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수에게는 정말 매우 안타까운 일입니다. 그래도 남의 나라 야구규약을 두고 "stupid rule"이라고 따옴표까지 친 사람이 누군지는 궁금합니다. 한국야구위원회(KBO) 야구규약이 stupid(멍청)하다면 그만큼 이 선수 실수도 적지 않았으니 말입니다.
문화뉴스라는 곳에서 메이저리그 캔자스시티와 계약했다 돌아온 신진호(25·아래 사진) 이야기를 다뤘습니다. 이 기사를 쓴 김현희 기자는 메이저리그 진출에 실패한 신진호가 한국에 돌아온 지 2년이 넘었는데 KBO 규정이 stupid하게 돼 있어 신인 지명회의(드래프트) 신청을 할 수 없었다며 신진호가 억울해한다는 이야기를 전하고 있습니다. 기사를 (발췌) 인용하면:
(신진호도) 앞서 국내로 복귀한 선수들만큼 지명을 받을 수 있을 줄 알았다. 그러나 이번에도 '운명의 신'은 또 다시 신진호에게 시련을 안겨줬다. KBO가 그의 드래프트 신청서를 받아주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KBO가 문제 삼았던 부분은 그의 신분이었다.
"KBO에 드래프트 신청하러 갔더니, MLB(kini註 - 메이저리그 사무국)에 신분조회를 요청했습니다. 그런데…. (한숨) 제가 임의탈퇴 신분이라서 보류권이 풀리지 않았다는 거예요. 네, 맞습니다. 캔자스시티 로열스에 방출을 요청했는데, 구단이 MLB 사무국에 방출 서류를 제출하지 않았던 겁니다. 황당했죠. 규약에 나와 있는 유예기간 2년은 방출일로부터라서 2년 뒤에 나오랍니다. '그럼 야구 하지 말라는 이야기냐?'라고 물으니까 가만있더군요. 아, 정말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신진호의 말을 경청한 필자는 캔자스시티 로열스 극동 코디네이터를 통하여 사실 확인에 들어갔다. 확인 결과, 신진호의 말은 사실이었다. 캔자스시티 로열스가 MLB 사무국에 방출 요청 서류를 제출하지 않았고, 신진호로부터 이야기를 전달받은 로열스 구단이 그제야 움직였던 것이었다. 즉, 신진호가 로열스와의 계약이 만료된 시점은 2014년 4월이지만, '조건 없이 방출된 시점'은 2016년 4월이었던 것이다. KBO에서는 이 점을 들어 2016년 4월부터 '해외파 유예기간 2년'을 적용해야 한다고 주장한 것이다.
야구규약 제107조에는 "신인선수 중 한국에서 고등학교 이상을 재학하고 한국 프로구단 소속선수로 등록한 사실이 없이 외국 프로구단과 선수계약을 체결한 선수는 외국 프로구단과의 당해 선수계약이 종료한 날로부터 2년간 KBO 소속구단과 선수계약을 체결할 수 없(다)"는 내용이 들어 있습니다. 소위 '해외파 유턴 2년 유예 조항'입니다.
여기서 김 기자가 문제 삼고 있는 건 이 조항에 '방출 일자'라는 정확한 표현이 없다는 겁니다. 기사를 좀더 읽어 보시죠.
KBO의 설명과는 달리, '방출'에 대한 언급은 어디에도 없었다. 본 규약대로라면, '계약이 실질적으로 효과가 만료되어 구단으로부터 급료를 받지 못하는 상황'도 계약 종료로 해석할 수 있는 여지가 있는 셈이다. 이에 대해 KBO에 문의를 한 결과, 다소 흥미로운 답변이 전달됐다.
"상식적으로 살펴 보았을 때, 선수 계약이 종료한 날은 방출일이 아닌가. 그래서 신진호 선수와 동일한 문제로 드래프트 신청을 해 온 선수들에게도 동일하게 '방출일로부터 2년'을 적용시켜왔다. 물론 신진호 선수처럼 2년이 지나고 나서야 본인의 방출 여부를 인지한 경우는 없었다. 도움을 주고 싶어도 줄 수 없다는 점이 안타깝다."
필자가 KBO 답변에 흥미로움을 느꼈던 것은 바로 '상식적'이라는 표현 때문이었다. 설령, 야구를 전혀 모르는 누군가에게 이 규약집을 보여주고, '2년'에 대한 해석을 '상식적으로 답변해 달라.'라고 하면, '계약이 만료되어 실질적으로 해당 회사(혹은 구단)에서 급료를 받지 못하는 경우'라고 이야기하는 상황도 만들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KBO에서 말하는 '상식적'이라는 것은 그동안 '관례대로' 그렇게 처리해 왔다는 대답에 가깝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신진호는 정말로 캔자스시티 로열스에 방출을 요청했던 것일까. 이에 대한 사실 확인을 위해 필자는 캔자스시티 로열스 극동 코디네이터로부터 신진호의 방출 요청 서류를 받아볼 수 있었다. 확인 결과, 사실이었다. 2014년 4월에 신진호 본인이 '야구에 지쳤으며, 한국에 돌아가겠다.'라는 뜻이 담긴 서류에 서명을 한 사실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면서 증거 자료를 제시했습니다. 아래 사진이 그 증거. 안타깝게도 이는 '나를 방출해 달라'가 아니라 '나를 임의탈퇴자 명단에 올려 달라(Place on Voluntarily Retired List)'는 내용이었습니다.
한국에서는 징계 용도로 쓰는 일이 흔하지만, 임의(任意)탈퇴는 원래 '자발적인 은퇴(Voluntarily Retirement)'를 번역한 말입니다. 이 문화뉴스 기사는 임의탈퇴와 '자진사퇴'를 섞어 쓰고 있는데 사실 같은 용어인 겁니다. 그럼 메이저리그에서는 이렇게 임의탈퇴자 명단에 이름이 오른 선수는 어떻게 대우하고 있을까요? 메이저리그 단체협약(CBA) XX조를 한번 볼까요?
A Club may also reserve, under separate headings on a Reserve List, Players who properly have been placed on the Voluntarily Retired List, the Military List, the Suspended List, the Restricted List, the Disqualified List or the Ineligible List.
여기서 'reserve'는 '보류(保留)한다'는 뜻입니다. 예전 블로그 포스트에 설명해둔 걸 가져오면 "reserve에는 '(어떤 권한 등을) 갖다[보유하다]'는 뜻이 있습니다. '무단 전재 및 복제를 금지한다'는 영어 표현을 'All rights reserved'라고 쓸 때 바로 그 뜻입니다. 야구에서는 누군가 이 낱말을 '(자리 등을) 따로 잡아[남겨] 두다, (판단 등을) 보류[유보]하다'로 해석해 '보류선수'라고 엉터리로 적게 된 것"입니다.
그럼 메이저리그나 프로야구에서 보류권은 어떤 권한을 갖는 걸까요? 이듬해 선수계약 체결권입니다. 신진호는 임의탈퇴 신분이기는 하지만 CBA에 따라 계속 캔자스시티에 보류권이 있었습니다. 멀쩡한 선수가 원소속 구단에는 '저 은퇴할게요'하고 말해 놓고 다른 구단으로 옮길 수도 있어서 이 같은 안전장치를 마련해두고 있는 겁니다. 거꾸로 구단에서 선수계약을 해지하는 행위가 방출입니다.
그래서 이 임의탈퇴 신분이 신진호의 발목을 잡은 겁니다. 야구규약에는 '한·미 선수계약협정'도 들어 있습니다. 또 보시죠.
미국 선수(※kini註: 내셔널리그나 아메리칸리그 회원구단과 계약 상태인 선수)가 내셔널리그 또는 아메리칸리그 회원구단(이하 '미국 메이저리그 구단')의 보류, 군복무, 임의탈퇴, 제한, 실격, 자격정지, 부적격 명단(메이저리그 규약에 명시되어 있음)에 있을 경우 한국 구단은 미국 커미셔너를 통한 미국 구단의 승인 없이는 미국 선수를 교섭 또는 고용할 수 없다.
이 조항에 들어 있는 것처럼 메이저리그 CBA XX조에서 구단 보류권을 인정한 선수에 대해서는 KBO에서 어찌할 수가 없는 겁니다. 이 기사에 등장하는 영문 e메일을 쓴 사람이 누군지 모르겠지만, 추측컨대 임의탈퇴를 선수계약 종료 시점으로 따지지 않아서 아니라 "2년이 지나야 복귀할 수 있다"는 내용이 멍청하다고 한 거겠죠. 물론 선수가 이 내용을 모른 채 태평양을 건넜다면 그랬을 수 있지만 분명 알고 갔을 겁니다.
저 역시 신진호가 한국 무대로 복귀할 수 있는 빠른 길을 찾기를 바랍니다. 그런데 그 길이 이렇게 무조건 KBO 잘못으로 몰고 가는 데서 찾을 수 있는 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특히 선수가 임의탈퇴 서류에 사인한 걸 인지하고 있었다는 점에서 더욱 그렇습니다. 선수가 규칙을 따라야 하는 건 비즈니스 무대에서도 마찬가지고 '몰라서 그랬다'는 말로 모든 걸 용서받을 수 있는 건 아니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