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자 '베이스볼 비키니'에 '박병호 슬럼프 탈출, 체인지업 공략이 숙제'라는 칼럼을 썼습니다. 잠시 일부분을 인용해 보면:
빠른 공과 느린 공이 뒤섞이면서 박병호(30·미네소타)는 자기 타격 코스를 잃어버리고 말았습니다. 지난해 박병호는 몸쪽 낮은 코스에 방망이가 많이 나가던 타자였지만 올해는 반대로 바깥쪽 낮은 코스에 방망이가 자주 나갑니다(그래픽 참조).
타자가 공을 칠 때는 몸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방망이 중심을 회전시켜야 합니다. 그래서 몸쪽 공을 때릴 때는 방망이를 더 빨리 휘둘러야 하고 바깥쪽 공은 좀 늦어도 괜찮습니다. 이를 정리한 게 '효과 구속' 이론. 이에 따르면 타자는 바깥쪽 낮은 코스를 공략할 때는 몸쪽 낮은 코스보다 공이 시속 8km 정도 더 느리다고 생각해도 됩니다. 체인지업이 딱 그만큼 빨라졌으니 박병호는 원래 치던 대로 치면 그만이었습니다. 그런데 모두들 '빨리 빨리'를 강조하다 보니까 박병호도 타격 타이밍을 잃어버리고 말았습니다.
먼저 여기 등장하는 '효과 구속(EV·Effective Belocity)' 개념부터 좀 짚어 보겠습니다. 2013년 5월 16일자로 나간 기사 '류현진이 매덕스 넘으려면…'에 저는 "효과 속도는 스피드건에 찍히는 물리적 속도(real velocity)가 구종과 로케이션에 따라 타자에게 어떻게 달라 보이는지를 정리한 개념"이라고 썼습니다. 이 블로그 포스트에도 비슷한 내용을 써뒀습니다.
효과 속도 측정 결과를 표로 정리하면 오른쪽 그림처럼 나타납니다(조용빈 '효과속도(EV) 이론 - 타자와 투수의 타이밍 전쟁 그리고 그 측정'에서 가지고 온 그림입니다). 이 그림은 같은 구종이 같은 속도로 들어올 때 타자가 느끼는 효과 구속 차이를 나타냅니다. 플러스(+)는 효과 구속이 올라간다는 뜻이고 마이너스(-)는 반대입니다.
이런 결과가 나타나는 이유는 간단합니다. 효과 속도 이론은 투구 로케이션에 따라 '최적의 타격 포인트'가 각기 다르게 나타난다는 걸 전제로 하고 있습니다. 위에 나온 구절처럼 방망이 중심은 몸 중심에서도 멀리 떨어져 있습니다. 그래서 몸쪽 공은 좀더 빠르게 쳐야 휘둘러야 방망이 중심에 맞출 수 있는 반면 바깥쪽은 좀 반응이 늦어도 중심에 맞출 수 있습니다. 그래서 타자에게 몸쪽 공은 더 빨라 보이고, 바깥쪽 공은 더 느리게 보이는 것이지요.
여기서 재미있는 사실 하나 눈치 못 채셨나요? 오른손 타자가 볼 때 오른쪽 위로 올라가는 대각선 방향, 그러니까 이 그림에서는 오른쪽으로 내려오는 대각선 방향으로는 효과 속도가 똑같습니다. 그래서 일반적으로 오른손 타자는 이 코스로 들어오는 공에 강합니다. 한 가운데하고 똑같은 코스로 치면 되니까요. 반대 방향 대각선은 코스마다 효과 속도 차이가 벌어집니다. 그것도 높은 쪽은 빠르고 낮은 쪽은 낮죠.
다시 맨 처음에 나온 박병호 타격 코스를 볼까요? 꼭 그렇지는 않지만 지난해 한국 프로야구(왼쪽 그림)에서는 몸쪽 낮은 공을 중심으로 오른쪽 대각선 위로 등고선이 퍼져 나갔다고 볼 수 있습니다. 반면 올해 메이저리그에서는 몸쪽 바깥쪽을 중심으로 왼쪽 위로 올라간 모양새입니다. 지면 사정 때문에 쓰지는 못했지만제가 저 기사에 저 칼럼에 '빠른 공과 느린 공이 뒤섞였다'고 쓴 데는 사실 이런 이유가 있던 겁니다.
지난해까지 박병호가 헛스윙을 많이 하고 삼진을 많이 당한 건 '세금'에 가까웠습니다. 올해 메이저리그에 가서는 (제가 존경해 마지 않는) '공갈포 스타일'로 완전히 변했죠. 저는 그 이유가 여기에 숨어 있다고 봅니다. 효과 속도 영향을 극대화 시킨 구종이 체인지업이라고 생각했던 것이고 말입니다. '빠른 체인지업'에 신경쓰다 보니까 진짜 빠른 공에도 애를 먹게 된 게 아닐까요?
그런 이유로 박병호가 그냥 하던 대로 붕붕 방망이를 휘둘러 주기를 기대합니다. 공이 방망이에 와서 맞지 않을 뿐 시즌 초반만 해도 여전히 스윙 자체는 좋았니까요. 그런데 자꾸 '빠른 공을 못 친다, 못 친다' 하니까 결국 스윙이 엉망이 되고 말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