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시 예상대로였습니다. 일본 프로야구 한신은 15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을 통해 "1군 감독 취임을 요청하고 있던 야노 아키히로(矢野曜大) 현 2군 감독(50·사진)으로부터 '감독 취임을 수락한다'는 회답이 있었기에 알려드린다"고 발표했습니다.
한신이 17년 만에 리그 최하위를 기록하면서 가네모토 도모아키(金本知憲·김지헌) 전 감독(50)이 사의를 표명했고 그 뒤로 야노 감독이 가장 유력한 후보로 손꼽혔습니다. (2군 교육 리그인) 미야자키(宮崎) 피닉스리그에서 팀을 이끌고 있던 야노 감독은 이날 구단 사무실에서 열린 기자회견에 나와 "여러 고민을 했지만 감독을 맡기로 했다. 구단에서 진심으로 원하는 것 같았다"고 말했습니다.
야노 감독을 생각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건 호시노 센이치(星野仙一) 감독(1947~2018)입니다. 가네모토 전 감독과 함께 도호쿠(東北)복지대에서 뛰던 야노 감독은 1990년 신인 드래프트 때 전체 2순위로 주니치에서 지명을 받았습니다. 당시 주니치 지휘봉을 잡고 있던 게 바로 호시노 감독이었습니다.
호시노 감독은 포수 자리에 야노 감독 대신 나카무라 다케시(中村武志·51·현 KIA 2군 코치)를 중용했습니다. 그 탓에 외야수로 출전하기도 했던 야노 감독은 1997년 시즌이 끝난 뒤 쫓겨나듯이 한신으로 트레이드 됐습니다. 야노 감독은 한신에서 요시다 요시오(吉田義男) 감독(85) 눈에 들면서 본격적으로 전성기를 맞을 수 있었습니다. 야노 감독은 1998년 5월 26일 경기 때는 (이종범 팔꿈치를 맞힌 걸로 유명한) 가와지리 데쓰로(川尻哲郞·51)과 함께 주니치를 상대로 노히트 노런을 기록하기도 했습니다.
문제는 2001년 호시노 감독이 한신으로 팀을 옮겼다는 것. 당시 야노 감독은 '다시 쫓겨나는 것 아니냐'면서 불안해 하기도 했지만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두 사람은 자유계약선수(FA) 자격을 얻어 한신에 합류한 가네모토 전 감독과 함께 한신을 2003년 센트럴리그 챔피언으로 만들기도 했습니다. 당시 한신이 리그 챔피언에 오른 건 1985년 이후 18년 만이었습니다. (감독은 바뀌었지만 2005년 한신이 다시 센트럴리그 정상을 차지할 때도 야노 감독이 주전 포수였습니다.)
그렇다고 두 사람 인연이 계속 좋은 결실로 이어진 건 아닙니다. 2008년 베이징(北京) 올림픽 때 호시노 감독이 일본 대표팀 지휘봉을 잡았고, 야노 감독 역시 대표팀 명단에 이름을 올렸습니다. 그러나 잘 아시는 것처럼 일본은 준결승에서 한국에 2-6으로 패했고, 동메달 결정전에서도 미국에 4-8로 패하면서 노메달에 그쳤습니다.
베이징 올림픽 이듬해였던 2009년 30경기에 나서는 데 그쳤던 야노 감독은 2010년 8경기를 마지막으로 유니폼을 벗었습니다. 야노 감독은 은퇴 후 TV 해설위원으로 활동하다 2015년 세계야구소프트볼연맹(WBSC) 프리미어 12 때 대표팀 코치를 맡으면서 지도자 생활을 시작했고, 그해 겨울 가네모토 전 감독 요청으로 1군 작전 겸 배터리 코치로 친정팀에 돌아왔습니다. 2군 감독으로 승격한 올해는 '초적극적 야구(超積極的 野球)'를 모토로 내세우면서 역대 2군 최다인 163 도루를 기록하는 팀을 만들어 웨스턴리그 정상을 차지했습니다.
호시노 감독은 현역 시절(1969~1982년)을 오로지 주니치에서만 보냈고, 세 차례에 걸쳐 총 11년 동안 주니치 감독을 지낸 주니치의 상징과도 같은 인물이지만 '역대 최고 한신 감독은 누구인가?' 같은 설문조사에서도 1위를 차지하곤 합니다. 과연 야노 감독이 이런 자리도 물려받을 수 있을까요? 아니면 이번에도 OB의 저주가 이길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