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는 스포츠가 공용어입니다.


❝스포츠에서 유일한 것이 승리라면 이기는 그 순간 다시 경합을 벌여야겠다는 욕구는 사라질 것이다. 그렇다면 마이클 조던과 로저 클레멘스가 나이 마흔에 계속 경쟁을 벌였던 사실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 '소크라테스 야구장에 가다' 中에서


올 시즌 투수들의 바빕이 상당히 낮습니다. 이게 한 투수의 문제라면 운으로 치부할 수 있겠지만 상위팀들은 전체적으로 낮아진 모습입니다. 보통 5월 전까진 이런 바빕이 정상인가요? 타고투저 이전의 시대 14년 이전의 바빕이 궁금합니다.


김정준 SBS스포츠 해설위원과 함께 진행하고 있는 팟캐스트 '김정준의 야구수다' 청취자 Arman 님께서 제게 남겨주신 질문입니다. 먼저 질문 남겨주셔서 감사드린다는 말씀부터 올립니다.


혹시 모르시는 분께 설명드리면 저기서 바빕은 BABIP를 가리키는 표현. BABIP는 'Batting Averages On Balls In Play'를 줄인 말로 필드 안에 타구를 때렸을 때 타율을 가리킵니다. 그러니까 삼진과 홈런을 빼고 계산하는 타율이 BABIP라고 생각하시는 게 제일 간단한 접근법입니다.


일단 5일 경기까지 리그 평균 BABIP는 .316. 이는 프로야구 38년 역사에서 여섯 번째로 높은 기록입니다. 그러니까 '상당히 낮다'고 평가하신 게 꼭 정확하지 않은 것. (질문을 3일에 올리셨는데 그날까지 리그 평균 BABIP도 .316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평가를 내리신 첫 번째 이유는 아마 Arman 님께서 LG 팬이시기 때문일 겁니다. LG 투수진은 같은 기간 .286으로 리그에서 제일 좋은(낮은) BABIP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두 번째 이유는 역대 최고 BABIP 1~5위가 전부 2014년 이후에 나왔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최근에 워낙 BABIP가 높았으니까 올 시즌은 상대적으로 BABIP가 낮다는 느낌을 받는 게 어떤 의미에서는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그렇다면 이번 BABIP가 최근 5년보다 내려간 이유는 뭘까요? '공인구 변화'를 떠올리시는 분이 적지 않으시겠지만, 최근 10년 동안 공인구 평균 반발계수와 BABIP 사이에는 통계적으로 유의미한 상관관계가 존재하지 않습니다.


제가 생각하는 이유는 '기온'입니다.


올해 프로야구는 3월 23일 개막했습니다. 이는 2014~2018년 5년 동안 개막일 평균(3월 28일)보다는 닷새, 2009~2018년 10년 평균(3월 30일)보다는 일주일 이른 날짜입니다.


3월에는 날짜가 이르면 춥습니다. 기상청에 따르면 서울 지역 3월 30일 평년(1981~2010년) 평균 기온은 8.2도인데 3월 28일은 7.6도, 3월 23일은 7.2도입니다.


날이 추우면 어떻게 될까요? 타자들이 못 칩니다.


한국야구위원회(KBO) 공식 기록원은 매 경기 시작 시간 기록지에 온도, 습도, 날씨, 풍향·풍속 등을 적어 넣습니다.



이렇게 기록원이 기록지에 쓴 온도를 기준으로 최근 10년(2009~2018년) 타격 기록을 정리하면 아래와 같습니다.


▌2009~2018년 프로야구 기온별 타격 성적

 기온  타율  출루율  장타력  OPS  BABIP
 9도 이하  .260  .344  .371  .715  .308
 10~19도  .273  .351  .410  .761  .318
 20~29도  .279  .354  .421  .775  .321
 30도 이상  .283  .357  .434  .791  .320


확실히 날이 따뜻할수록 타자가 유리합니다. BABIP도 완전히 정비례하지는 않지만 9도 이하(.308)와 10도 이상(.320) 두 그룹으로 나눠 보면 확실히 차이가 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올 시즌 현재 프로야구는 총 178경기를 소화했고 이 중 19경기(10.7%)를 시작할 때 기록원은 기온이 9도 이하라고 적었습니다. 최근 10년 동안에는 5월 5일 이전까지 총 1254경기를 소화했는데 이 중 4.5%(56경기)가 9도 이하였습니다. 올해 9도 이하 경기 비율이 이전 10년보다 2.4배 높은 겁니다.


앞선 5년과 비교하면 차이가 더욱 두드러집니다. 2014~2018년에는 역시 어린이날 이전까지 총 752경기를 소화했고 그 중 2.9%(21경기)만 9도 이하였습니다. 올해가 이 5년보다 9도 이하 경기 비율이 3.7배 높습니다.


바깥 기온 영향을 받지 않는 고척스카이돔 역시 제 주장을 뒷받침합니다. 고척돔에서 열린 18경기 BABIP는 .344로 나머지 구장 평균(.313)보다 3푼 이상 높습니다.


'베이스볼 프로스펙터스'에 따르면 BABIP는 인플레이 타구 820개는 있어야 기록을 믿을 수 있습니다. 고척돔에서 현재까지 나온 인플레이 타구는 977개니까 표본이 너무 적다고 말할 단계는 넘어 섰습니다. 


물론 BABIP에 영향을 끼치는 요소가 기온 딱 하나라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그리고 아직 전체 일정 가운데 4분의 1 정도밖에 지나지 않았기 때문에 이 기록이 다시 바뀔 수도 있습니다. 그래도 BABIP가 최근 5년보다 내려간 이유 혹은 투고타저가 주춤한 이유를 꼽으라면 저는 주저 않고 '기온'이라고 답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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