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는 스포츠가 공용어입니다.


❝스포츠에서 유일한 것이 승리라면 이기는 그 순간 다시 경합을 벌여야겠다는 욕구는 사라질 것이다. 그렇다면 마이클 조던과 로저 클레멘스가 나이 마흔에 계속 경쟁을 벌였던 사실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 '소크라테스 야구장에 가다' 中에서

 

"미안하다. 농구대잔치는 이제 추억일 뿐이다. 이제는 배구가 대세다."

 

TvN 연속극 '응답하라 1994' 여주인공 성나정(고아라 분)이 2016년 현실 세계에 존재한다면 TV 앞에서 리모컨을 돌리며 이렇게 말할지 모른다. 이 연속극에서 성나정은 연세대 농구부 이상민(44·현 프로농구 삼성 감독)에 열광하는 캐릭터로 등장한다. 정말 그랬다. 그 시절 우리는 누구나 농구 팬을 자처했다. 지금도 일본 농구 만화 '슬램덩크'를 자기 인생에서 가장 재미있게 본 만화책으로 꼽는 이들이 적지 않다. MBC 연속극 '마지막 승부'는 따로 설명이 필요할까.

 

불과 10년 전만 해도 그랬다. 겨울에 열리는 최고 인기 스포츠는 농구였고, 배구는 들러리 신세에 가까웠다. 프로 리그 출범 시기가 이를 증명한다. 인기 있는 스포츠일수록 먼저 프로로 바뀌는 게 당연한 일이기 때문이다.

 

남자 농구는 농구대잔치 인기를 발판삼아 1997년 프로로 전향했다. 이듬해에는 여자 프로농구도 닻을 올렸다. 배구는 이로부터 7년이 지난 2005년이 돼서야 프로라는 간판을 달 수 있었다.

 

(중략) 

 

이제는 반대다. 물론 아직 프로배구가 확실하게 역전에 성공했다고 말하기에는 2% 부족하다. 하지만 프로농구가 '선발자 우위(first-mover advantage)' 효과를 잃은 것도 사실이다. 

 

제가 동아비즈니스리뷰(DBR) 2016년 10월호에 쓴 기사는 이렇게 시작합니다. 27개월이 지난 현재는 프로배구가 저 2%마저 따라잡은 느낌입니다. 그렇지 않더라도 차이가 2%보다 줄어든 건 확실합니다.

 

 

(남자) 프로농구와 프로배구는 20일 나란히 2018~2019 시즌 올스타전을 진행했습니다. 두 시즌 전인 2016~2017 시즌에도 같은 날(2017년 1월 25일) 올스타전이 열렸지만 당시에는 프로농구 올스타전을 (어른들 사정으로) 지상파(KBS1)에서 중계했기 때문에 시청률을 비교하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올해는 두 종목 모두 케이블TV에서 올스타전을 중계했고 닐슨코리아에서 집계한 전국 유료 가구 시청률은 아래처럼 나왔습니다.

 

▌2018~2019 올스타전 시청률(단위: %)

 종목  채널  시청률
 프로배구
 KBSN스포츠  0.643
 SBS스포츠  0.545
 프로농구  MBC스포츠플러스  0.093

 

두 채널 시청률을 합쳐 계산하면 프로배구가 프로농구보다 시청률이 13배 가까이 높게 나왔습니다. 심지어 프로배구 올스타전 재방송 시청률(SBS스포츠 0.175%, KBSN스포츠 0.118%)이 프로농구보다 3배 이상 높았습니다.

 

이러면 온라인 시청자 숫자는 프로농구가 더 많다고 말씀하는 분도 계실 겁니다. 실제 결과가 어땠는지 궁금하신 분은 직접 N 포털에서 확인해 보시는 걸 추천합니다. 

 

DBR 기사를 쓸 때는 사정이 조금 달랐습니다. 당시에는 확실히 온라인 시청자 숫자는 프로농구 쪽이 더 많았습니다. 물론 그게 정말 대세를 바꿀 만한 수준이었는지는 생각할 필요가 있었지만 말입니다.

 

닐슨코리아 관계자는 "케이블TV에서 시청률 1%는 보통 시청자 36만 명으로 계산한다"면서 "시청률 차이가 0.8%포인트 정도 나니까 프로배구 시청자가 경기당 약 28만8000명 정도 많다고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두 종목 모두 온라인(모바일) 중계를 맡고 있는 금현창 네이버 스포츠&게임 셀(cell) 이사는 "온라인과 모바일을 합친 프로농구 경기 평균 접속자(UV) 숫자는 약 8만 정도고 프로배구는 약 7만5000만 정도로 보면 된다"고 전했다. 프로농구가 온라인 시청자가 더 많은 건 맞지만 시청률 차이를 극복할 정도는 못 된다는 뜻이다.

 

 

올스타전을 찾은 관중 숫자는 프로농구가 더 많았던 건 사실. 이날 프로농구 올스타전이 열린 창원체육관에는 5215명이 찾았습니다. 프로배구 올스타전이 열린 대전 충무체육관을 찾은 팬은 4702명.

 

그런데 좌석 점유율로 따지면 사정이 조금 다릅니다. 창원체육관은 최대 5451명을 수용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좌석 95.7%를 채운 것. 충무체육관은 3963석 규모로 이날 좌석 점유율 118.6%를 기록했습니다. 농구만큼은 아니더라도 체육관 규모가 더 컸다면 더 많은 팬을 받을 수 있었을 것이라고 짐작할 수 있는 대목입니다.

 

이렇게 절대 관중 숫자는 프로농구가 더 많지만 좌석 점유율에서는 프로배구가 앞서는 것 역시 오랜 패턴 가운데 하나입니다. 

 

전체적으로 남자 프로농구 10개 구단이 안방으로 쓰는 체육관 평균 수용인원은 7427명인 데 반해 프로배구 남자부 7개 구단 체육관 평균은 4670명으로 농구가 1.59배 더 크다. 이를 토대로 ‘좌석 점유율(평균 관중÷평균 수용 인원)’을 계산하면 프로배구 남자부(63.6%)가 남자 프로농구(46.7%)보다 더 높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이게 프로배구 팀이 프로농구 팀처럼 큰 체육관을 쓰면 곧바로 관중 숫자를 따라잡을 수 있다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그저 체육관 수준에 맞게 관중을 불러모을 수 있는 안방 도시를 선택하는 것 역시 프로 스포츠 운영에 있어 중요한 지점이라는 말씀을 드리고 싶은 것뿐입니다.

 

록 그룹 '퀸' 멤버로 분장한 프로농구 KCC 전태풍(왼쪽)과 프로배구 한국전력 서재덕

 

언론은 기사 선택 방식이 보수적이기 때문에 원래 인기 있던 프로농구 쪽 기사를 계속 더 많이 써왔습니다. 올 시즌에는 이마저 변화 조짐이 눈에 띕니다.

 

한국언론진흥재단 기사통합검색(KINDS) 서비스에서 찾아 보면 지난해 10월부터 현재까지 '프로농구'가 들어간 기사는 총 1236개로 프로배구(653개)보다 두 배 가까이 많습니다.

 

그런데 프로농구 기사 가운데는 미국프로농구(NBA) 기사(727개)가 차지하는 비중이 적지 않습니다. 이를 빼면 프로농구 기사는 509개로 줄어듭니다. 

 

네, 맞습니다. 배구 쪽에서도 '배구 여제' 김연경(31·에즈자즈바시으) 때문에 터키 배구 기사가 나옵니다. '터키 배구' 기사는 32건이었습니다. 그러면 프로배구 기사는 621개가 됩니다.

 

경기 숫자를 감안하면 차이가 더 벌어집니다. 이 기간 프로농구는 총 239경기(여자 프로농구 64 경기 포함)를 소화했습니다. 그러면 경기당 평균 기사는 2.1개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프로배구는 144경기가 열렸으니까 경기당 평균 4.3개입니다.

 

 

 

아마 저처럼 1990년대 학창시절을 보낸 남자분 가운데는 '학교 다닐 때 농구한 기억밖에 없다'는 분이 적이 않으실 겁니다. 그 가운데 대부분은 배구는 안중에도 없없다고 기억하실 겁니다. 정말 그랬습니다. 

 

그러나 이제 확실히 겨울에는 프로배구가 대세로 자리잡았습니다. '바스켓볼 보이'였던 한 사람으로서 프로농구가 기가 막힌 반격 카드를 마련하기를 기대한 게 최소 5년은 됐을 텐데 도대체 한국농구연맹(KBL)은 무얼 하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소위 10대 일간지에서 올스타전 소식을 어떤 레이아웃으로 전했는지 찾아 보니 여전히 프로농구를 앞세운 매체가 그래도 한 곳(동아일보) 있었습니다. 나머지는 대부분 지면에 나란히 배치하는 쪽을 선택했습니다.

 

가까운 시일 내에 다시 같은 날 올스타전이 열릴 때는 어떨까요? 지금 KBL 하는 모양새로 볼 때는 저 한 곳마저 사라진다고 해도 놀랄 일이 아닐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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