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는 스포츠가 공용어입니다.


❝스포츠에서 유일한 것이 승리라면 이기는 그 순간 다시 경합을 벌여야겠다는 욕구는 사라질 것이다. 그렇다면 마이클 조던과 로저 클레멘스가 나이 마흔에 계속 경쟁을 벌였던 사실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 '소크라테스 야구장에 가다' 中에서

2020 프랑스 오픈 남자 단식 4강에 진출한 디에고 슈와르츠만. 프랑스 오픈 홈페이지


'작은 거인' 디에고 슈와르츠만(28·아르헨티나·세계랭킹 14위)이 황태자를 쓰러뜨리고 다시 한 번 황제와 결투를 벌이게 됐습니다.


슈와르츠만은 6일(현지시간)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2020 프랑스 오픈 테니스 대회 남자 단식 8강전에서 도미니크 팀(27·오스트리아·3위)에 3-2(7-67-1, 5-7, 6-76-8, 7-67-5, 6-2) 재역전승을 거뒀습니다.


게임 스코어를 보면 짐작하실 수 있는 것처럼 5시간 8분이 걸린 '접전 오브 더 접전'이었습니다.


팀은 2018년지난해 이 대회 결승에 진출하면서 '클레이코트 황태자' 자리를 굳힌 선수.


올해는 US 오픈 정상을 차지하면서 프랑스 오픈에서도 '대권'을 노릴 만하다는 평가를 받았지만 '복병' 슈와르츠만에게 무릎을 꿇고 말았습니다.


프랑스 오픈 타이틀 수성에 도전하는 라파엘 나달. 프랑스 오픈 홈페이지


이어 열린 이날 두 번째 8강전에서는 '클레이코트 황제' 라파엘 나달(34·스페인·2위)이 야니크 시너(19·이탈리아·75위)에 3-0(7-67-5, 6-4, 6-1) 완승을 거두고 4강에 합류했습니다.


그러면서 슈와르츠만은 나달과 결승행 티켓을 놓고 맞대결을 벌이게 됐습니다.


두 선수는 지난달 막을 내린 이탈리아 오픈 8강에서도 맞붙었는데 슈와르츠만이 2-0(6-2, 7-5) 승리를 거뒀습니다.


단, 그 전까지는 나달이 상대 전적 9전 전승으로 슈와르츠만을 압도하고 있었습니다.


프랑스 오픈에서 두 선수가 맞붙는 건 이번이 두 번째.


이 대회 첫 맞대결이었던 2018년 8강에서는 나달이 3-1(4-6, 6-3, 6-2, 6-2)로 승리했었습니다.


랭킹 200위 이내 남자 테니스 선수 가운데 가장 키가 작은 디에고 슈와르츠만. 프랑스 오픈 홈페이지


슈와르츠만은 이번 대회에 출전한 남자 단식 선수 가운데 키(170㎝)가 가장 작은 선수입니다.


아니, 슈와르츠만은 본인이 출전하는 대회 때마다 최단신 선수로 이름을 올리기 일쑤입니다.


랭킹 200위 안에 드는 선수 가운데 슈와츠르만보다 작은 선수가 한 명도 없기 때문입니다.


니시오카 요시히토(西岡良仁·24·일본·52위) 한 명만이 슈와르츠만과 똑같이 자기 키를 170㎝라고 밝히고 있을 뿐입니다. 


참고로 올해 프랑스 오픈 남자 단식 본선에 진출한 선수 평균 키는 186.4㎝입니다.


도미니크 팀(185㎝)과 디에고 슈와르츠만(170㎝). 프랑스 오픈 홈페이지


테니스 역시 키가 큰 선수에게 유리한 종목입니다.


테니스는 서브 게임을 지배하는 자가 유리한 경기고 키가 커야 서브에 유리하니까요.


이번 대회 경기 결과를 봐도 그렇습니다.


16강까지 이번 대회 남자 단식 120경기 가운데 60.8%(73경기)를 키가 더 큰 선수가 가져갔습니다.



그런 점에서 이 대회에 출전한 남자 단식 선수 가운데 키(170㎝)가 가장 작은 슈와르츠만이 여기까지 올라왔다는 건 이미 칭찬받을 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슈와르츠만이 4대 메이저 대회(호주 오픈, 프랑스 오픈, 윔블던, US 오픈) 준결승에 진출한 건 이번이 처음입니다.


그러면서 슈와르츠만은 키 170㎝ 이하인 선수로는 테니스 역사상 처음으로 메이저 대회 남자 단식 4강 진출자가 됐습니다.


어린 시절 디에고 슈와르츠만. 남자프로테니스(ATP) 홈페이지


원래 러시아(부계)와 폴란드(모계)에 살던 슈와르츠만 가족은 제2차 세계대전을 피해 아르헨티나에 정착했습니다.


이미 2남 1녀를 두고 있던 부모님은 1992년 막내 아들이 태어나자 자국 축구 영웅 디에고 마라도나(60)를 따라 디에고라는 이름을 지어줬습니다.


그때만 해도 키마저 마라도나(167㎝)와 비슷하게 될 줄은 몰랐을 겁니다.


이 유대인 가족은 원래 제법 부유한 삶을 누렸지만 1990년 전후로 아르헨티나는 물가상승률이 수 천 %에 달하는 나라였고 이 가족도 경제 위기를 피하지 못했습니다.



그래도 부모님은 슈와르츠만이 테니스 선수 꿈을 잃지 않기를 바라며 물심양면으로 지원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슈와르츠만 역시 대회 기간 다른 선수에게 고무 팔찌를 팔아 체류비를 마련하는 수고로움을 견뎌야 했습니다. 


슈와르츠만이 열 세 살 때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 날아듭니다. 의사로부터 170㎝ 넘게 자라지 못할 거라는 진단을 받았던 것.


슈와르츠만은 "그러면 테니스를 그만두겠다"고 선언했지만 부모님이 극구 만류하는 바람에 라켓을 손에서 놓지 않았습니다.


슈와르츠만은 "앞으로 내 커리어에 어떤 일이 생기더라도 부모님 희생과 헌신에는 비하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어린 시절 디에고 슈와르츠만(왼쪽). 남자프로테니스(ATP) 홈페이지


키가 문제가 된 건 오히려 어릴 때였습니다.


슈와르츠만이 주니어 선수 자격으로 메이저 대회에 참가한 건 2010년 US 오픈 한 번뿐이고 그마저 예선 1라운드에서 탈락했습니다.


'작은 키'에 익숙해지자 점점 경기력이 올라가기 시작했습니다.


슈와르츠만은 이번 4강 진출로 역대 개인 최고 기록인 랭킹 8위 자리를 확보한 상태.


지금까지 테니스 대회 상금으로 벌어들인 돈만 해도 835만 달러(약 96억 원)가 넘습니다.


키 170㎝ 이하인 선수 가운데 처음으로 메이저 대회 남자 단식 4강에 진출한 디에고 슈와르츠만. 프랑스 오픈 홈페이지


슈와르츠만은 "내가 이 자리까지 올 수 없었던 많은 이유가 있을 수 있었겠지만 내 신체조건은 여기 해당하지 않는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키로는 나를 정의할 수 없다(Height doesn't define me)"고 강조했습니다.


그럼요. 불리하다고 지레 포기하는 것이야 말로 바보들이나 하는 짓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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