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는 스포츠가 공용어입니다.


❝스포츠에서 유일한 것이 승리라면 이기는 그 순간 다시 경합을 벌여야겠다는 욕구는 사라질 것이다. 그렇다면 마이클 조던과 로저 클레멘스가 나이 마흔에 계속 경쟁을 벌였던 사실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 '소크라테스 야구장에 가다' 中에서


타자를 분류할 때 한 쪽 끝에 (제 사랑) '공갈포'가 있다면 다른 쪽 끝에는 '똑딱이'가 있습니다. 공갈포가 '한방'을 노리는 타입이라면 이들은 '한 베이스'를 노립니다. 


그래서 어떤 타자든 똑딱이로 꼽히려면 일단 타율이 높아야 합니다. 그리고 전체 안타 중에서 단타가 차지하는 비율이 높아야 (=장타 비율이 낮아야) 합니다. 


물론 '타율이 높다', '단타 비율이 높다'는 건 상대적인 개념입니다. 타율 .280을 때린 타자는 타율이 높은가요? 낮은가요? 1993년처럼 리그 평균 타율이 .247이었던 시즌에는 높지만, .290을 기록한 2016년에는 낮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럴 때는 '기록+'를 활용하면 도움을 받을 수 있습니다. 기록+는 '개인 기록 ÷ 리그 평균'으로 계산합니다. 타율이 .280인 타자는 1993년에는 타율+ 115를 기록하지만 2016년에는 97로 기록이 내려옵니다. '장타 비율(장타 ÷ 안타)+'도 같은 방식으로 계산하면 그만입니다.


이런 접근법을 기준으로 2006년부터 지난해까지 12년 동안 한 해에 최소 250 타석 이상 들어선 타자를 분류하면 아래 같은 그래프를 그릴 수 있습니다.



이 그래프에서 점 색깔은 컴퓨터에게 타율+와 장타 비율+를 주고 '이런 데이터가 있으니 네가 알아서 그룹을 나눠 보라'고 지시해 얻은 결과물입니다. 가장 기초적인 기계학습 방법이라고 할 수 있는 'K-평균 알고리즘'을 활용한 결과물인데 사실 x축과 y축 모두 리그 평균(100)을 기준으로 나눈 것과 큰 차이는 나지 않습니다.


이 중에서 똑딱이는 타율은 리그 평균보다 높지만 장타 비율은 낮은 제2 사분면 그러니까 연보라색 점에 해당합니다. 연보라색 점 가운데서 리그 평균과 제일 거리가 먼 선수를 고르면 그 선수가 바로 이 기간을 대표하는 똑딱이라고 할 수 있을 겁니다. 그 주인공은…


예상하시는 것처럼 이대형(35·현 KT·사진)이었습니다. 그 중에서도 2009년 이대형이 최고 똑딱이였습니다. LG에서 뛰던 이해 이대형은 .280/.341/.319를 기록했습니다. 이대형은 이해 안타를 146개 쳤는데 이 중 장타는 8.6%(14개)뿐이었습니다. 


물론 2009년 한 해뿐만이 아닙니다. 이런 식으로 상위 10위까지 뽑아 보면 이대형은 2016년(3위), 2007년(6위)에 이르기까지 세 차례 이름을 올렸습니다. 역시 괜히 이대형이 똑딱이 대명사로 군림하고 있는 게 아닙니다.


▌2006~2017 똑딱이 순위 버전 #1

 순위  연도  구단  타자  타율+  장타+
 ①  2009  LG  이대형  102  31
 ②  2017  삼성  강한울  106  32
 ③  2016  KT  이대형  110   32
 ④  2007  현대  전준호  113  34
 ⑤  2015  삼성  이지영  109   36 
 ⑥  2007  LG  이대형  117   40
 ⑦  2007  삼성  박한이  102  44
 ⑧  2008  SK  조동화  104  44
 ⑨  2007  롯데  이우민  114  46
 ⑩  2015  한화  이용규  122  51


삼성 강한울(27)은 20대 선수로는 유일하게 이 명단에 이름을 올렸습니다. 리그를 강타한 '타율 인플레이션'에 힘입어 강한울이 지난해 3할 타율(.303)을 기록한 건 사실. 하지만 강한울은 타석에 들어설 때마다 데뷔 이후 최다 연속 타석 무홈런 기록을 새로 쓰는 중입니다. 그가 이 명단에 한 번밖에 이름을 올리지 못한 건 KIA 시절에는 똑딱이가 아니라 '그냥 못 치는 타자'였기 때문입니다. 


이 명단에 이름을 올린 선수 가운데 박한이(39), 이용규(33)는 '우리는 레벨이 다르다'고 항변할고 싶을지 모릅니다. 볼넷을 골라낼 줄 알거든요. '볼넷 ÷ 타석'을 기준으로 볼넷 비율+를 계산하면 2007년 박한이는 129, 2015년 이용규는 126이 나옵니다. 


거꾸로 이지영(32·사진)은 2015년에 볼넷 비율+ 38을 기록하는 데 그쳤습니다. 장타도 못 치고 볼넷도 못 얻었으니 이지영은 오직 단타로만 이야기하는 진정한 '단타 머신'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똑딱이 랭킹 계산에 볼넷을 포함하면 이지영이 단숨에 리그 최고 똑딱이에 등극합니다. 이번에도 연보라색 점 가운데 리그 평균과 가장 동떨어져 있는 선수를 찾아보면 2015년 이지영이 1위고, 2016년 이지영이 그다음입니다.


▌2006~2017 똑딱이 순위 버전 #2

※버전은 개량했다는 뜻이 아니라 그냥 관점이 다르다는 뜻입니다.
 순위  연도  구단  타자  타율+  장타+  볼넷+
 ①  2015  삼성  이지영  109  36  38
 ②  2016  삼성  이지영  102  57  31
 ③  2016  KT  이대형  110   32  72
 ④  2017  삼성  강한울  106  32  73
 ⑤  2009  LG  이대형  102   31  82
 ⑥  2006  KIA  손지환  104   86  32
 ⑦  2017  NC  손시헌  122  62  51
 ⑧  2007  LG  이대형  117  40  81
 ⑨  2007  롯데  이우민  114  46  71
 ⑩  2012  SK  임훈  104  55  57


표에서는 빠졌지만 진짜 재미있는 건 사실 11위입니다. 2013년 이병규(44·사진)가 주인공이거든요. 이병규는 이해 타율 .348로 역대 최고령 타격왕 자리를 차지했습니다. 대신 장타(76)와 볼넷(57)에서는 별 재미를 보지 못했습니다. 2013년은 가장 극단적으로 이병규가 이병규한 시즌이었는지도 모릅니다. 


이렇게 장타+, 볼넷+를 모두 따지는 건 사실 '타율 vs OPS(출루율+장타력)' 비교와 같은 맥락입니다. 그래서 그냥 타율 순위와 OPS 순위만 비교해도 똑딱이를 가려낼 수 있습니다. 이지영이 2015년 기록한 타율 .305는 그해 규정 타석 70% 이상에 들어선 타자 가운데 80명 가운데 30위에 해당합니다. 반면 OPS(.680)는 같은 기준으로 75위밖에 되지 않습니다.


OPS로 된다는 건 GPA(Gross Production Average)로도 된다는 것. 지금으로부터 12년 전에 '타율 vs GPA' 타자 비교 글을 쓴 적이 있습니다. 그때 프로 원년(1982년)부터 2005년까지 기록을 살펴봤기 때문에 이번에 2006년부터 기록을 따졌던 겁니다.



당시 이 글을 쓰면서 과대·과소평가라는 표현을 쓴 건 타율이 올라가면 GPA(그리고 물론 OPS)가 올라가는 게 일반적이기 때문입니다. 타자 개인 기록은 물론 그렇고 리그 전체를 봐도 그렇습니다. 출루율과 장타력을 가지고 새로운 지표를 만들어낸다는 건 결국 타율을 두 번 쓴다는 뜻이니까요.


이걸 다른 말로 표현하면 타율에 따라 GPA가 어느 정도나 될지 예상할 수 있다는 뜻이 됩니다. 이렇게 계산한 '예상 GPA'가 실제 GPA보다 많이 적다면 이 타자는 단타로 끌어 올린 타율 때문에 과대평가 받고 있는 똑딱이라고 할 수 있을 겁니다. (기록+를 활용하면 타율+와 예상 GPA+는 거의 똑같이 나옵니다.) 


이번에는 어차피 타율과 GPA로 결정하는 거니까 그룹 제한을 풀어 보겠습니다. 그래도 역시 2015년 이지영이 1위입니다. 그리고 2위는 2013년 이지영입니다.


▌2006~2017 똑딱이 순위 버전 #3

 순위  연도  구단  타자  타율+  GPA+  예상 GPA+
 ①  2015  삼성  이지영  109  88  108
 ②  2013  삼성  이지영  89  75  90
 ③  2014  NC  김태군  91  76  91
 ④  2017  한화  장민석  97  82  98
 ⑤  2017  삼성  강한울  106   89  106
 ⑥  2016  KT  이대형  110  93  110
 ⑦  2015  SK  박계현  83  72  84
 ⑧  2009  LG  이대형  102  87  102
 ⑨  2015  롯데  박종윤  91  79  92
 ⑩  2016  KIA  강한울  94  81  94


요컨대 이지영이 최근 12년 동안 가장 똑딱 똑딱 타격에 임했다고 결론을 내리는 데 큰 무리는 없을 겁니다. 


문제(?)는 그가 올 시즌 완전히 달라졌다는 것. 이지영은 21일 현재 78 타석에 들어서 .308/.400/.369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장타력은 여전히 부족하지만 출루율이 타율보다 92포인트 높은 타자를 '그저 똑딱이'라고 부르기에는 어딘가 망설여지는 게 사실입니다. 특히 출루율이 .400이라면 확실히 그렇습니다. 과연 이지영이 남은 시즌 동안 다시 '똑딱이 왕'다운 면모를 되찾을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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