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는 스포츠가 공용어입니다.


❝스포츠에서 유일한 것이 승리라면 이기는 그 순간 다시 경합을 벌여야겠다는 욕구는 사라질 것이다. 그렇다면 마이클 조던과 로저 클레멘스가 나이 마흔에 계속 경쟁을 벌였던 사실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 '소크라테스 야구장에 가다' 中에서

5일 프로야구 사직 안방 경기에서 7회말 역전 3점 홈런을 친 롯데 이대호. 롯데 제공


아래는 KBS에서 4일 내보낸 '롯데가 롯데했다? 허 감독과 성 단장의 동상이몽' 기사 일부입니다.


(민규 롯데) 단장의 야구 철학은 바로 출루율을 높이는 것. … 롯데 허문회 감독의 야구 철학도 성 단장과는 크게 다르지 않다. 취임 당시 허 감독은 "그동안 쌓아온 경험을 바탕으로 데이터에 기반을 둔 경기 운영과 편견 없는 선수 기용을 통해 롯데가 롱런할 수 있는 팀이 되는 데 일조하겠다"고 각오를 밝힌 바도 있다.


하지만 최근 허문회 감독이 선수들에게 강조하는 것이 있다. 바로 '초구 공략'. 초구부터 적극적으로 공략해 상대 투수들에게 부담을 주자는 전략이다. 실제로 올 시즌 롯데 타선의 초구 공략 비율은 30.2%로 SK(32.1%)에 이어 두 번째로 높다.


하지만 출루율은 0.322로 10개 구단 중 9위에 머무르고 있다. 초구 공략의 결과가 기대와 반대로 출루율 저하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타자가 한 타석당 공격에 얼마나 기여했는 지를 보여주는 수치인 가중 출루율에서도 0.315로 꼴찌 한화(0.296)보다 겨우 한 계단 높은 상황이다. 시즌 초반 한때 팀 타율 1위를 달리기도 했던 롯데는 현재 0.248에 머물며 전체 8위로 곤두박질쳤다.


… 결과적으로 허문회 감독의 '초구 공략' 전술이 실패하면서 성민규 단장의 '출루율' 철학과 충돌해 버린 셈이다.


그래서 롯데 타자들이 초구부터 적극적으로 공략하는 건 잘못된 접근법일까요?


프로야구가 10개 팀 체제를 갖춘 2015년부터 지난해까지 5년 동안 팀 초구 공략률와 OPS(출루율+장타력) 사이 상관관계를 그래프로 그리면 아래 그림처럼 나타납니다.



한마디로 둘 사이에 아무 관계도 없다고 할 수 있습니다.


유의확률(P)이 .5318이라는 건 (아주 단순하게 말씀드리면) 둘 사이에 어떤 관계가 있다고 장담할 수 있는 확률이 46.82%(=1-.5318)라는 뜻입니다.


그리고 관계가 있다고 해도 초구 공략률 변화로는 OPS 변화를 1.51%밖에 설명하지 못합니다. 결정계수(R²)가 -.0151이라고 나온 게 그런 뜻입니다.


혹시 가중출루율(wOBA)로 따지면 다르지 않냐고요? 


더 심합니다. wOBA를 기준으로 하면 P값 .8877, R제곱값 .0004가 나옵니다.


그런데 OPS를 먼저 보여드린 건 한국 프로야구에서는 OPS가 wOBA보다 득점 변화를 더 잘 설명하기 때문입니다.


올해부터 롯데 지휘봉을 잡게 된 허문회 감독. 롯데 제공

 

그렇다면 허 감독이 '초구 공략' 전술을 주장하는 건 잘못된 접근법일까요?


야구팬은 전통적으로 응원팀 타자가 초구를 치는 걸 싫어합니다.


그런데 13년 전에도 그랬고 최근 5년도 마찬가지로 초구를 치면 타격 결과가 좋습니다.


▌2015~2019 타격 기록
 구분  타율  출루율  장타력  OPS
 초구  .360  .359  .563  .922
 전체  .282  .353  .428  .781


올해 롯데도 마찬가지입니다. 롯데는 5일 현재까지 팀 OPS .692를 기록 중인데 초구를 쳤을 때는 .767로 올랐습니다.


문제는 .767이 리그 꼴찌라는 점입니다.


그러니까 롯데 타선이 초구를 자꾸 건드리는 게 문제가 아니라 그냥 못 치는 게 문제인 겁니다. 


네, 이건 초구를 쳐서 타구를 페어 지역으로 보냈을 때 이야기입니다.


초구를 치려고 했지만 파울볼이 되거나 헛스윙을 할 때도 있습니다.


이렇게 초구를 쳤거나 치려고 했을 때(공략)와 가만히 지켜봤을 때(대기) 이후 타격 성적은 어떻게 됐을까요?


적어도 (예전에 기록을 정리해 놓았던) 2013~2015년 3년 동안에는 차이가 없었습니다.



따라서 초구에 스윙을 시도하는 것 자체는 손해를 볼 일이 없는 셈입니다.


(설마 OPS .003이나 차이가 난다고 생각하시는 분은 아니 계시겠죠? 그래서 세상에 '오차범위'라는 게 존재하는 겁니다.)


롯데 타선에서 가장 초구 공략에 소극적인 정훈. 롯데 제공


단, 선수 관점에서 보면 재미있는 결과가 나타납니다.


최근 5년 동안 규정 타석 70% 이상 들어선 타자 424명 기록을 가지고  초구 공략률과 주요 타격 기록 사이 상관관계를 알아봤습니다.


그 결과 초구 공략률과 가장 밀접한 관계로 나타난 건 타석당 볼넷 비율이었습니다.



추측컨대 이런 결과 나온 건 '초구 공략을 많이 한다 → 볼넷 비율이 올라간다'이기 때문이 아니라 그 반대일 확률이 높습니다.


볼넷이 많은 타자 = 상대가 피하려 들 확률이 타자는 초구에 비슷한 공이 오면 일단 방망이를 휘두르고 보는 것.


이번 타석에서 이보다 좋은 공이 들어온다는 보장이 없을 테니 말입니다.


물론 볼넷이 늘어나면 출루율도 자연스레 올라가게 마련입니다.


따라서 허 감독이 구사하는 '초구 공략 전술'이 꼭 출루율을 중시하는 성 단장 야구 철학과 맞지 않는다고 할 수 없습니다.


롯데는 5일 사직 안방 경기에서 7회말 터진 이대호(38)의 역전 3점 홈런을 앞세워 KT를 6-4로 물리쳤습니다.



이 공은 KT 투수 주권(25)이 이 타석에서 이대호에게 던진 두 번째 공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초구가 들어왔을 때 이대호는 어떻게 반응했을까요?


방망이를 휘둘렀지만 1루쪽 관중석에 들어가는 파울볼이 되고 말았습니다.



지난해 롯데에서 200타석 이상 들어선 타자 가운데 초구 공략률이 제일 높았던 건(38.3%) 민병헌(33)이었고 거꾸로 가장 기록이 낮았던 건(20.7%) 정훈(33)이었습니다.


여러분 인생이 걸린 딱 한 타석이 있다면 둘 중 누구를 내보내시겠습니까?


초구를 사랑하는 데는 아무 죄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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