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도하 다이아몬드리그에서 여자 800m 우승을 차지한 캐스터 세메냐. 도하=로이터 뉴스1
국제육상경기연맹(IAAF) 2-1 캐스터 세메냐(28·남아프리카공화국).
네, 이번에는 세메냐가 졌습니다. 이와 함께 IAAF 세계선수권대회 여자 800m 2연패이자 통산 네 번째 우승 도전 기회도 날려 버릴 운명에 처했습니다.
스위스 연방 재판소에서 "테스토스테론(남성 호르몬) 수치를 낮추지 않으면 800m 경기에 출전할 수 없다"고 30일(이하 현지시간) 판결했기 때문입니다.
이는 56일 전 '항소심이 끝나기 전까지 세메냐는 현 상태로 여자부 경기에 출전할 권리가 있다'고 결정했던 걸 뒤집는 판결입니다.
IAAF는 지난해 4월 테스토스테론 수치가 5 n㏖/ℓ이 넘는 선수는 △400m △400m 허들 △800m △1500m △1마일(1.62㎞) 여자부 경기에 참가하지 못하도록 하는 규정을 만들었습니다.
이 숫자를 넘는 선수는 테스토스테론 억제제 복용 등으로 수치를 낮추거나 남자부 경기에 출전해야 합니다.
그러자 세메냐는 "나는 절대 이 약을 처방받거나 복용하지 않을 것"이라며 국제스포츠중재재판소(CAS)에 IAAF를 제소하고 나섰습니다.
한번도 공개한 적은 없지만 많은 전문가가 세메나는 테스토스테론 수치 7~10 n㏖/ℓ 정도를 나타낼 것이라고 짐작하고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여성은 0.12~1.79, 남성은 7.7~29.4 n㏖/ℓ 사이가 나옵니다.
올 4월 27일 남아프리카공화국 요하네스버그에서 열린 이벤트 대회 당시 세메냐. 요하네스버그=로이터 뉴스1
그러나 세메냐가 기대했던 것과 달리 CAS는 IAAF 손을 들어줬습니다.
CAS는 "IAAF에서 마련한 '테스토스테론 제한 규정'이 차별적인 건 맞지만 여자 선수를 보호하려면 꼭 필요한 조치"라고 판결했습니다.
이에 세매냐는 스위스 연방 재판소로 다시 이 문제를 끌고 갔습니다. CAS 본부가 스위스 로잔에 위치하고 있기 때문에 다시 이 나라 최고 법원 판결을 받아보려던 것.
앞서 보신 것처럼 스위스 연방 재판소는 지난달 이 재판이 모두 끝날 때까지는 여자부 경기에 나서도 좋다고 결정했지만 IAAF에서 "세메냐는 생물학적으로 남성"이라며 항소하자 판결 내용이 바뀌었습니다.
단, '재판이 끝날 때까지 세메냐가 테스토스테론 제한 규정을 따라야 하느냐'에 대한 법원 해석이 달라졌을 뿐 세메냐가 스위스 연방 재판소에 낸 항소심 결과가 나온 건 아닙니다.
항소심 변호를 총괄하고 있는 도로스 슈람 변호사는 "이번 판결이 항소심 결과에 영향을 주는 건 아니다. 우리는 세메냐가 가장 기본적인 인권을 지킬 수 있도록 계속 싸워나갈 것"이라면서 "경주 결과는 언제든 결승선에서 판가름나는 법"이라고 말했습니다.
2012 런던 올림픽 여자 800m 결선에서 결승선을 두 번째로 통과한 캐스터 세메냐.
사실 세메냐가 테스토스테론 억제제를 복용해 보지 않은 건 아닙니다.
세메냐는 2012 런던 올림픽 때도 성별 논란에 시달리면서 이 약을 먹고 경기에 나섰는데 △몸무게 증가 △구역질 △발열 △복통 같은 부작용에 시달렸다고 합니다.
세메냐는 당시 결선에서 마리야 사비노바(34·러시아) 두 번째로 결승선을 통과했지만 2015년 샤비노바가 도핑(약물을 써서 경기력을 끌어올리는 행위)을 저질렀다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금메달을 받게 됐습니다.
세메냐는 2016년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 때도 이 종목 금메달을 따냈습니다.
세메냐는 이날 판결이 나온 뒤 성명을 통해 "매우 실망스럽다. 세계선수권 800m 챔피언 자리를 지키고 싶었는데 아예 출전조차 할 수 없게 됐다"면서 "그러나 싸움을 멈추지 않겠다. 같은 고통에 시달리고 있는 모든 여성 선수 인권을 위해 싸우겠다"고 밝혔습니다.
올해 세계선수권은 9월 27일 도하에서 막을 올립니다.
세메냐는 이 대회 출전을 아예 포기하고 내년부터는 테스토스테론 수치에 관계없이 출전할 수 있는 종목(예 3000m)에 출전하면서 싸움을 이어간다는 계획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