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는 스포츠가 공용어입니다.


❝스포츠에서 유일한 것이 승리라면 이기는 그 순간 다시 경합을 벌여야겠다는 욕구는 사라질 것이다. 그렇다면 마이클 조던과 로저 클레멘스가 나이 마흔에 계속 경쟁을 벌였던 사실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 '소크라테스 야구장에 가다' 中에서

어느 틈엔가 팬들은 무시에 너무 익숙해졌다. 갹출로 제작한 프래카드는 철거당하기 일쑤고 경기 진행의 훼방꾼으로 낙인찍히는 경우도 드문 일이 아니다. 그저 경기를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스스로의 목소리를 내고 싶었던 것뿐인데 정작 그 목소리를 들어주어야 할 사람들은 아무도 그 목소리를 듣지 않는다.

프로 스포츠는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가? 아니 프로 스포츠의 주인은 누구인가? 이 말의 정답은 팬이어야 한다. 하지만 이런 진술은 도덕 교과서에서나 존재할 뿐 팬을 진짜 주인이라고 생각하는 관계자는 그리 많지 않다. 어쩌면 관계자들이 바라는 모범적인 팬이란 '조용한 구경꾼'인지도 모르겠다. 결코 주체가 될 수 없는 시선, 침묵하는 구경꾼 말이다.

영어 낱말 Fan은 Fanatic의 줄임말이다. Fanatic은 라틴어 Fanum에서 비롯됐다. 이는 신전(神殿)을 뜻하는 낱말이었다. 신전은 신의 목소리, 즉 신탁을 얻기 위한 장소다. 신자에게는 구원과 희망의 메시지가 바로 신탁이다. 신들린 듯 대상을 추종하고 열망하는 사람들, 이런 사람들이 바로 팬이라는 뜻이다. 따라서 침묵하는 구경꾼은 결코 팬이라는 낱말로 설명할 수 없다. 팬은 오히려 갈망하는 주체다.

언론도 마찬가지다. 이렇게 선수를, 팀을, 종목을 갈망하는 주체를 더러 맹목적인 승리에만 집착하는 어리석은 군중으로 묘사하는 경우가 있다. 한마디로 한층 높아진 스포츠팬의 수준을 너무도 무시해 생긴 오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스포츠에 대한 이해도가 떨어진다고 단정 짓고는 한다. 그래서 준비하고 공부하지 않은 채로 중계에 임하기도 하고, 정확한 사실 확인조차 거치지 않은 기사를 내보내기 일쑤다. 팬들이 잘못을 지적하면 오히려 팬들을 꾸짖으려 든다. 그래서 스포츠 언론은 결국 '찌라시'라는 오명 속에 살아야 한다.

팬들은 누구보다 스포츠를 사랑하는 존재다. 어쩌면 선수들보다, 어쩌면 해설자보다 더 스포츠를 사랑하는지도 모를 일이다. 그래서 우리는 탐닉한다. 더 많이 알고 싶어서 싸운다. 더 좋아하고 싶어서 소통한다. 어떻게 하면 이 종목을 좀더 사랑할 수 있을까 안쓰러워서 배우고 또 배운다. 그리고 겨우 자기 목소리를 내고 싶어서 플래카드를 내건다. 어차피 철거당할 줄 알면서도 미련 맞게 돈을 걷어 인쇄사를 찾는다.

한번쯤 팬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 보라고 모든 관계자들에게 부탁하고 싶다. 언제든 팬들의 뜻에 따르라는 얘기가 아니다. 팬들도 잘못된 목소리를 내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팬들 사이의 의견도 다르다. 하지만 제발 부디 팬들을 '구경꾼'으로 만들지 말라는 얘기다. 프랜차이즈 스타를 모두 가지치기하듯 잘라 버린 코칭 스탭이 아니라면 팬들은 분노하지 않는다. 오심을 오심이라 이야기하지 못하는 언론 때문에 팬들이 목소리를 내는 것이다. 알면서 모른 체 하지 말고, 갈망하는 주체로서 팬들의 목소리를 들어 달라. 주인으로서의 당연한 권리를 찾을 수 있게끔 도와주어야 한다.

팬들도 마찬가지다. LG팬들의 심정은 이해가 가지만 문구 자체는 너무 과격했다. 또 오심을 저지른 심판의 개인정보가 인터넷에 유출되는 건 마녀사냥에 다름 아니다. 누구나 수긍할 수 있는 목소리를 낼 수 있어야 한다. 감정에 치우친 극단적인 모습은 상황을 잘 모르는 이들에게 그렇게 보이는 것이 당연한지도 모르겠다. 우리의 요구가 정당하다는 것을 관철시킬 수 있어야 한다. 좀더 세련된 방식으로 싸워야 한다는 뜻이다. 그렇지 않고서는 우리 스스로가 우리를 '구경꾼'으로 만들고 말 것이다.

구단 관계자는 정당한 내용의 플래카드를 누군가 불쾌하다는 이유만으로 철거해서는 안 된다. 물론 표현의 수위 조절은 팬들의 몫이다. 언론 역시 자신의 목소리 하나하나가 팬들에 의해 평가되고 있음을 늘 상기해야 한다. 악성 리플만이 인터넷에 존재하는 게 아니다. 올바른 지적, 정확한 충고는 수용하는 법도 배워야 한다. 팬들 역시 과격하고 폭력적인 방법보다 질서 있고 평화로운 방법으로 목소리를 내야 한다. 이런 모두의 노력이 있을 때, 우리의 스포츠 문화는 한층 발전하게 될 것이라 믿는다. '침묵하는 구경꾼'을 강요하는 스포츠 문화는 결코 발전할 수 없기 때문이다.



댓글,

더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