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여자 축구 국가대표 선수단이 2일(현지시간) 미국 테네시주 내슈빌 닛산 스타디움에서 잉글랜드와 맞붙은 '쉬빌리브즈(SheBelieves)컵' 경기에 존경하는 여성 이름을 쓴 유니폼 입고 출전한 모습
미국 여자 축구 국가대표팀이 또 한 번 총대를 맸습니다. "우리가 남자 대표팀과 차별대우를 받아야 할 이유가 없다"면서 소송을 낸 겁니다.
AP 통신 등에 따르면 미국 여자 축구 대표 선수 28명은 "미국축구협회가 남녀 선수 수당에 차이를 두는 등 '조직적인 성차별(institutionalized gender discrimination)'을 자행하고 있다. 이는 동일임금법과 민권법 위반"이면서 "협회는 소급분 수당을 포함해 손해를 배상해야 한다"고 세계 여성의 날인 8일(이하 현지시간) 로스앤젤레스(LA) 연방지방법원에 소송을 제기했습니다.
첫 줄에 '또 한 번'이라고 쓴 건 2016년 4월 1일 미국 여자 축구 대표 선수 5명이 임금차별 실태와 미국축구협회의 급여 및 포상금 배분 구조를 조사해 달라고 미국 평등고용기회위원회(EEOC)에 진정서를 낸 적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들은 지난달 EEOC에 진행 상황에 대해 물었고 이후 3년 동안 별다른 소득이 없었기 때문에 소송 제기가 가능하다는 답변을 들어 이번에 소송을 제기하게 됐다고 영국 BBC 방송은 전했습니다.
2015 캐나다 여자 월드컵 결승전에서 일본을 5-2로 꺾고 우승한 뒤 기뻐하고 있는 미국 대표팀
미국 여자 축구 대표팀은 소장을 통해 "여자 선수는 기량이 비슷한 남자 선수 수당의 38%밖에 받지 못했다"고 주장했습니다.
남녀 대표팀이 똑같이 1년에 평가전을 20번 치러 모두 승리한다고 가정하면 여자 선수는 최대 9만9000 달러(약 1억1300만 원)까지만 받을 수 있었는데 남자 선수는 26만3320 달러(약 3억 원)를 받아갈 수 있다는 것.
국제축구연맹(FIFA) 월드컵 때는 이 차이가 더 벌어졌습니다. 2014년 브라질 월드컵 때 16강에서 탈락한 남자 대표팀은 인센티브로 총 540만 달러(약 61억4000만 원)를 받았지만, 2015년 캐나다 여자 월드컵에서 우승한 여자 대표팀은 31.9% 수준인 172만 달러(약 19억6000만 원)를 받는 데 그쳤습니다.
월드컵 최종 엔트리에 이름을 올린 선수가 받은 수당도 여자 선수는 1만5000 달러(약 1700만 원)로 남자 선수(5만5000 달러)와 비교하면 27.3% 수준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본선 진출권을 따내며 받은 보너스도 남자 팀은 200만 달러(약 22억7400만 원), 여자 팀은 30만 달러(약 3억4000만 원)로 7배 가까이 차이가 났습니다.
대표팀 공동 주장을 맡고 있는 알렉스 모건(30)은 "우리는 모두 미국 대표팀 유니폼을 입는 걸 아주 자랑스럽게 여기고 책임감도 무겁게 느낀다"면서 "성평등을 위해 싸우는 것도 우리 책임 가운데 하나라고 생각한다. 성별과 무관하게 우리 노력에 대해 똑같은 수당을 받을 권리가 있다"고 말했습니다.
미국축구협회 로고. 별 세 개는 1991(중국), 1999(미국), 2015(캐나다) 여자 월드컵 우승 기념.
미국축구협회는 이번 소송에 대해 별도로 의견을 밝히지 않았지만 이런 문제가 나올 때마다 "우리는 단체협약(CBA)에 따라 수당을 지급했다. 남녀 수당이 다른 건 CBA 내용이 다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습니다.
미국축구협회에서 EEOC에 보낸 서한에 따르면 미국 남자 대표팀은 출전 수당 형태로 급여를 받지만 여자 대표 선수는 임금을 보장받습니다. 이들이 미국여자프로축구(NWSL) 소속팀에서 받는 연봉도 미국축구협회에서 부담합니다.
여자 선수는 또 남자 선수와 달리 퇴직금을 받으며, 의료보험 혜택을 누리고, 출산휴가를 떠날 수 있으며, 보육 비용도 지원 받을 수 있습니다. 이런 비용까지 계산하면 여자 대표 선수는 연평균 28만 달러(약 3억1800만 원)를 지급하는데 이는 남자 선수보다 9만 달러(약 1억 원) 더 많다는 게 미국축구협회 주장입니다.
미국축구협회는 "2008년부터 2015년까지 남자 경기가 1억4400만 달러(약 1637억 원) 매출을 올리는 동안 여자 경기는 5300만 달러(약 602억6000만 원)에 그쳤다. 2013~2015년 TV 시청률도 남자 경기 쪽이 두 배 높았다"고 주장하기도 했습니다. 시장 가치가 다르다고 지적한 겁니다.
이것도 2013년 3월부터 2016년까지 유효했던 이전 CBA 이야기입니다. 미국 여자 대표팀과 미국축구협회는 2017년 4월 CBA를 갱신했는데 이제는 남녀 선수가 (거의) 똑같은 대접을 받습니다. 이번 소송 역시 이전 CBA 유효기간 벌어진 문제를 바로잡겠다는 취지입니다.
미국 킨케이드스쿨 여자 축구부 선수들
미국은 여자 축구가 전 세계에서 제일 인기 있는 나라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미국 출신 축구 선수 가운데 제일 유명한 이를 꼽으라면 미아 햄(47)이나 (어른들 사정으로 화제가 된) 호프 솔로(38) 아니면 모건을 떠올리는 분이 적지 않으실 겁니다. 전부 여자 (국가대표) 선수입니다. 이런 인기를 바탕으로 여자 월드컵 결승전 시청자 숫자가 (남자) 월드컵 시청자보다 많은 적도 있었습니다.
물론 프로 리그는 사정이 다릅니다. 지난해 메이저리그사커(남자)를 찾은 관중은 총 855만2503명으로 65만564명이 찾은 여자 리그(NWSL)보다 13배 이상 많았습니다. 괜히 미국축구협회에서 여자 선수 연봉을 보전하고 있는 게 아닙니다.
세계 시장도 무시할 수 없습니다. 지난해 러시아 월드컵 챔피언 프랑스는 우승 보너스로 3800만 달러(약 432억 원)를 받았습니다. 이는 미국이 2015 여자 월드컵 우승으로 받은 상금은 200만 달러(약 22억7000만 원)보다 19배 많은 금액입니다. 심지어 2014년 브라질 월드컵 16강 탈락으로 미국 남자 대표팀이 받은 돈(900만 달러)도 여자 월드컵 우승 상금보다 4.5배 많았습니다.
'절대적인 기준'을 들이대면 실력은 하늘과 땅 차이입니다. 미국 여자 대표팀이 세계 최강이라고 하지만 중학생 수준인 15세 이하 남자팀을 상대로도 무릎을 꿇는 게 현실입니다. 스포츠 산업이 기본적으로 '절대적 탁월성'이라는 걸 파는 비즈니스 모델이라면 여자 선수가 불리함을 안게 된다는 뜻입니다. (당연히 꼭 그런 건 아닙니다. 한국여자프로농구·WKBL 선수가 미국여자프로농구·WNBA 선수보다 연봉이 더 많은 사례도 있으니까요.)
이런 차이를 무시하고 성별과 무관하게 대표팀 선수 보상을 똑같이 맞춰주는 게 옳은지 갑론을박이 있을 수 있습니다. 저는 장기적으로는 FIFA 월드컵도 남녀 상금을 맞추는 방향으로 가는 게 옳다고 생각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이미 지난 일에 대해서까지 같은 기준을 적용할 수 있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과연 미국 법원은 어떤 판결을 내릴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