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쿠라다 요시타카 전 일본 올림픽·패럴림픽 담당상(오른쪽)이 지난해 11월 6일 기자회견 도중 비서관에게 도움을 청하고 있는 모습. 아사히신문 제공
정치가에게 중요한 건 컴퓨터 실력보다 '입 조심' 능력인 모양입니다.
11일 아사히(朝日)신문 등 일본 언론에 따르면 사쿠라다 요시타카(櫻田義孝) 올림픽·패럴림픽(장애인올림픽) 담당상(장관) 겸 사이버 보안 담당상은 전날 도쿄(東京)에서 열린 다카하시 히나코(高橋比奈子) 의원 후원회에 참석해 "훗코(復興·부흥)보다 중요한 건 다카하시 의원"이라고 말했습니다.
일본에서 '훗코'는 동일본 대지진 피해 지역 재건을 의미하는 낱말. 2011년 3월 11일 일본 도호쿠(東北) 지역에서 최대 규모 7.3 지진이 일어나면서 1만5897명이 목숨을 잃었으며 아직도 피해 복구 작업이 끝나지 않은 상태입니다. 그런데 현직 장관 입에서 이런 이야기가 나온 것.
이 발언 진의를 묻는 취재진 질문에 그는 "그렇게 말하지 않았다", "기억에 없다"고 부인했지만 공산당을 비롯한 야당에서는 "이만큼 폭언과 실언을 반복하는 각료를 임명한 아베 정권의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비판이 일었습니다.
사쿠라다 담당상은 결국 이날 오후 총리관저를 찾아 "피해자에게 상처를 준 책임을 지고 싶다"며 사의를 표했고, 아베 신조(安倍晉三) 총리는 사표를 수리했습니다. 도쿄 올림픽 개막을 472일 앞두고 주무 장관이 물러나게 된 겁니다.
사실 이 7선 의원은 이번 발언 이전부터 올림픽 담당 장관으로는 부적절하다는 지적을 받았습니다. 야당에서 "이만큼 폭언과 실언을 반복하는"이라고 이야기한 건 이 때문입니다.
당장 자카타르-팔렘방 아시아경기(아시안게임)에서 6관왕을 차지했던 일본 여자 수영 간판 이케에 리카코(池江璃花子·사진)가 백혈병에 걸린 사실을 공개한 올해 2월만 해도 그는 선수에게 위로를 건네기는커녕 "일본이 큰 기대를 하는 선수라 실망하고 있다. 리드하는 선수를 통해 전체 (올림픽) 열기가 고조될 수 있는데 열기가 떨어질까 봐 걱정된다"고 말했습니다.
이 포스트 처음에 컴퓨터 실력 이야기를 꺼낸 건 사쿠라다 담당상이 일본 정부 사이버 보안 총 책임자이자 도쿄 올림픽 사이버 보안 총책임자이기도 했기 때문입니다. 이런 자리를 맡았으면서도 무려 '컴맹'이었습니다. 그는 지난해 11월 14일 의회에서 "컴퓨터를 이용한 업무는 직원에게 맡겼기 때문에 직접 쳐본 적이 없다"고 말했습니다.
이 소식을 외신에서도 앞다퉈 보도한 게 당연한 일. 한 야당 의원이 "사이버보안 담당상으로서 어울리지 않는다는 의혹이 세계에서 제기됐다"고 비꼬자 그는 "그렇게 내 이름에 세계에 알려졌는가. 좋건 나쁜 건 유명해진 것 아니냐"고 답했습니다.
도쿄 올림픽 핵심 인사 가운데 개막을 보지 못하고 자리를 내놓는 게 사카라다 담당상이 처음은 아닙니다. 2001년부터 일본올림픽위원회(JOC) 수장 자리를 지켰던 다케다 스네카즈(竹田恒和) 전 회장도 도쿄 올림픽 유치 과정에서 200만 유로(약 25억7000만 원)를 뇌물로 썼다는 의혹을 받고 자리에서 물러났습니다.
역시 정치의 것은 정치에게, 스포츠의 것은 스포츠에게는 쉽지 않은 문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