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를 바닥으로 밀어 넣었던 것 같아요. 제가 생각해도 마음이 건강한 상태가 아니었어요."
'플라잉 덤보' 전인지(24·KB금융그룹)가 2년 1개월 만에 우승 트로피를 들어올렸습니다. 원래 '스마일 퀸'으로 통하는 전인지이지만 이날은 기자회견 내내 눈시울을 붉혔습니다. 그만큼 슬럼프가 길고 깊었습니다.
전인지는 14일 인천 스카이72골프클럽 오션코스에서 막을 내린 미국여자프로골프(LPGA)투어 KEB하나은행 챔피언십에서 최종 합계 16언더파 272타를 적어내면서 찰리 헐(22·잉글랜드)를 3타 차이로 제치고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전인지는 초청 선수로 출전한 2015년 US 여자 오픈에서 우승했고, 이듬해에도 에비앙 챔피언십에서 우승하면서 신인왕 타이틀을 차지했습니다. 두 대회 모두 메이저 대회라 '메이저 퀸'이라는 별명도 같이 얻었습니다. 그리고 2년차 징크스가 찾아왔습니다. 2017년에는 준우승만 다섯 번을 기록했습니다.
전인지는 "메이저 대회 우승을 두 번 한 뒤로 '세 번째 우승 역시 메이저 대회였으면…'하고 욕심을 냈던 게 사실"이라면서 "그렇다고 다른 대회서 우승 욕심을 내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우승을 하지 못하면서 조금씩 조금씩 부정적으로 생각하게 됐다. 그러면서 가족은 물론이고 매니지먼트 팀도 힘들게 했다"며 울먹였습니다.
마음이 가라앉았을 때는 좋은 것보다 나쁜 게 더 눈에 띄게 마련. 악성 댓글도 전인지를 힘들게 했습니다. 전인지는 "많은 사람들로부터 사랑 받고 있는 것에 감사해 했었는데 힘든 시간 동안 그것을 볼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다"면서 "사람으로서 여자로서 참기 힘든 속상한 말들이 머리에서 떠나질 않았다. 아예 움직이고 싶지 않았다. 너무나 무서웠다"고 털어놓았습니다.
이어서 "생일(8월 10일)에 할머니가 다치셨다는 얘기를 듣고 새벽에 병원에 달려갔다. 할머니가 나를 기억하지 못하시더라. 30분 면회를 아는데 29분 동안 나를 못 알아보시다가 나오는 순간 '건강해야 돼'라고 말씀하셨다. 그때부터 내 정신을 건강하게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덧붙였습니다.
계속해 "어린 시절 부모님이 일하러 가시면 할머니랑 함께 있는 시간이 많았다. 그런 소중한 사람이 나를 기억하지 못한다는 게 너무 슬프더라. 우승하고 사랑한다는 말을 해드리고 싶었는데 그런 기회를 만들지 못하는 것 같아 힘들었다. 이번에 우승하면서 할머니께 그런 말씀을 드릴 기회를 만들어 기쁘다"고 말했습니다.
이날 우승으로 전인지는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투어에서 거둔 11승을 포함해 통산 14승을 기록했습니다. 통산 13승에 멈춰선 채로 25개월 동안 43개 대회를 흘려보내야 했던 것. 전인지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인스타그램에 "이제 13과 결별해서 너무 기쁘다"고 남겼습니다.
전인지에게 '터닝 포인트'가 된 건 8개국 여자 골프 대항전인 'UL 인터내셔널 크라운'. 이달 4~7일 열린 인천 잭니클라우스 골프클럽에서 열린 이 대회에 '대타'로 출전한 전인지는 4전 전승을 기록하면서 한국을 우승으로 이끌었습니다.
전인지는 "(터닝 포인트가 될 거라는) 주변의 응원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내 자신을 믿었다"면서 "부진을 떨쳐 보려고 열기구를 타고 아이스하키를 배우기도 했다. 그렇다고 골프가 뒷전이었던 적은 한번도 없었다"고 강조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