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8 서울 올림픽 미국 남자 농구 대표팀. 미국농구협회 홈페이지
대학 선수로 꾸린 미국 남자 농구 대표팀은 88 서울 올림픽 준결승에서 옛 소련에 76-82로 패했습니다.
그러자 그다음 올림픽이었던 1992 바르셀로나 대회 때는 미국프로농구(NBA) 스타를 대거 출전시켰습니다.
언론에서 '드림팀'이라고 이름 붙인 이들은 상대팀을 평균 44점 차이로 꺾으면서 8전 전승으로 올림픽 금메달을 따냈습니다.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 시상대에 선 미국 남자 농구 대표팀.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제공
'농구 황제' 마이클 조던(57) 역시 당시 대표팀 멤버였는데 그는 어깨에 성조기를 두른 채 시상대에 올랐습니다. 찰스 바클리(57)도 마찬가지.
두 슈퍼스타가 이렇게 애국심을 드러내면서 이후 미국에서는 성조기를 모티프로 한 디자인이 인기를 끌기 시작했다는 건 새빨간 거짓말입니다.
실제로 두 선수가 성조기를 둘렀던 건 나이키 모델이었기 때문입니다.
성조기를 몸에 가고 있는 마이클 조던.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제공
당시 대표팀 유니폼은 리복에서 만들었습니다. 이에 나이키에서는 자사 모델에게 성조기로 리복 로고를 가릴 것을 주문했습니다.
조던은 당시 "우리가 리복을 무시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성조기는 그 어떤 가치도 훼손하지(deface) 않는다. 성조기야 말로 우리가 대표하는 가치"라고 항변했습니다.
그렇다면 미국 농구 대표팀 감독이 신고 있는 신발은 어떨까요?
아래는 2008년 베이징(北京) 올림픽 미국 농구 대표팀 프로필 사진입니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 미국 남자 농구 대표팀. 미국농구협회 홈페이지
이 사진을 자세히 보시면 맨 왼쪽에 있는 '코치 K' 마이크 쉬셉스키(73) 감독이 구두로 드와이트 하워드(35)가 신은 신발을 가린 걸 알 수 있습니다.
이건 미국 농구 대표팀 후원사는 나이키, 하워드는 아디다스 모델이라 생긴 일입니다.
이 사진은 그냥 기념 사진일 뿐이지만 나이키는 당연히 아디다스 로고를 노출하는 걸 원하지 않았을 겁니다.
이렇게 팀과 선수가 후원사 브랜드 로고를 놓고 숨바꼭질을 벌이는 건 선수뿐 아니라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역시 후원사와 독점 계약을 맺고 있기 때문입니다.
후원 계약을 마친 뒤 기념 촬영 중인 제임스 퀸시 코카콜라 최고경영자(CEO), 토마스 바흐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장, 제프리 루 멍뉴(蒙牛)유업 CEO(왼쪽부터). 로잔=로이터 뉴스1
원래 올림픽에 참가하는 선수는 물론 코칭 스태프를 비롯한 모든 관계자는 대회 기간 공식 후원사 광고에만 출연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IOC, 대회 조직위원회 그리고 대한체육회 같은 각 국가올림픽위원회(NOC) 후원사가 아니면 대회 기간 중 올림픽 참가자를 모델로 쓸 수 없던 겁니다.
그러면 소위 비인기 종목 선수는 훈련 비용을 마련하는 데 애를 먹을 게 당연한 일.
이에 IOC는 지난해 9월 대회 참가자의 상업 광고 출연 관련 내용을 담은 올림픽 헌장 제40조를 일부 수정했습니다.
대한체육회 제공
IOC가 정한 기간 동안에는 공식 후원사 여부에 관계없이 계속 통상적인 광고(Generic Advertising)에 출연할 수 있도록 허락하는 내용입니다.
예컨대 2020 도쿄(東京) 올림픽 참가 선수는 7월 14일~8월 11일에도 계속 원래 출연하던 광고에 계속 나설 수 있게 됩니다.
물론 '앰부시(ambush) 광고'는 여전히 금지 대상입니다. 앰부시 광고는 IOC 후원사가 아닌 회사가 대회를 홍보에 활용하는 일을 뜻합니다.
따라서 공식 후원사가 아닌 회사 모델로 활약하는 선수는 올림픽 출전을 앞두고 선전을 다짐하는 내용 등을 담은 광고에 출연할 수는 없습니다.
또 이 기간 선수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후원사별로 한번씩 '감사 메지시'를 띄우는 것도 가능합니다.
IOC는 이와 함께 경기 용품 관련 규정도 손질했습니다.
앞으로 올림픽 참가 선수는 지퍼, 버튼, 안경이나 고글 렌즈 등에 톤온톤(세 가지 색깔 속성 중 명도만 달리하는 배색) 방식으로 개인 후원사 로고를 노출할 수 있습니다.
도쿄 올림픽 농구 대표팀 광고 노출 허용 기준. 국제농구연맹(FIBA) 제공
물론 이렇게 규정을 완화한다고 해도 숨바꼭질이 끝날 확률은 제로(0)에 가깝습니다.
스타 선수 개인은 후원하지만 올림픽 공식 후원사는 아닌 업체는 계속 빈틈을 노릴 거고, 공식 후원사는 어떻게든 '개구멍'을 막으려고 최선을 다할 겁니다.
41년간 IOC 공식 파트너였던 맥도날드가 자리를 내놓을 만큼 올림픽 인기가 흔들리는 건 사실이지만 그래도 올림픽은 여전히 올림픽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