고 판결했기 때문입니다.

 

이 재판 진행을 담당한 데이비드 나이 판사는 판결문을 통해 "테스토스테론 억제 처방을 받은 트랜스젠더 여성이 다른 여성보다 생리학적으로 상당한 이점이 있는지 아직 확인되지 않았다"고 밝혔습니다.

 

3일 미국 공영라디오방송(NPR)에 따르면 결국 이 문제는 미국 제9 순회 항소법원(The 9th U.S. Circuit of Appeals)으로 넘어 가게 됐습니다.

 

앞서 본 것처럼 여자부 경기를 따로 치르는 건 분명 '보호' 조치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트랜스젠더 여성은 도대체 누구와 경쟁을 해야 하는 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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