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1. 사진에서 LG 등번호 7번 선수는 누구일까요?
A1. 내야수 정주현(29)입니다.
Q2. 사진 오른쪽에 있는 김현수(31)는 등번호 몇 번인가요?
A2. 이번에는 22번이 정답입니다.
두 문제 모두 맞추셨나요?
LG는 이번 시즌 프로야구 개막과 함께 7년 만에 '블랙 유니폼'(일명 '검니폼')을 다시 부활시켰습니다. 일부 방문 경기 때 입는 이 유니폼이 예전 검니폼과 제일 달라진 건 이미 확인하신 것처럼 등에서 이름이 빠졌다는 것. 그 덕에 거의 모든 상대팀 팬이 (그리고 적지 않은 LG 팬도) 등번호만 가지고 그 선수가 누구인지 퀴즈를 풀어야 하는 처지가 됐습니다.
물론 LG만 프로야구에서 유일하게 등에 이름이 없는 유니폼을 입는 건 아닙니다. 키움이 일요일 안방 경기 때 입는 유니폼(일명 '영웅데이 유니폼')에도, 롯데 유니세프데이 (안방) 유니폼에도 선수 이름이 없습니다.
한국에는 이렇게 이름이 없는 '특별 유니폼'이 있지만 메이저리그에는 아예 유니폼에 이름을 쓰지 않는 팀이 있습니다. 보스턴과 샌프란시스코는 안방 유니폼에 선수 이름이 없고, 뉴욕 양키스는 안방과 방문 경기 유니폼 모두 선수명을 쓰지 않습니다.
그렇다 보니 '유니폼에 이름을 쓰지 않는 팀=뉴욕 양키스'가 공식처럼 떠오르곤 합니다. 아예 '뉴욕 양키스 유니폼에는 왜 선수의 이름이 없을까?'라는 책이 있을 정도. 미국 뉴욕에서 활동 중인 스포츠 마케터 스즈키 도모야(鈴木友也) 씨가 쓴 책 일부를 인용하면:
메이저리그에서도 다른 구단의 유니폼에는 일본 프로야구처럼 선수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그런데 다른 구단에서는 당영히 넣는 이름을 왜 뉴욕 양키스에서는 넣지 않는 것일까? 그 이유는 '일개 선수가 구단보다 먼저일 수 없다'는 양키스 구단만의 철학 때문이다.
사실 예전의 모든 야구폼에는 선수의 이름은커녕 등번호조차 없었다. 양키 스타디움의 스위트박스에 가 보면 등번호가 없던 시절의 휘귀한 유니폼 사진들이 바닥에 장식되어 있다.
그런데 등번호를 유니폼에 처음으로 넣은 구단이 다름 아닌 뉴욕 양키스다. 1929년, 양키스는 타순 번호를 그대로 선수의 번호로 삼아 등에 써넣었다. 베이스 루스의 등번호가 3번이고, 루 게릭의 등번호가 4번인 이유는 각각 3번 타자와 4번 타자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다른 구단도 이를 모방해서 등번호를 넣기 시작했다.
타순을 등번호로 삼았기 때문에 실력 있는 선수가 많은 양키스에서는 한 자릿수 등번호가 지금은 거의 영구결번이 되었다. 2014년 시즌을 끝으로 은퇴한 데릭 지터의 등번호 2번은 영구결번이 될 것이 거의 확실하므로, 이제 현역 양키스 선수가 사용할 수 있는 한 자릿수 등번호는 하나도 남지 않는다.
1960년대가 되자 등번호 위에 선수 이름까지 넣는 구단이 생겨났다. 많은 구단이 잇따라 선수 이름을 넣기 시작했지만, 양키스는 이런 흐름을 완강히 거부했다. 양키스의 유니폼에는 지금도 선수 이름이 들어가지 않는다.
여기서 잠깐. '일개 선수보다 구단이 먼저'라고 주장하는 팀이 등번호는 처음 넣었다니 이상하지 않나요? 등번호도 분명 선수를 특정할 수 있는 도구인데 말입니다. 메이저리그에 어느 정도 관심이 있는 분이라면 그리고 위에 있는 인용문을 꼼곰히 읽으신 분이라면 아래 사진 주인공이 데릭 지터(45)라는 걸 어렵지 않게 눈치채실 수 있습니다.
양키스에서 유니폼에 등번호를 넣은 건 '스타 마케팅'이 필요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양키스에서 유니폼에 등번호을 달기로 했다고 발표한 건 1929년 1월 23일(이하 현지시간).
이 기사에 나온 것처럼 양키스가 등번호를 쓰기로 한 건 경기장을 찾은 관중이 선수를 쉽게 알아볼 수 있도록 하려는 목적이었습니다(each may be readily identified by fans in the stands).
1923년 구단 역사상 첫 번째 월드시리즈 정상을 차지한 양키스는 1927, 1928 월드시리즈 2연패에 성공하면서 명문 구단으로 자리매김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팬들에게 '우리 팀에 이런 선수가 있어요'하고 더 잘 알릴 수 있도록 등번호를 채택한 겁니다.
그러니 일단 '일개 선수가 구단보다 먼저일 수 없다'는 철학 때문에 이름을 쓰지 않는다는 주장은 (다소) 모순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등번호를 유니폼에 처음으로 넣은 구단이 다름 아닌 뉴욕 양키스"라는 말도 절반만 맞습니다.
일단 양키스는 발표 시점을 기점으로 그렇다고 주장합니다. 양키스는 공식 홈페이지에 유니폼과 로고 역사를 설명하면서 "1929년 뉴욕 양키스는 등번호를 유니폼의 영구적인 부분으로 만든 첫번째 팀이 되었다(In 1929, the New York Yankees became the first team to make numbers a permanent part of the uniform)"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어떤 첫 번째 기록에 수식어(여기서는 'permanent')가 들어갈 때는 야로가 있다고 의심해 볼 필요가 있다는 걸 많은 분들이 알고 계실 터.
양키스에서 등번호를 쓰겠다고 발표하자 클리블랜드 역시 '그러면 우리도 하겠다'고 밝혔습니다. 클리블랜드는 1916년 6월 26일 메이저리그 역사상 처음으로 유니폼(소매)에 선수 번호를 달았던 팀. 명분도 충분했습니다.
1929년 메이저리그 개막일은 4월 16일이었습니다. 양키스는 이날 보스턴을 상대로 안방 개막전을 치를 예정이었지만 애석하게도 이날 뉴욕에는 비가 내렸습니다. 반면 클리블랜드가 디트로이트를 불러 들여 개막전을 치른 던 필드는 맑은 하늘을 자랑했습니다. 그렇게 양키스가 아니라 클리블랜드가 등번호를 달고 메이저리그 경기를 치른 첫 번째 팀이 됐습니다.
이 등번호가 유행하는 데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습니다. 양키스와 클리블랜드에서 등번호를 도입하고 3년이 지난 1932년이 되면 당시 메이저리그 16개 팀이 모두 등번호를 채택하게 됩니다. 현재는 아예 '유니폼에 등번호를 달아야 한다'는 내용이 야구 규칙에 들어 있습니다.
3.03(a)(1)한 팀의 모든 선수는 같은 색깔, 형태, 디자인의 유니폼을 입어야 한다. 그리고 모든 선수의 유니폼에는 6인치(15cm) 크기 이상의 등번호를 붙여야 한다. All players on a team shall wear uniforms identical in color, trim and style, and all players’ uniforms shall include minimal six-inch numbers on their backs.
따라서 현재는 특수한 사정이 있지 않은 이상 등번호를 빼는 건 규칙 위반에 해당합니다. 얼핏 생각해 보셔도 등번호가 없는 야구 유니폼은 어딘가 허전하지 않은가요?
상상이 잘 안 가신다면 실제로 보시죠. 양키스와 보스턴은 2012년 4월 20일 유니폼에서 이름은 물론 등번호까지 다 빼고 경기를 치렀습니다.
이날은 보스턴 안방 구장 펜웨이파크가 100번째 생일을 맞는 날이었습니다. 그래서 양 팀 모두 1912년 유니폼을 되살려 입고 나왔는데 당시 유니폼에는 이름은 물론 등번호도 없었으니 등 뒤를 이렇게 모두 비워둔 것. (참고로 당시 양키스는 하이랜더스·highlanders라는 애칭을 썼습니다.)
그러면 당시에는 선수를 어떻게 구분했을까요? 클리블랜드가 소매에 번호를 처음 붙이고 나왔다는 1916년 크리스천 사이언스 모니터 기사를 아주 꼼꼼하게 읽으신 분은 '스코어 카드(score cards)'라는 낱말이 등장했다는 걸 알고 계실 겁니다.
지금은 야구 선수 정보가 넘쳐 나는 시대지만 (그래서 이렇게 태평양 건너에 사는 누리꾼이 100년 전 메이저리그 이야기를 쓸 수 있을 정도가 됐지만) 당시는 TV 중계는커녕 라디오 중계도 없던 시절. 당연히 상대팀에 대한 정보가 부족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경기장에 들어가면서 아래처럼 생긴 스코어 카드 또는 프로그램(북)을 파는 모습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클리블랜드에서 처음 소매에 번호를 달았던 건 스코어 카드에서 방문 팀 선수 사진과 번호를 연결하는 아이디어를 차용했던 겁니다.
이 스코어 카드에 어차피 선수 이름을 적어야 하니까 기왕이면 유니폼 번호가 타격 순서랑 일치하면 편하겠죠? 그래서 1929년 등번호를 도입할 때 양키스만 타순에 따라 번호를 붙인 게 아니라 클리블랜드도 그랬습니다. 당시 클리블랜드 등번호 1번은 재키 타베너(1897~1969)였고 개막전 1번 타자 역시 타베너였습니다.
1975년 시카고 화이트삭스 소유권을 되찾고 기뻐하는 빌 베엑
그러면 유니폼 등 뒤에 이름이 들어간 건 언제일까요? 정답은 등번호가 생기고 31년이 지난 1960년이었습니다.
이 아이디어를 처음 떠올린 건 마케팅 천재이자 시카고 화이트삭스 구단주였던 빌 베엑(1914~1986). 베엑은 1962년 펴낸 자서전 '베엑 애즈 인 렉(Veeck As In Wreck)'에 "1959년 TV 중계로 우리 팀 경기를 보고 있다가 자막으로 선수 이름이 나오는 걸 보게 됐다. '왜 TV 중계 시청자가 직접 경기장을 찾은 관중보다 더 어드밴티지를 누려야 하나'하는 생각이 들어 유니폼에 이름을 넣기로 결심했다"고 썼습니다.
그래서 시카고 화이트삭스는 1960년 방문 경기 유니폼부터 이름을 넣기 시작했습니다. 안방 경기 유니폼에 이름을 넣지 않은 건 이미 예상하시는 것처럼 스코어 카드와 프로그램북을 팔아야 했기 때문입니다.
이 아이디어에 모두가 동의했던 건 아닙니다. 아니, 거꾸로 나머지 15개 팀 모두 반대 의견을 피력했습니다. 그냥 의견만 피력한 게 아니라 메이저리그 사무국에 항의 공문을 보낼 정도로 반대 의사가 분명했습니다. 전통을 해친다는 이유였습니다.
이에 포드 프릭(1894~1978) 당시 커미셔너는 원하는 팀은 등번호 위에 이름을 써도 된다고 유권해석을 내렸습니다. 유니폼에 등번호를 써야 한다고 강제하고 있는 야구 규칙이 이름에 대해서는 아무 언급도 하고 있지 않은 이유입니다.
그만큼 도입 속도도 천차만별이었습니다. 지금은 양키스만 안방과 방문 유니폼 모두 이름이 없는 구단이지만 보스턴도 1989년까지는 안방 유니폼뿐 아니라 방문 유니폼에도 선수 이름이 없었습니다.
아래 동영상은 보스턴과 뉴욕 메츠가 맞붙은 1986년 월드시리즈 6차전 때 보스턴 1루수 빌 버크너(70)가 알을 까는 장면. 이 경기는 메츠 안방 셰이 스타디움에서 열렸는데 보시는 것처럼 보스턴 방문 유니폼에 선수 이름이 없습니다.
이 장면을 보면 유니폼에 선수 이름이 없을 때 생기는 장점 한 가지는 확실히 알 수 있습니다. 배경 지식이 없는 분은 실책을 저지른 보스턴 1루수가 버크너라는 사실을 알아차리기가 쉽지 않을 테니까요. 그런데 그것 말고 다른 장점이 뭐가 있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사실 양키스에서 유니폼에 이름을 쓰지 않는 이유를 공식적으로 설명한 적은 없습니다. 그렇다면 스즈키 씨는 "'일개 선수가 구단보다 먼저일 수 없다'는 양키스 구단만의 철학"을 어디에서 확인한 걸까요? 이번에도 책을 보겠습니다.
뉴욕 양키스가 유니폼에 선수 이름을 넣지 않는 이유를 관계자로부터 들었을 때, 양키스 구단 경영의 근처에 흐르는 '철칙'을 알게 되었다. 양키스에서는 선수뿐 아니라 구단 직원도 양키스의 일원이라는 자부심을 가슴에 품고, 늘 최고의 고객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최선의 노력으로 직무를 수행하고 있다. 함께 일하다 보면 다른 구단과의 의식 차이를 금방 알 수 있을 정도이다.
네, 그냥 전해 들은 '카더라'였던 겁니다.
이 카더라는 참 무섭습니다. LG는 블랙 유니폼을 다시 입기로 했다고 발표하면서 "개인보다 팀을 우선하는 '팀 퍼스트' 정신을 표방하여 유니폼에 선수명을 제외하고 배번만 표시한다"고 설명했습니다. 어쩐지 이 설명 어딘가에 '양키스처럼'이라는 표현을 덧붙이고 싶지 않으신가요?
저 역시 양키스가 다른 모든 분야에서 '최고의 고객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최선의 노력으로 직무를 수행하고 있다'고 믿어 의심치 않지만 유니폼에 선수 이름을 쓰지 않는 건 불친절하다는 비판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전 세계 최고 명문 야구팀이라는 양키스가 이런데 한국 구단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
유니폼에서 이름을 지운다고 생길 팀 퍼스트 정신이었다면 생겨도 진작에 생겼을 겁니다. 그리고 프로 스포츠에서는 팀 퍼스트만큼 '팬 퍼스트'도 중요합니다. 유니폼에서 선수명을 지우는 건 자유지만 그만큼 불편한 팬도 생긴다는 것도 기억해주세요. 등번호만 가지고 누구인지 알 수 있는 한국 프로야구 선수 정말 얼마 없습니다.
그래서 오지환(29)은 도대체 몇 번입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