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는 스포츠가 공용어입니다.


❝스포츠에서 유일한 것이 승리라면 이기는 그 순간 다시 경합을 벌여야겠다는 욕구는 사라질 것이다. 그렇다면 마이클 조던과 로저 클레멘스가 나이 마흔에 계속 경쟁을 벌였던 사실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 '소크라테스 야구장에 가다' 中에서

펜싱 국가대표 김선미 화보 촬영 사진. 본인 제공


펜싱 국가대표 김선미(31·온에어블)는 지난해 참 많은 걸 이뤘습니다.


9월에는 대표팀에서 함께 훈련하던 박천희(38·GKL)와 화촉을 밝혔고, 10월에는 전국체육대회 6관왕에 올랐습니다.


또 2018년에 이어 지난해에도 금융 회사 CF에 출연했습니다.


김선미가 출연한 광고. KEB하나은행 제공


올해는 이렇게 많은 걸 바라지 않습니다. 


그저 도쿄 패럴림픽(장애인올림픽) 메달 하나만 됩니다.


네, 김선미는 휠체어 펜싱 대표 선수입니다.


장애인 펜싱 국가대표 김선미. KEB하나은행 제공


원래 스튜어디스가 꿈이었던 김선미는 중학교 3학년이던 2004년 교통사고를 당해 왼쪽 다리를 무릎 위쪽까지 잘라내야 했습니다.


'집에 데려다 주겠다'는 친구 말에 오토바이에 올라탄 게 화근이었습니다.


2020년 장애인 국가대표 훈련 개시식이 열린 이천장애인종합훈련원에서 30일 만난 김선미는 "정말 한순간이었다. 어린 나이에 장애인이 됐다는 걸 받아들일 수 없었다. 몸과 마음이 모두 아픈 시기를 보냈다"고 말했습니다.


이어 "그때는 어떻게든 장애인이 됐다는 사실을 숨기고만 싶었다. 그런데 그럴 수 없으니까 우울증이 찾아왔다"고 덧붙였습니다.


그러면서 "사실 예쁘게 크다가 그런 일을 당했으면 정말 억울했을 텐데 '놀다가' 다친 거라서 벌을 받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고 털어놓았습니다.


2020년 장애인 국가대표 훈련 개시식에서 만난 김선미. 대한장애인체육회 제공


그랬던 김선미는 어떻게 펜싱을 시작하게 됐을까요? 펜싱은 비장애인도 쉽게 접하기 힘든 운동인 게 사실.


김선미는 "병원에서 절단 수술을 앞두고 있을 때 휠체어를 타신 분이 찾아 오셔서 가족에게 좋은 말씀을 많이 해주셨다. 그분 남편이 장애인 펜싱을 하시던 김기홍(48) 선수였다"고 말했습니다.


이어 "그분께서 '나이가 어리니 운동으로 재활을 해보면 어떻겠냐'고 제안을 하셔서 처음으로 펜싱 칼을 쥐게 됐다 "고 설명한 뒤 "사실 장애인 체육에 다른 종목이 있는 줄도 몰랐다"고 덧붙였습니다.


김선미는 계속해 "솔직히 처음 1년 동안에는 그냥 운동을 하는 척만 했다. 장애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상황에서 운동을 하는 것도 너무 힘이 들었다. 사춘기라서 더욱 그랬던 것 같다"고 말을 이었습니다.


2020년 장애인 국가대표 훈련 개시식에서 만난 김선미. 대한장애인체육회 제공


그러다가 본격적으로 펜싱에 빠지게 된 건 '오기' 때문.


김선미는 "운동을 하다가 첫 대회에 나갔다. 경기가 끝났는데 두 살 어린 친동생이 '누나, 정말 못 한다'고 놀리더라. 그래서 '내가 본때를 보여주겠다'고 마음 먹었던 게 여기까지 오게 됐다"며 웃었습니다.


마음을 다잡은 김선미는 2010년 광저우(廣州) 장애인아시아경기, 2012년 런던 패럴림픽, 2014년 인천 장애인아시아경기에 출전하면서 점점 한국 장애인 펜싱을 대표하는 선수로 자리매김했습니다.


2014년 인천 장애인 아시아경기 경기 모습. 대한장애인체육회 제공


그러나 '칼'은 밥을 먹여주지 않았습니다.


김선미는 인천 대회를 마지막으로 태극 마크를 반납한 뒤 일자리를 찾아 나섰습니다.


김선미는 "앉아서 할 수 있는 일을 찾다 보니까 웹디자인이 눈에 띄었다. 포토샵을 배워서 생계를 이어 갔다"고 말했습니다.


그렇다고 칼을 아주 놓았던 건 아닙니다. 장애인 전국체육대회에 출전하면서 1년에 한번씩 피스트(piste·펜싱 경기장) 위에 섰습니다.


그러다가 2017년 1월 대원지오텍에서 '온에이블'이라는 장애인 펜싱 실업팀을 만들면서 월급 때문에 포토샵 창을 여는 일이 사라졌습니다.


2017년 경기도장애인체육회에서 열린 온에이블 창단식. 대한장애인체육회 제공


사실 이 팀 선수는 김선미 한 명뿐입니다. 온에이블이 김선미를 위한 팀인 셈입니다.


김선미는 "장애인 체육은 선수가 아무리 노력한다고 해도 주변에서 투자를 해주시지 않는다면 운동을 이어가기 힘든 구조다. 패럴림픽 메달을 따서 이용진 대원지오텍 대표팀께 꼭 빚을 갚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김선미는 장애인 펜싱 선수지만 평소에는 의족을 사용합니다. 주로 서서 걷는다는 뜻입니다.


2018 자카르타-팔렘방 장애인 아시아경기 때는 남북 단일팀 공동 기수로 나서 북한 수영 대표 심승혁(24)이 타고 있는 휠체어를 뒤에서 밀기도 했습니다.


2018 자카르타-팔렘방 장애인 아시아경기 입장 모습. 대한장애인체육회 제공


키(170㎝)도 크기 때문에 가만히 서 있으면 장애가 있다는 걸 알아차리기가 쉽지 않습니다.


김선미는 "초등학교 6학년 때 키가 이미 이 정도였다. 어릴 때 키가 크다는 이유로 핸드볼을 1년 정도 했던 적이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그때는 정말 운동 선수로 살게 될 줄 몰랐는데 장애가 또 다른 기회가 됐다"고 말했습니다.


계속해 "일본에서 패럴림픽이 열리니까 방사능을 걱정하는 분들도 계시다. 그런데 '내 삶에서 나쁜 일은 장애를 입은 것 하나로 다 끝난 게 아닐까'하고 생각하기 때문에 방사능 걱정은 안 한다"고 덧붙였습니다.


2020년 장애인 국가대표 훈련 개시식에서 만난 김선미. 대한장애인체육회 제공


물론 그렇다고 아주 걱정이 없는 건 아닙니다.


김선미는 "손목을 다쳐 지난해 말 수술을 받았는데 아직 뼈가 완전히 붙지 않은 상태"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이 상태로 다음달 열리는 도쿄 패럴림픽 예선에 나서야 한다. 절망에 빠졌는데 남편이 많이 위로해줘서 힘을 얻었다"고 말을 이었습니다.


김선미는 "어떻게든 이 대회에서 꼭 도쿄 패럴림픽 출전권을 따낼 것"이라며 "남편과 함께 부부 동반 메달을 따고 싶다"고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댓글,

더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