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는 스포츠가 공용어입니다.


❝스포츠에서 유일한 것이 승리라면 이기는 그 순간 다시 경합을 벌여야겠다는 욕구는 사라질 것이다. 그렇다면 마이클 조던과 로저 클레멘스가 나이 마흔에 계속 경쟁을 벌였던 사실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 '소크라테스 야구장에 가다' 中에서

청각장애 선수로는 처음으로 남자프로테니스(ATP)투어에서 첫 승을 기록한 이덕희. ATP 홈페이지


이덕희(21·서울시청)가 세계랭킹 50위 안에 이름을 올린 선수를 상대하기는 아직 역부족인가 봅니다.


랭킹 212위 이덕희는 20일(이하 현지시간)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주에서 열린 남자프로테니스(ATP)투어 2019 윈스턴세일럼 오픈 2회전에서 후베르토 후르카치(22·폴란드·41위)에게 1-2(6-4, 0-6, 3-6)로 역전패했습니다.


테니스는 키가 클수록 유리한 종목이라는 게 두 선수 맞대결에서도 드러났습니다. 후르카치는 196㎝로 이덕희(175㎝)보다 21㎝ 큽니다. 키다리가 테니스에서 우위를 점하는 건 서브 때문. 이날도 후르카치는 서브 에이스에서 13-1로 앞섰습니다. 반면 이덕희는 더블 폴트 14개로 무너졌습니다.


거꾸로 1라운드에서 헨리 라크소넨(27·스위스·120위)를 2-0(7-6, 6-1)으로 물리칠 때 이덕희는 서브 에이스에서 9-4로 앞섰습니다. 이 경기 승리로 이덕희는 ATP투어에서 승리한 첫 번째 청각장애 선수가 됐습니다. 이덕희는 태어날 때부터 소리를 듣지 못했으며 현재 청각장애 3급입니다.


참고로 청각장애는 1급이 없고 양쪽 귀가 전혀 들리지 않을 때가 2급입니다. 이덕희는 자기 청력에 대해 "누가 아주 크게 소리를 치거나 자동차 경적이 울리면 소리가 났다는 것 정도는 감지할 수 있는 수준"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청각장애인들은 보통 수화 언어 그러니까 수어(手語)로 의사소통을 하지만 이덕희는 상대방 입술이 움직이는 모양을 보고 뜻을 파악하는 독순법(讀脣法)을 활용합니다. 말은 할 줄 알지만 가족이나 친구처럼 평소 말을 많이 섞은 사람이 아니면 이해가기 어렵습니다. 이날 인터뷰도 질문자가 영어로 물어보면 통역이 이를 한국어로 바꿔 약혼녀에게 전달하고 이덕희가 대답한 걸 다시 전달하는 식으로 진행했습니다.


의사소통만 문제가 아닙니다. 테니스 선수가 소리를 듣지 못하면 상대 선수가 때린 공 스피드나 회전을 파악하는 데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덕희는 경기 후 "첫 승이 믿어지지 않는다. 사람들은 내 장애를 비웃기 바빴고 나는 좋은 선수가 될 수 없을 거라고 말했다. 모든 사람들에게 내가 해낼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면서 "청각장애가 있는 이들에게 '주눅들지 말라'는 메시지를 전하고 싶다. 열심히 도전한다면 여러분도 무엇이든 해낼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장애인이 선수가 비장애인과 경쟁을 벌이는 건 물론 장애인 선수에게도 영감을 주고 있습니다. 대한장애인체육회 관계자는 "2년 전 이덕희에게 장애인 국제대회에 출전하면 연금을 받을 수 있으니 나가보라고 권유했지만 '앞으로도 계속 비장애인 선수들과 경기를 하겠다'고 고사했다"며 "많은 장애인 대표 선수들이 롤모델로 삼을 만큼 정신력이 뛰어난 선수"라고 말했습니다.


이덕희는 다음달 국가대항전 데비이스컵에 한국 대표 선수로 참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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