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는 스포츠가 공용어입니다.


❝스포츠에서 유일한 것이 승리라면 이기는 그 순간 다시 경합을 벌여야겠다는 욕구는 사라질 것이다. 그렇다면 마이클 조던과 로저 클레멘스가 나이 마흔에 계속 경쟁을 벌였던 사실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 '소크라테스 야구장에 가다' 中에서

토미 라소다 전 로스앤젤레스(LA) 다저스 감독. LA 다저스 홈페이지

내 몸엔 다저스색 파란 피가 흐른다. 그리고 내가 죽으면 하늘에 계신 다저스 신(神)께 갈 거다.

 

I bleed Dodger Blue and when I die, I'm going to the big Dodger in the sky.

 

─ 토미 라소다

토미 라소다 전 메이저리그 로스앤젤레스(LA) 다저스 감독이 하늘에 있는 다저스 신에게 갔습니다.

 

다저스는 라소다 전 감독이 7일(이하 현지시간)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났다고 8일 발표했습니다. 향년 94세.

 

로스앤젤레스타임스(LAT)에 따르면 라소다 감독은 이날 자택에서 쓰러져 구급차를 타고 병원으로 가던 중 오후 10시 57분 사망 진단을 받았습니다.

 

라소다 감독은 지난해 11월 15일 심장 문제로 병원에 입원한 뒤 5일 퇴원한 상태였습니다.

 

 

라소다 전 감독은 1976년 시즌 마지막 4경기를 남겨 두고 있던 그해 9월 29일 처음으로 다저스 지휘봉을 잡았습니다.

 

그가 다저스 지휘봉을 내려놓은 건 이로부터 7244일(19년 10개월)이 지난 1996년 7월 26일이었습니다.

 

시즌 숫자로 따지면 21년 동안 다저스를 이끌던 라소다 전 감독이 시즌 중간에 물러난 이유도 심장마비 때문이었습니다.

 

라소다 전 감독이 물러난 시점을 기준으로 이보다 오래 한 팀 지휘봉을 잡은 건 세 명뿐이었습니다.

 

 순위  이름  팀  기간
 ①  코니 맥  필라델피아(현 오클랜드)  1만8056일(1901~1950)
 ②  존 맥그로  뉴욕(현 샌프란시스코)  1만922일(1902~1932)
 ③  월터 올스턴  브루클린~LA 다저스  8205일(1954~1976)
 ④  바비 콕스  애틀랜타  7482일(1990~2010)
 ⑤  토미 라소다  LA 다저스  7239일(1976~1996)

 

그는 감독에서 물러난 뒤 곧바로 구단 부사장 자리에 앉았으며 1998년에는 임시 단장을 겸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2012년 미국프로농구(NBA) 스타 출신 매직 존슨(62)을 얼굴 마담으로 앞세운 구겐하임 베이스볼 매니지먼트에서 다저스를 인수한 뒤에도 구단 고문으로 활약해 왔습니다.

 

세상을 떠나는 마지막 순간까지도 다저스 구단 일원이었던 것.

 

다저스에서 마이너리그 드래프트를 통해 그를 영입한 1948년 11월 24일을 기준으로 하면 라소다 전 감독은 72년 1개월 14일 동안 이 팀과 인연을 이어왔습니다.

 

노리스타운고 재학 시절 토미 라소다 전 감독. 노리스타운고 홈페이지

현역 시절 왼손 투수였던 라소다 전 감독은 1945년 필라델피아(현 오클랜드)에 입단하면서 마이너리거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라소다 전 감독은 군 복무로 1946, 1947년 시즌을 건너뛴 다음 1948년 그라운드로 돌아온 뒤 그해 5월 31일 경기에서 15이닝 동안 삼진 25개를 잡아내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앞서 보신 것처럼 그해를 마지막으로 필라델피아를 떠나 다저스에 입단하게 됩니다.

 

다저스로 옮긴 뒤에도 라소다 전 감독은 1953년까지 단 한 번도 메이저리그 무대를 밟아보지 못했습니다.

 

현역 시절 토미 라소다 전 감독. 뉴욕타임스 제공

라소다 전 감독이 메이저리그 데뷔전을 치른 건 1954년 8월 5일 안방 세인트루이스전이었습니다.

 

팀이 2-8로 뒤진 5회초에 다저스 세 번째 투수로 5회 마운드에 오른 라소다 전 감독은 3이닝 동안 6피안타 3자책점을 기록한 뒤 마운드에서 내려갔습니다.

 

이듬해(1955년) 5월 5일에는 역시 안방에서 역시 세인트루이스를 상대로 메이저리그 데뷔 첫 선발 경기를 치렀습니다.

 

라소다 전 감독은 1회에만 폭투 3개를 던지면서 선취점을 내준 뒤 2회부터 클렘 라빈(1926~2007)에게 마운드를 넘겼습니다.

 

1981년 스프링캠프 때 함께 이동 중인 샌디 쿠팩스(왼쪽)와 토미 라소다 전 감독. LA 다저스 홈페이지

그해 6월 8일 다저스는 신인 왼손 투수에게 메이저리그 로스터 한 자리를 내주려고 라소다 전 감독을 마이너리그로 내려보냅니다.

 

라소다 전 감독을 대신해 올라온 투수가 바로 그 유명한 샌디 쿠팩스(86)였습니다.

 

쿠팩스는 부상 때문에 메이저리그에서 12시즌밖에 버티지 못했지만 여전히 역대 최고 왼손 투수를 논할 때 빠지지 않는 인물.

 

이에 대해 라소다 전 감독은 "역대 최고 투수 정도가 못 되면 내 자리를 빼앗지 못했다"고 이야기하곤 했습니다.

 

캔자스시티 시절 토미 라소다 전 감독. 위키피디아 공용

이듬해(1956년) 3월 2일 캔자시스티(현 오클랜드)에게 계약을 사들이면서 라소다 전 감독은 다저스를 떠나게 됩니다.

 

라소다 전 감독은 그해 캔자스시티에서 18경기(선발 5경기)에 등판해 승리 없이 4패, 평균자책점 6.15를 기록했습니다. 

 

캔자스시티는 1956년 7월 11일 라소다 전 감독을 뉴욕 양키스로 트레이드했습니다.

 

그리고 1957년 5월 25일 다저스에서 계약 권리를 사들이면서 449일 만에 다시 다저스로 돌아오게 됩니다.

 

다저스 산하 AAA 팀 몬트리올 구단 최다승 기록 보유자인 토미 라소다 전 감독. 캐나다 야구 명예의 전당 홈페이지

라소다 전 감독은 이후에도 메이저리그 무대로 돌아가지 못한 채 1960년 7월 7일 방출 통보를 받습니다.

 

그러면서 캔자스시티 시절이던 1956년 7월 8일 안방 클리블랜드전이 라소다 전 감독에게 마지막 메이저리그 등판으로 남게 됐습니다.

 

메이저리그 통산 기록은 0승 4패가 전부지만 마이너리그에서는 136승(104패)을 거뒀습니다.

 

그는 특히 당시 다저스 산하 AAA팀이던 몬트리올에서 통산 107승(57패)을 기록했는데 이는 구단 역사상 최다승 기록입니다.

 

LA 다저스 산하 AAA 팀 앨버커키 시절 토미 라소다 전 감독. 유튜브 화면 캡처

은퇴 후 다저스 스카우트로 변신한 라소다 전 감독은 1965년 역시 다저스 산하 루키 팀 포카텔로 감독을 맡으면서 지도자로 변신합니다.

 

그는 취임 이듬해인 1966년부터 이 루키 팀을 3년 연속 리그 챔피언으로 만들었고 1969년에는 AAA팀 감독으로 자리를 옮깁니다.

 

AAA팀 감독으로 1970년과 1972년 우승을 경험한 뒤 1973년 드디어 3루 코치로 메이저리그 코칭 스태프로 이름을 올립니다.

 

LAT에 따르면 라소다 전 감독과 마이너리그에서 함께 지낸 선수 가운데 75명이 메이저리거가 됐습니다.

 

1977년 LA 다저스 멤버. 로스앤젤레스타임스 제공

다저스는 1976년 92승 70패(승률 .568)을 거두고도 신시내티(102승 60패·승률 .630)에 밀려 내셔널리그(NL) 서부지구 2위에 그쳤습니다.

 

다저스가 90승을 거두던 날 이 팀을 23년간 이끌었던 월터 올스턴(1911~1984) 감독이 사퇴 의사를 밝히면서 라소다 전 감독이 지휘봉을 물려받게 됩니다.

 

라소다 전 감독은 1977년 곧바로 팀을 98승 64패(승률 .605)로 이끌면서 NL 서부지구 우승을 차지했고 NL 챔피언결정전(CS)에서도 필라델피아를 3승 1패로 물리치고 월드시리즈(WS) 무대까지 밟았습니다.

 

그러나 WS에서는 아메리칸리그(AL) 챔피언 뉴욕 양키스에 2승 4패로 무릎을 꿇고 말았습니다.

 

다저스는 1978년에도 NL 챔피언 자리에 올랐지만 WS에서는 또 한번 양키스에 2승 4패로 제압을 당했습니다.

 

1988년 월드시리즈 우승 후 오렐 허사이저(왼쪽)와 함께 트로피를 들고 있는 토미 라소다 전 감독. LA 다저스 홈페이지

라소다 전 감독이 결국 WS 우승 트로피(커미셔너 트로피)를 들어올린 건 1981년이었습니다.

 

이번에도 상대는 양키스였지만 이번에는 4승 2패로 시리즈 승패를 뒤바꾸는 데 성공했습니다.

 

이로부터 7년 뒤인 1988년에는 친정팀이기도 한 오클랜드를 4승 1패로 물리치고 또 한 번 커미셔너 트로피를 차지했습니다.

 

이날 이후 다저스는 32년이 지난 지난해(2020년)가 되어서야 다시 WS 우승을 차지할 수 있었습니다.

 

토미 라소다 전 감독과 작 피더슨. 로스앤젤레스타임스 홈페이지

지난해에는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탓에 WS 전 경기를 텍사스주 글로브 라이프 필드에서 치렀습니다.

 

라소다 전 감독은 10월 27일 직접 6차전 현장을 찾아 다저스가 4승 2패로 탬파베이를 물리치고 WS 챔피언에 오르는 모습을 지켜봤습니다.

 

결국 이 6차전이 라소다 전 감독이 대중 앞에 모습을 드러낸 마지막 경기가 됐습니다.

 

라소다 전 감독은 지난해 11월 15일부터 병원 신세를 져야 했고 결국 다시 다저스 경기를 보지 못한 채 저 세상 사람이 되고 말았습니다.

 

2000 시드니 올림픽 때 미국 야구 대표팀을 맡았던 토미 라소다 전 감독. 메이저리그 홈페이지

그런데 사실 라소다 전 감독이 다저스에서만 지도자 생활을 한 건 아닙니다.

 

2000년 시드니 올림픽을 앞두고 미국 대표팀 사령탑에 앉았기 때문입니다.

 

라소다 전 감독은 마이너리그 선수로 꾸린 대표팀을 이끌고 이 대회에 출전해 미국에 사상 첫 올림픽 야구 금메달을 선물했습니다.

 

미국은 당시 준결승전에서 한국을 3-2로 물리치고 결승에 진출한 뒤 대회 3연패를 노리던 쿠바를 4-0으로 꺾었습니다.

 

 

한국에서 라소다 전 감독과 가장 가까운 인물은 1994년 다저스에 입단한 'TMT' 박찬호(48)라고 할 수 있습니다.

 

박찬호는 이날 인스타그램을 통해 "(라소다 전 감독은) 지난 27년 동안 제게 사랑을 준 전설적인 야구인(이었다)"면서 "어떤 말로 이 슬픔을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밝혔습니다.

 

그리고 계속해 "그의 업적과 야구 사랑 그리고 삶의 열정에 깊은 감사와 경의를 보낸다"고 덧붙였습니다.

 

라소다 전 감독이 '양아들'이라고 부르기도 했던 박찬호는 미국으로 건너 가 장례식에 참석할 예정입니다.

 

라소다 전 감독은 다저스 지휘봉을 내려놓은 이듬해인 1997년 야구 명예의 전당 회원이 됐습니다.

 

그리고 다저스 구단 역시 이해 라소다 전 감독이 달었던 등번호 2번을 영구 결번 처리했습니다.

 

야구인으로서 누릴 수 있는 모든 영광을 누리고 떠난 것.

 

그래도 다저스를 향한 사랑은 식을 줄 몰랐습니다.

 

살아 생전 그는 '내 묘비 위에 다저스 안방 경기 스케줄을 올려달라'고 말하곤 했습니다.

 

그렇게 머리 끝부터 발끝까지 온통 다저스였던 사나이가 바로 토미 라소다였습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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