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는 스포츠가 공용어입니다.


❝스포츠에서 유일한 것이 승리라면 이기는 그 순간 다시 경합을 벌여야겠다는 욕구는 사라질 것이다. 그렇다면 마이클 조던과 로저 클레멘스가 나이 마흔에 계속 경쟁을 벌였던 사실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 '소크라테스 야구장에 가다' 中에서


이것 참 재미있습니다.


김대호 MK 스포츠 편집국장은 17일 기명 칼럼 '김대호의 야구생각'을 통해 "경기시간 단축, '획기적 방안'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김 국장이 생각하는 획기적인 경기시간 단축 방안은 이렇습니다.


야구 경기시간 단축을 위한 획기적 방안을 제안한다. 2스트라이크 이후 파울 볼을 쳤을 경우 수비수가 직접 잡지 못해도 타자는 아웃이 되는 것이다. 스리번트를 시도해 파울 볼이 돼 아웃되는 것과 같은 이치다. 


이렇게 되면 경기시간은 절반 가까이 짧아질 것이며 투수들의 투구 수 또한 눈에 띄게 줄어들 것이다. 뿐만 아니라 타자들의 대응도 달라져 매우 공격적이 될 것이다. 무엇보다 야구 자체가 매우 박진감 넘치게 전개돼 팬들의 흥미를 유발할 것으로 기대된다.  


김제원 한국야구위원회(KBO) 기록위원장도 '매우 흥미로운 발상'이라며 반겼다고 합니다. 김 국장은 "김 위원장은 '일부에선 야구의 근본을 무너뜨리는 생각이라고 치부할 수 있지만 7이닝 경기보단 훨씬 야구의 가치를 키지면서 흥미를 배가시킬 수 있는 묘안'이라고 했다"고 썼습니다.


물론 파울볼 숫자를 제한하면 경기 시간은 확실히 줄어들 겁니다. 잠깐 제가 지난달에 썼던 '베이스볼 비키니'에서 인용하면:


파울볼이 나오면 경기 시간이 늘어나기 때문입니다. 얼핏 생각해도 그럴 것 같죠? 실제 통계 결과도 그렇습니다. 


일반적으로는 키가 클수록 몸무게도 많이 나갑니다. 단, 키는 크지만 마른 사람도 있고 반대 사례도 있기 때문에 꼭 그런 건 아닙니다. 이럴 때는 '상관계수'라는 값을 알아보면 도움이 됩니다. 시대와 인종에 따라 다르지만 키와 몸무게의 상관계수는 보통 0.7~0.8로 나타납니다. 


프로 원년부터 지난해까지 경기당 파울볼 수와 경기 시간의 상관계수는 0.834입니다. 키가 몸무게에 끼치는 영향보다 파울볼 수가 경기 시간에 끼치는 영향이 더 큰 겁니다. 그러니 이론적으로는 파울볼을 줄이면 경기 시간을 줄일 수 있습니다.


이 기사를 쓴 건 아래 그래프를 통해 확인하실 수 있는 것처럼 프로야구 원년(1982년)부터 지난해까지 계속 파울볼이 늘어나는 추세이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저는 '이론적으로는'이라고 전제를 달았는데 김 국장은 과감하게 2스트라이크 이후 파울볼을 아웃 처리하는 방식으로 실제 파울볼 숫자를 줄이자고 제안합니다.


그런데 왜 2스트라이크 이전에는 파울볼에 스트라이크를 선언하면서 그 이후가 되면 파울볼은 그냥 파울볼로 처리하는 걸까요?


파울볼이라는 개념은 (역사상 첫 번째 야구 규칙이라고 잘못 알고 있었던) 니커보커스 규칙(1845년)에도 등장합니다. 이때 파울볼은 (현대 개념으로) 스트라이크도 볼도 아닌 그냥 파울볼이었습니다.


파울볼 판정 기준도 지금과 달랐습니다. 1876년까지는 타구가 처음 그라운드에 떨어진 곳이 페어 지역이었다면 결국 이 공이 어디를 향하던 페어였습니다. (지금도 외야에서는 이 기준을 적용하지만 내야에서는 파울 라인 바깥으로 나가면 파울볼입니다.)


디키 피어스(1836~1908·사진) 같은 선수는 이 규칙 활용에 아주 능했습니다. 일단 처음에는 페어 지역에 떨어지지만 결국 파울 라인 바깥으로 흘러 나가도록 공에 회전을 거는 재주가 있었던 것. 그러면 손쉽게 안타를 하나 얻을 수 있었습니다. 그가 이렇게 공에 회전을 걸 때 사용한 대표적인 방법이 (이미 눈치 채신 분이 많으시겠지만) 바로 '번트'였습니다.


1877년 "타구가 파울 지역에 떨어졌다 페어 지역으로 오면 페어볼이고 페어 지역에 있다가 파울 지역으로 가면 파울볼"이라는 내용이 규칙에 들어가면서 번트로 '페어 → 파울' 타구를 만들어 손쉽게 안타를 만드는 문은 좁아졌지만 이미 사람들은 번트에 맛을 들인 상태. 한번 맛을 알게 되면 모르던 상태로 돌아가는 건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피어스 다음으로 번트를 적극 활용한 건 알래 래섬(1860~1952·사진)이었습니다. 여전히 메이저리그 역대 도루 7위(742개)에 이름을 올릴 만큼 발이 빨랐던 그는 타구를 페어 지역에 번트 타구를 느리게 굴려도 안타를 만드는 데 별 어려움이 없었습니다.


게다가 그는 번트를 활용하면 투수를 괴롭힐 수 있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도 했습니다. 여전히 파울은 스트라이크도 볼도 아니었지만 상대 투수가 공을 한 개 더 던져야 한다는 건 마찬가지였습니다.


당시에(1887년 이전) 타자는 높은 쪽 또는 낮은 쪽 코스로 던져달라고 투수에게 요구할 권한이 있었습니다. 랜섬은 낮은 쪽 코스를 요구한 뒤 번트로 파울을 만들면서 투구수를 늘렸습니다.


래섬이 이 장기(?)로 유명세를 얻은 건 1886년 월드시리즈(World's Championship) 1차전이었습니다. 이 시리즈에서 맞대결을 벌인 건 래섬이 몸담고 있던 세인트루이스 브라운스(현 카디널스)와 시카고 화이트스타킹스(현 컵스). 시리즈 첫 경기를 앞두고 시카고 지역 신문 '시카고 트리뷴'은 래섬을 원숭이라고 부르는 기사를 내보냈습니다.


이에 열이 받았던 래섬은 1회초 첫 타석에서 번트 파울 10개를 만들어 내면서 시카고 투수 짐 맥코믹(1856~1918)을 괴롭혔습니다. 이 경기 때 래섬이 유독 심하기는 했지만 당시 한 타석에서 파울 번트 5, 6개가 나오는 건 드물지 않은 일이었습니다.


이에 당시 양대 메이저리그였던 메리칸 어소시에이션(AA)과 내셔널리그는 스트라이크 규정을 합의하기로 뜻을 모읍니다. 헛스윙, 루킹 스트라이크와 함께 '파울볼을 치려는 의도가 명확한 모든 시도(Any Obvious attempt to make a foul hit)'도 스트라이크로 선언하기로 한 겁니다.


여기서 '페어볼'(a fair ball)은 파울볼과 반대 개념이 아니라 스트라이크 존을 통과한 공이라는 뜻입니다.


문제는 심판에게 '의도가 명확한지' 판단을 맡겼다는 것. 심판이 신이 아닌 이상 타자가 정상적으로 스윙했을 때는 이 의도를 파악하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게다가 시대와 종목을 막론하고 심판은 '가만히 있으면 중간은 간다'는 '부작위 편향'에 휩싸이기 쉽습니다. 그렇다고 규칙을 새로 만들었는데 아예 판정을 하지 않을 수는 없는 노릇. 그런 이유로 번트 파울만 스트라이크 판정을 받는 일이 대부분이었습니다.


단, '파울볼을 치려는 의도가 명확할 때'만 이 규칙을 적용했기 때문에 희생번트 상황은 예외였습니다. (희생번트는 1889년부터 별도로 집계했습니다.) 희생번트를 시도하다가 파울이 나왔을 때는 스트라이크로 판정하지 않았던 겁니다.


1894년 야구 규칙은 "타자가 번트 안타를 시도하면서 홈베이스와 1루, 3루 사이의 파울 지역에 떨어지거나 파울 지역으로 굴러나가는 파울 타구를 쳤을 때 스트라이크를 선언한다"고 규정하고 있었습니다.


이번에도 문제는 정말 희생번트를 시도한 건지 아니면 번트 안타를 노린 건지 그 의도를 남(심판)이 파악하시는 쉽지 않다는 것. 1897년이 되면 이 규칙은 "번트 타구가 파울 지역으로 가면 심판은 스트라이크를 선언해야 한다"로 바뀝니다.


번트 파울 타구에 대해서는 조건을 따지지 않고 스트라이크를 선언하게 된 것. 당시에는 볼 카운트 제한도 없었기 때문에 2스트라이크 이후에 번트 파울이 나오면 타자는 (삼진) 아웃이었습니다.


이에 타자들은 작전을 바꿉니다. '용규 놀이' 테크닉을 기르기 시작한 것. 여전히 스윙으로 파울을 만들어냈을 때는 스트라이크가 아니었던 걸 이용한 겁니다.


21세기 한국에서 이용규(34·한화)가 '파울, 파울 또 파울' 상징하는 것처럼 메이저리그에서는 로이 토마스(1874~1959)가 당시 이 부문 대가로 통했습니다. 그나마 지금은 파울=스트라이크라 파울을 많이 치면 불리한 볼카운트에 몰리지만 당시에는 그런 것도 없었습니다.


당시에도 이건 타자에게 너무 유리하다는 지적이 있었고 내셔널리그는 1901년 공수 밸런스를 조정하는 차원에서 "2스트라이크 선언 이전에 플라이볼로 잡히지 않은 파울볼은 스트라이크"라고 명시했습니다.


당시 내셔널리그 관계자들은 파울볼을 어찌나 싫어했는지 1902년에는 "2스트라이크 이후 파울볼을 치려는 의도가 명백할 때는 아웃을 선언한다"는 조항도 들어갔습니다.


이번에도 '의도' 판단은 심판 몫이었기 때문에 효력이 의문일 수밖에 없었고 이 조항은 1903년 아메리칸리그에서도 '2스트라이크 이전 파울볼 = 스트라이크' 규칙을 채택하면서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됩니다.


애석하게도(?) 이 과정에서 번트는 구제 받지 못했습니다. 2스트라이크 이후라고 해도 번트 시도가 파울이 됐을 때는 '결국 미필적 고의'라는 논리에 따라 아웃 선언을 내렸던 것.


당시 야구 규칙에 명확한 규정이 있던 것도 아닙니다. 지금 우리가 쓰고 있는 파울볼 규칙을 제안한 야구 심판 행크 오데이(1859~1935)는 1903년 버팔로 이브닝 뉴스와 인터뷰하면서 "야구 규칙 어디에도 번트 파울로 세 번째 스트라이크를 선언 받은 선수는 아웃이라고 규정한 내용은 없다. 그저 관례이기 때문에(because it is the custom) 그렇게 판정을 내리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이 관례는 지금 야구 규칙 5.09(a)(4) "2스트라이크 뒤의 투구를 번트하여 파울 볼이 되었을 경우 (타자는 아웃)"이라고 남아 있습니다.


김 국장(누군지 기억하시죠?)은 이 규정을 '약간만 손질하면' △경기 시간은 절반 가까이 짧아질 것이며 △투수들의 투구 수 또한 눈에 띄게 줄어들고 △타자들의 대응도 달라져 매우 공격적이 될 것이고 △야구 자체가 매우 박진감 넘치게 전개돼 팬들의 흥미를 유발할 것이라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야구를 (7회까지가 아니라) 9회까지 하게 된 건 '우발적 사건'에 가까웠습니다. 반면 '2스트라이크 이전 파울볼 = 스트라이크'는 이렇게 역사가 쌓이고 쌓인 결과물입니다. 물론 다시 1902년 규칙을 되살려 "2스트라이크 이후에 파울볼을 치려는 의도가 명백할 때" 아웃을 선언하지 못할 건 없지만 정말 기대대로 저렇게 풀릴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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