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론 캐럴라인 보즈니아키(29·덴마크·세계랭킹 3위)를 응원하겠다고 이 블로그에 밝힌 적이 있지만 기본적으로 저는 마리야 샤라포바(32·러시아·30위·사진) 편입니다.
심지어 도핑(약물을 써서 경기력을 끌어올리는 행위)에 대해서도 그렇습니다. 2016년 호주 오픈 당시 멜도니움 때문에 도핑 테스트를 통과하지 못한 샤라포바가 2017년 복귀를 앞두고 국제테니스연맹(ITF) 징계를 문제 삼았을 때 저는 이렇게 썼습니다.
경기력을 끌어올리는 물질이라고 무조건 세계반도핑기구(WADA) 금지목록 국제표준에 올라가는 건 아닙니다. WADA는 △경기력을 향상시키거나 경기력을 향상시킬 수 있는 잠재력을 가지고 있는 경우 △선수의 건강에 실제적 또는 잠재작 위험이 되는 경우 △스포츠 정신에 위배되는 경우 중 두 가지 이상에 해당하는 물질을 금지목록에 올리고 있습니다.
멜도니움은 정말 건강에 위험이 되는지가 관건입니다. 이 약을 처음 만든 이바르스 칼빈시 박사(69·라트비아)는 "멜도니움은 건강에 아무런 해가 되지 않는다. 선수들에게 멜도니움을 금지한 건 '운동선수들은 건강을 지키지 않아도 된다'고 주장하는 반인륜적 처사"라고 비판하기도 했습니다. 샤라포바는 심지어 이번 ESPN 인터뷰 때 "멜도니움이 경기력을 끌어올린다는 증거는 제로(0)"라고 말했습니다.
물론 이런 항변에 모든 이들이 동의한 건 아닙니다. '제2 샤라포바'라고 불리던 외제니 부샤르(25·캐나다·79위) 같은 선수조차 "샤라포바 같은 선수가 복귀하도록 하는 것은 여자프로테니스(WTA)가 젊은 선수들에게 '약물을 사용해도 언제든지 환영받을 수 있다'는 잘못된 메시지를 주는 셈"이라고 비판했습니다.
보즈니아키도 불편한 심기를 숨기지 않았습니다. 2017년 US오픈 때 당시 랭킹 146위였던 샤라포바가 대회 메인 코트인 아서 애시 스타디움에서 2회전 경기를 치르자 문제를 제기한 것. 보즈니아키는 당시 덴마크 언론과 인터뷰하면서 "도핑 징계에서 돌아온 선수에게 메인 코트를 배정하는 게 좋은 전례를 남기는 일이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말했습니다.
보즈니아키가 세리나 윌리엄스(38·미국·16위·사진 왼쪽)와 '절친'이라는 사실도 샤라포바에 대한 감정에 영향을 줬을 겁니다. 보즈니아키에게 윌리엄스는 프로 골퍼 로리 매킬로이(30)와 파혼했을 때도 제일 먼저 위로받을 수 있는 친언니 같은 존재. 반면 샤라포바와 윌리엄스는 21세기 테니스를 대표하는 '앙숙'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보즈니아키가 코트 배정에 불만을 드러냈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은 샤라포바는 "아직 경기가 남아 있다는 사실이 중요하지 어디서 경기를 하는지는 중요하지 않다"면서 "지금 (보즈니아키라고 특정하지 않은 채) 그는 어디에 있는지 모르겠다"고 말했습니다. 보즈니아키가 당시 2회전에서 탈락한 걸 비꼬아 이야기한 겁니다.
그 뒤로 한 시즌이 넘게 흘렀지만 두 선수가 맞대결을 벌인 일은 없었습니다. 그러다 이번 호주 오픈에서 드디어 승부를 가리게 됐습니다. 샤라포바는 2008년 이 대회 챔피언 출신이고, 보즈니아키(사진)는 디펜딩 챔피언 그러니까 전년도(2018년) 우승자입니다.
두 선수는 경기 시작 전까지 서로 눈도 마주치지 않으면서 신경전을 벌였습니다.
그리고 결국 결과는…
샤라포바의 승리였습니다. 샤라포바는 18일 호주 멜버른 로드 레이버 아레나에서 열린 대회 여자단식 3회전에서 보즈니아키에 2-1(6-4, 4-6, 6-3) 승리를 거뒀습니다.
샤라포바는 경기 후 취재진과 만나 "정말 행복하다(I'm really happy)"고 외치면서 승리를 만끽했습니다. 보즈니아키는 "나는 이기는 걸 사랑하는 것보다 지는 걸 더 싫어한다"면서 "오늘 그가 나보다 저금 더 잘했다. 그저 그것뿐"이라고 말했습니다.
이전까지 두 선수는 10번 맞대결을 벌여 6승 4패로 샤라포바가 앞서고 있던 상태였습니다. 단, 메이저 대회 기준으로는 US 오픈에서만 두 번(2010, 2014년) 맞붙어 보즈니아키가 모두 이겼는데 이날 경기로 2승 1패가 됐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