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는 스포츠가 공용어입니다.


❝스포츠에서 유일한 것이 승리라면 이기는 그 순간 다시 경합을 벌여야겠다는 욕구는 사라질 것이다. 그렇다면 마이클 조던과 로저 클레멘스가 나이 마흔에 계속 경쟁을 벌였던 사실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 '소크라테스 야구장에 가다' 中에서

국내 신문 기사에서는 잘 볼 수 없지만 인터넷 게시판 또는 외국 언론에서는 흔히 볼 수 있는 '타격 라인'이라는 숫자 나열이 있다. 일반적으로 .123/.456/.789처럼 표시된다. 맨 앞에서부터 각각 타율/출루율/장타율을 나타내주는 수치다. 그래서 친절하게 타율 .123/출루율 .456/장타율 .789로 표시해 주기도 한다.

타율이 가진 허상은 이미 한 차례 밝힌 바 있다. 그때 출루율과 장타율이 사실상 타자의 능력을 측정하는 기초라는 사실을 언급했다. 최근 MBC-ESPN에서 제공하기 시작한 OPS는 바로 이 두 수치를 더한 값이다. 그리고 본 블로그에서 곧잘 언급되는 GPA는 타율의 범위로 수치를 조정한 일종의 변형 OPS라 보면 된다. 정말 이 두 수치는 어떤 식으로 타자의 능력을 보이고 있는 걸까?

곧잘 출루율과 장타율에 관해 오해를 하시는 분들을 볼 수 있다. 출루율이 안타 이외의 방식으로 루상에 나간 경우를 모두 더한 것으로 생각한다거나 전체 안타 가운데 장타의 비율을 나타내는 수치가 장타율이라고 믿는 경우가 바로 그것이다. (그런 사람이 진짜 있어? 하고 물으실 분들이 계실지 모르겠지만, 정말이다.) 도대체 이 둘은 그럼 어떤 방식으로 짜여진 수치일까?

먼저 공식부터 짚고 넘어가자. 출루율 공식은 아래와 같다.

        (안타+사사구)÷(타수+사사구+희생플라이)

공식을 통해 몇 가지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우선 상대 실책으로 진루에 성공한 경우는 출루율에 반영되지 않는다. 이 경우 타수가 하나 늘어나기 때문에 출루율은 오히려 떨어지게 된다. 또한 희생 플라이가 분모에 반영된다. 따라서 출루율이 타율보다 낮은 경우도 생길 수 있다. 마지막으로 스트라이크 낫 아웃으로 출루한 경우에도 출루율은 떨어진다. 출루율은 타자의 출루 능력을 보이고자 하는 것이기 때문에 위와 같은 기록이 제외되는 것이다. 희생 플라이도 주자가 3루에 있었기에 별도로 기록되었을 뿐 사실상 보통의 외야 플라이기 때문에 출루율에서는 손해를 보게 된다.

장타율 공식은 이렇다.

        (단타 + 2×2루타 + 3×3루타 + 4×홈런)÷타수

그러니까 안타 전체 가운데 장타의 비율을 구하는 것이 아니라, 타수당 몇 베이스나 갔는지를 나타내주는 지표다. 따라서 이 기록은 1.0을 넘을 수도 있다. 실제로 시즌 초반에 많은 수의 홈런을 날리는 경우 그런 수치를 보이기도 한다. 사실 이는 용어 자체에 율(率)이라는 낱말을 쓰기에 생긴 오해다. '평균루타수' 정도가 가장 적절한 표현일 것이다. 하지만 기본적인 개념은 달라지는 것이 아님으로 이를 확인해 주시길 바란다.

위의 두 공식을 유심히 뜯어보신 분이라면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을 반영할 수 있을 것이다. 기본적으로 이 두 기록의 핵심을 이루는 기준이 바로 타율이라는 사실이다. 타자는 말 그대로 때리는 사람이다. 공을 때려내 안전하게 진루할 수 있는 타구(안타)를 만들어 내는 것이 타자의 가장 기본적인 역할이다. 하지만 꼭 안타를 치지 않고도 루상에 나갈 수 있고, 기왕 타구를 때렸으면 장타를 만들어 내는 타자가 더 훌륭한 타자다. 따라서 안타 이외에 출루가 많을수록, 단타보다 장타가 많을수록 더 뛰어난 타자라 할 수 있다. 그러나 타율은 안타는 그저 안타로 계산할 뿐이다.

이 점을 살펴보기 위해 사실상 동일한 개념의 두 가지 지표가 만들어졌다. IsoD, IsoP가 바로 그것이다. Iso는 Isolated의 약자고 D는 Discipline(참을성), P는 Power(파워)를 각각 뜻한다. 우리말로는 전자를 순수출루율, 후자를 순수장타율이라 부르기도 한다. 구하는 공식 또한 무척이나 단순하다. IsoD는 출루율-타율, IsoP는 장타율-타율이다. 타율을 제외한 나머지 능력이 어느 정도나 되는지를 보여주는 지표라 하겠다.

이런 메트릭이 생겨난 이유는 단순하다. 타율이 높으면 출루율과 장타율이 높게 나올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장타율을 예로 들면, 어떤 선수가 4타수 4안타를 모두 단타로 친 경우 장타율 역시 1.000이다. 실제로 그에게 파워를 기대하기란 어려운 일인데도 말이다. 하지만 그의 IsoP를 구해보면 0이다. 그에게 파워가 없음을 그대로 보여준다. 4타석 4타수 4안타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출루율로는 1.000이지만 IsoD는 0으로 안타 이외의 출루 능력이 그에게 없다는 사실을 일러준다.

지난번에도 타자의 기록을 살펴볼 때 타율만 보지 말고 출루율, 장타율도 꼭 챙겨볼 것을 당부한 바 있다. 이제 한번 출루율, 장타율과 타율의 차이 또한 유심히 지켜보자. 어떤 선수가 타율 .300을 치다가 .200으로 타율이 떨어졌다. 이때 .350이던 출루율은 .325밖에 안 떨어졌다고 쳐보자. IsoD .050이 .125가 됐다면 이 선수는 볼넷이나 사구로는 부지런히 출루해 왔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게 될 것이다. 물론 다른 조건도 살펴봐야겠지만, 만약 이런 타자가 있다면 선구안 자체는 나쁘지 않으니 괜찮은 타구를 만들어 낼 수 있으리라고 말해도 좋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MBC-ESPN에서 OPS를 제공하기 시작한 건 고무적이라고 생각한다. 우리 야구 팬들도 좀더 다양한 기록의 세계를 접할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기록을 통해 야구를 보는 또 다른 즐거움도 맛볼 수 있게 되리라 본다. 세이버메트릭스는 이상한 숫자 놀음이 아니다. 천천히 조금만 뜯어보면 야구의 기본 원리가 녹아 있어, 야구를 좀더 흥미롭게 이해할 수 있게 해준다. 이상한 숫자로 야구를 본다고 비난하기 전에 한번만 천천히 숫자를 생각해 보는 여유를 부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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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이버메트릭스에 친숙하신 분들을 위해 ;

'82년부터 '05년까지 R/G는 다음과 같은 회귀식으로 나타낼 수 있다.

     R/G = 17.07 × OBP + 10.60 × SLG - 5.41

우리 리그 역시 출루율이 장타율에 비해 약 1.6배 정도 중요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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