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는 스포츠가 공용어입니다.


❝스포츠에서 유일한 것이 승리라면 이기는 그 순간 다시 경합을 벌여야겠다는 욕구는 사라질 것이다. 그렇다면 마이클 조던과 로저 클레멘스가 나이 마흔에 계속 경쟁을 벌였던 사실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 '소크라테스 야구장에 가다' 中에서


프로배구 남자부 한국전력 신영철 감독(52·사진 가운데)이 13일 경기에서 올 시즌 처음으로 퇴장을 당했습니다. 사실 올 시즌뿐만 아니라 V리그 역사를 통틀어서도 남자부 감독이 퇴장 당한 건 이번이 처음입니다. 여자부에서는 2007~2008 시즌 챔피언 결정전 4차전에서 고(故) 황현주 감독이 퇴장 당한 게 유일한 사례입니다.


사건이 터진 건 한국전력이 20-22에서 20-23으로 한 점을 더 내준 2015~2016 NH농협 V리그 6라운드 첫 경기 2세트 후반이었습니다. 상대팀 OK저축은행 서브 상황. 세터 곽명우(25)가 서브를 넣었는데 이때 라이트 시몬(29·시몬)이 '포지션 폴트' 반칙을 저질렀다는 게 신 감독 주장이었습니다.


포지션 폴트는 배구에서 선수들이 로테이션에 따른 자기 자리를 지키지 않는 반칙을 말합니다. 배구 선수들은 우리 팀이 서브권을 가져올 때마다 예전에 쓴 글에서 가져온 아래 그림처럼 한 칸씩 움직이여 합니다. 이 그림이 써둔 번호는 곧 자리 번호이기도 합니다.



선수들은 우리 팀이 서브를 넣을 때나 받을 때까지는 이 자리를 지키고 있어야 합니다. 만약 이를 어긴 선수가 있다면 심판은 포지션 폴트를 선언해야 합니다. 그럼 이날 2015~2016 V리그 경기 2세트 저 상황에서는 어땠을까요?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신 감독 주장이 맞았습니다.


어떤 선수가 어떤 자리에서 시작할지는 감독이 세트마다 정할 수 있습니다. 그래도 기본적으로 변하지 않는 원칙이 하나 있습니다. 똑같은 포지션이 대각에 위치하도록 짠다는 점입니다. 레프트는 레프트끼리, 센터는 센터끼리 그리고 세터와 라이트가 대각에 서도록 짜는 겁니다.


이 장면에서 서브를 넣는 선수는 곽명우였습니다. 즉 ①번 자리를 차지하고 있던 겁니다. (참고로 서브를 넣을 때는 좌우 쪽을 골라 어디든 원하는 곳에서 넣어도 상관 없습니다.) 그러면 라이트는 대각에 와야 하니까 시몬은 ④번 자리에 서 있어야 했습니다. 실제로는 전위 가운데 그러니까 ⑤번 자리에 서 있었습니다.



혹시 대각에 세우지 않은 건 아니냐고요? 아닙니다. 2세트는 때 OK저축은행 김세진 감독이 써 가지고 온 오더는 ①박원빈(센터) - ②곽명우(세터) - ③송명근(레프트) - ④한상길(센터)- ⑤시몬(라이트) - ⑥송희채(레프트) 순서였습니다.


그런데 왜 신 감독은 퇴장 당해야 했을까요? 한국배구연맹(KOVO) V리그 대회 요강에 이에 대해 재심요청을 할 수 없도록 돼 있다는 데 있습니다.


제39 조 (경기 중 재심요청)

①감독은 경기 중 다음과 같은 경우 경기감독관, 심판감독관에게 지체없이 경기중단을 요구하고 재심을 요청할 수 있다.

1.주심이 규칙이나 규정을 적절하게 적용하지 못했을 경우(사실판정 제외)

2.로테이션 순서가 잘못되었거나 경기기록원 또는 전광판 조작 실수로 점수관리가 잘못된 경우

②재심요청이 플레잉 동작에 관한 판정이거나 정당하게 적용된 규칙에 관한 것은 부당한 것으로, 심판은 감독에게 구두로 1차 경고를 주며 부당한 재심요청을 반복 제기하면 감독에게 자격상실(완전퇴장)의 제재를 가한다. (이하 생략)


"로테이션 순서가 잘못되었거나"라는 표현이 헷갈릴 수 있는데 이건 사실상 서브 선수를 어겼을 때 재심요청을 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신 감독은 이미 1세트 때도 4심 합의 판정에 재심을 요청했다가 기각 당한 상태였습니다. 역시나 재심요청 대상이 아니었죠. 그러니 이 조항 ②에 따라 퇴장 당할 수밖에 없는 처지가 되고 말았습니다. 


경기 후 신 감독을 대신해 인터뷰한 김철수 코치는 "상대에서도 인정했는데 부심에 항의하니 부심은 주심이 봐야 한다고 했다. 부심이 불 수 있는데도 안됐다"고 토로했습니다. 신 감독도 재심 과정에서 "감독관이 얘기할 수 있잖아요. (재심 요청 사항이 아닌 건) 알아요. 그런데 심판이 못 봤잖아요"하고 답답해 했습니다. 원래대로라면 주심은 서브를 넣는 팀 포지션 폴트, 부심은 서브를 받는 팀 포지션 폴트 여부를 확인하고 있어야 합니다. 


예전에도 수원에서 똑같은 일이 벌어진 적이 있었습니다. 삼성화재 당시 신치용 감독이 한국전력(당시는 KEPCO) 측 포지션 폴트를 지적하며 10여분 간 항의했지만 심판진에서는 끝내 받아들이지 않았던 겁니다. 수원에서는 등번호 대신 로테이션 번호를 달아야 심판들이 제대로 보려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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