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교 1학년 소녀가 한국 크로스컨트리스키 미래를 밝히고 있습니다. 주인공은 서울 세공중에 다니는 봉현채(14·사진 오른쪽). 봉현채는 지난해 겨울전국체육대회 초등부 크로스컨트리 스키 여자 초등부 복합에서 금메달을 목에 걸었고, 프리 4㎞에서도 동메달을 차지했습니다. 그리고 올해는 장애인겨울체전에서 5㎞ 프리와 2.5㎞ 클래식 2관왕을 차지했습니다.
네, 제대로 읽으신 게 맞습니다. 지난해에는 비장애인들과 겨뤄 금메달을 목에 걸었고 올해는 장애인 대회에서 메달을 차지했습니다. 물론 올해도 비장애인 체전에 참가합니다. 두 대회가 연이어 열리는 알펜시아 리조트에서 8일 만난 봉현채는 "지난해에는 초등부라 메달을 땄는데 올해는 중등부에서 언니들하고 뛰어야 한다. 올해는 (비장애인 대회에서) 메달을 따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봉현채는 시각장애 2급으로 태어날 때부터 백내장을 가지고 태어났습니다. 약 1m까지는 물체를 알아볼 수 있지만 거리가 그 이상 떨어지면 형태만 보이는 수준입니다. 봉현채는 "앞이 잘 보이지 않는다고 꼭 나쁜 것만은 아니다. 보고 싶지 않은 애들 보지 않아도 돼 좋은 점도 있다"면서 "단 학교에서는 맨 앞자리에 앉아야 한다. 그러면 선생님들하고 바로 마주해야 하니까 그건 불편하다"며 웃었습니다.
시각장애는 어머니인 추순영 골볼 여자 대표팀 코치(44·사진 오른쪽)에게 물려받은 것. (골볼은 축구처럼 상대 골대에 공을 넣어 승부를 가리는 시각 장애인 스포츠입니다.) 추 코치는 패럴림픽(장애인 올림픽)에도 여러 차례 참가한 한국 여자 골볼의 전설입니다. 추 코치는 "내가 워낙 운동을 좋아해서 골볼 말고도 마라톤이나 크로스컨트리(스키)도 많이 했다. 어릴 때 같이 스키장에 다니다 보니 현채도 자연스레 운동을 시작하게 됐다"고 말했습니다.
추 코치는 봉현채가 어릴 때도 일반 유치원 대신 '꼬마 스포츠단' 같은 곳에 보냈습니다. 시각장애인은 앞이 잘 보이지 않으니 어디 부딪치거나 넘어질 일이 많습니다. 그럴 때 운동신경이 있어야 부상을 최소화할 수 있습니다. 본인이 시각장애인으로 이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으니 딸도 운동하고 친숙하게 만들어주고 싶었던 겁니다.
어머니만 운동 선수 출신이 아닙니다. 아버지는 봉덕환 전 장애인 역도 대표팀 감독(53)으로 역시 자기 종목에서는 전설로 불리는 분입니다. 어머니와 아버지는 1988년 서울 패럴림픽(장애인 올림픽) 때 처음 만났고 1996년 애틀랜타 대회 때 연인 사이로 발전해 결혼을 하게 됐습니다. 비장애인인 오빠 봉성윤(20)도 크로스컨트리스키 선수로 이번 전국체전에 참가할 예정입니다. 오빠는 어머니가 마라톤을 뛸 때는 '가이드 러너'도 맡습니다.
봉현채도 장애인 대회에 나갈 때는 가이드 러너와 함께 경기를 치릅니다. 현재 눈이 되어주고 있는 건 손성락 씨(26·맨 위 사진 왼쪽). 봉현채는 가이드의 장점을 칭찬해 달라는 질문에 "성락이 오빠는 아주 재미있는 캐릭터라 평소에 오빠 덕에 웃을 일이 많다. 또 남들한테 내 칭찬을 아주 많이 해주는 것도 좋은 점"이라고 답했습니다.
비장애인 대회 때는 가이드가 따로 없기 때문에 코스를 머릿속에 외워서 경기를 치러야 합니다. 어머니 추 코치는 "매일 타는 코스다 보니까 이만큼 가면 우회전을 해야 한다, 자회전을 해야 한다는 건 이미 머릿속에 들어 있다. 하지만 설질(雪質)까지는 볼 수 없기 때문에 지난해 체전 때는 현채가 넘어지는 일도 있었다. 그래도 메달을 딴 걸 보면 잘 타기는 잘 타는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봉현채는 올해 장애인체전 때는 시범종목인 바이애슬론에서도 3km 스프린트 부문에서 가장 먼저 결승점을 통과했습니다. 바이애슬론은 크로스컨트리스키와 사격을 합친 종목입니다. 시각장애인은 앞을 볼 수 없기 때문에 사격 때는 헤드폰을 쓰고 비프(beep·'삐' 소리) 음정 변화 변화를 통해 조준을 합니다. 비장애인 경기 때는 이런 제도가 없기 때문에 바이애슬론에는 나서지 못합니다. (사진 아래가 봉현채.)
그래서 크로스컨트리스키는 더욱 양보할 마음이 없습니다. 봉현채는 "캐나다에 브라이언 매키버(37)라는 선수가 있다. 시각장애 선수인데 비장애인 대회에서도 곧잘 순위권에 이름을 올린다. 그 선수가 롤모델"이라며 "올림픽과 패럴림픽에서 모두 메달을 따는 게 꿈이다. 꼭 이 꿈을 이루고 싶다. 일단은 (또래 중 최고 실력자인) 정마리아 언니(16)를 이기는 게 목표"라고 말했습니다. 올림픽·패럴림픽 동시 메달 획득이 허무한 목표는 아닙니다. 이미 올림픽에서 메달을 딴 장애인 선수들도 있으니까요.
단, 내년 평창 올림픽·패럴림픽 때는 이 꿈을 이룰 수 없습니다. 올림픽이나 패럴림픽에 출전하려면 대회 폐막일 기준으로 만 16세가 넘어야 합니다. 2003년생인 봉현채는 내년에 이 기준을 충족할 수 없습니다. 추 코치는 "현채가 호적을 바꿔줄 수 없냐고 물어볼 정도로 크게 아쉬워 했다. 그건 올림픽 정신에 맞지 않아 안 된다고 했다"고 웃으면서 "현채가 갈수록 시력이 더 나빠져 걱정이다. 얼마 전에는 녹내장도 있다는 검사 결과가 나왔다. 그래도 희망을 잃지 않고 꿈을 이룰 수 있도록 뒤에서 잘 보살펴주겠다"고 말했습니다.
봉현채는 현재 대한장애인체육회 꿈나무·신인선수 명단에 이름을 올리고 있습니다. 종목별 '유망주'로 집중 훈련을 받고 있는 거죠. 봉현채는 "1년 중 절반은 집에 있고 절반은 여기(알펜시아 리조트) 머문다고 보면 된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러면 엄마가 보고 싶지 않냐'는 질문에 "이미 너무 자주 봐서 절반 정도만 봐도 된다"며 웃었습니다. 운동을 하지 않을 때는 주로 도라에몽 인형을 가지고 놀고 쿠키를 만들어 먹는 게 취미입니다.
봉현채는 "나중에 돈을 많이 벌면 너무 크지도 너무 작지도 않은 집을 짓고 싶다. 마당에서 강아지, 그 중에서도 리트리버를 키우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이어 "리트리버가 강아지 중에서 제일 귀엽다"고 이유를 밝혔습니다. 리트리버는 시각장애인 안내견으로 가장 많이 쓰는 견종입니다.
1)이렇게 기사로 썼는데 지면 사정으로 쓰고 싶은 내용을 다 못 담았습니다. 부족한 대로 남은 취재 내용도 정리해봤습니다.
2)스키는 크게 알파인 스키하고 노르딕 스키로 나놀 수 있습니다. 우리가 흔히 스키장에서 타는 그 스키가 알파인 스키입니다. 발을 스키에 고정하는 형태죠. 반면 노르딕 스키는 뒤꿈치가 떨어집니다. 경기 종목 중에서는 △바이애슬론 △스키 점프 △크로스컨트리가 노르딕 종목입니다. 크로스컨트리에서 클래식은 스키를 나란히 두고 앞뒤로 움직이는 방식이고, 프리는 좌우로도 움직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