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는 스포츠가 공용어입니다.


❝스포츠에서 유일한 것이 승리라면 이기는 그 순간 다시 경합을 벌여야겠다는 욕구는 사라질 것이다. 그렇다면 마이클 조던과 로저 클레멘스가 나이 마흔에 계속 경쟁을 벌였던 사실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 '소크라테스 야구장에 가다' 中에서

 

"내 개똥 철학이 '가을 야구'에서는 통하지 않아. 내가 할 일은 우리 팀을 가을 야구에 올려 놓는 것. 그 다음에 벌어지는 건 빌어먹을 운발이라고(My shit doesn't work in the playoffs. My job is to get us to the playoffs. What happens after that is fucking luck)." - 빌리 빈 메이저리그 오클랜드 단장

 

프로야구 넥센의 올 시즌이 처참한 실패로 막을 내렸습니다. 염경엽 넥센 감독이 포스트시즌 마무리 카드로 뽑아든 조상우(21)가 무너진 탓이었죠. 준플레이오프(준PO) 4차전에서 역대 포스트시즌 9회 최고 기록인 6점차 역전패를 당한 건 분명 염 감독 잘못입니다. 그런데 한 독자분께서 댓글로 남겨주신 것처럼 올 시즌 전체를 놓고 볼 때도 염 감독이 투수 운용에 실패했다고 볼 수 있을까요?

 

물론 염 감독이 페넌트레이스에서 조상우를 많이 쓴 건 맞습니다. 93과 3분의 1이닝이나 던졌으니까요. 한화 권혁(32)이 112이닝, 박정진(39)이 96이닝을 소화한 걸 제외하면 올해 조상우보다 투구 이닝이 많은 구원 투수는 없었습니다. 한현희(22)는 시즌 초반 선발로 뛰었고 손승락(33)은 시즌 후반 흔들렸기 때문에 조상우에게 부하가 걸렸던 건 틀림없습니다. 그게 포스트시즌까지 영향을 준 걸까요? 제 대답은 '아니요'입니다. 여전히 저는 그저 포스트시즌 운용법이 문제였다고 봅니다.

 

레버리지 인덱스 그리고 준PO 4차전

 

투수 교체 이야기를 하려면 먼저 레버리지 인덱스(LI·Leverage Index)라는 개념하고 친해질 필요가 있습니다. LI는 해당 상황이 경기 승부에서 얼마나 중요한 순간인지를 알려줍니다. 기본적으로는 타석에 있는 타자가 공격 팀에 제일 좋은 결과(홈런)가 나올 때하고 수비 팀에 제일 좋은 결과(삼진)가 나올 때를 비교해 계산합니다. (LI 계산법이 좀더 궁금하신 분은 이 링크를 참조하세요.) 평균은 1.0이고 상황이 중요할수록 숫자가 커집니다.

 

어떤 패배 시각회: 어제 경기 9회초 시작 때 #넥센히어로즈 승률은 96.7%.jpg

Posted by kini's Sportugese on 2015년 10월 14일 수요일

 

준PO 4차전 승리 기댓값(WP·Win Probability)를 정리한 위 그림에서 아래 쪽에 있는 막대 그래프가 LI를 나타냅니다. 조상우가 마운드에 올랐던 9회초 1사 1, 3루 두산 허경민(25) 타석은 LI가 0.84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한 경기에 한 팀이 5.9점을 내는 목동에서는 1회초 선두타자 타석 LI가 0.87입니다. 허경민 타석 역시 대세에 별 지장이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염 감독이 올 페넌트레이스 때 6회 이후 LI 0.9 이하 상황에서 투수 교체를 선택한 건 1174타석 중 54번(4.6%)으로 10개 구단 중 최저였습니다. 평소와 달리 염 감독은 이 타이밍에서 갑자기 조급증에 시달렸습니다.

 

게다가 원래 마운드를 지키던 한현희는 올 시즌 구원 등판 때 평균 LI 1.21 상황에서 공을 던졌습니다. LI 0.84 정도는 충분히 이겨낼 만한 자원이었던 거죠. 한현희가 9회초를 시작하자마자 안타 두 개를 맞으며 흔들린 건 사실. 그래도 왼손 타자 정수빈(25)에게 아웃 카운트를 빼앗은 다음이었습니다. 한현희하고 허경민을 붙여 맞더라도 그다음 카드를 생각할 수 있었습니다. 한현희가 맞나, 조상우가 맞나 허경민이 안타를 때린 순간 LI는 1.74가 됐을 테니까요.

 

그래도 결국 염 감독 선택은 조상우였고, 허경민에게 안타를 내준 다음 대타 오재일(29)에게 볼넷을 내주면서 LI는 2.82가 됐습니다. 이러면 투수가 더더욱 흔들릴 수밖에 없습니다. 결국 1차전에서 밀어내기 볼넷을 허용해 트라우마가 있던 김현수(27)에게 스트라이크 2개를 먼저 잡고도 적시타를 내주고 말았습니다. 결국 조상우는 LI 7.17 상황에서 양의지(28)하고 상대해야 했습니다. 결과는 아시는 대로 꽝!

 


배수의 진을 칠 때 주의할 것

 

와일드카드 결정전(WC) 때 기사로 쓴 것처럼 저는 포스트시즌 때 조상우를 마무리 투수로 쓰겠다는 염 감독 견해 자체에 100% 동의했습니다. 탁월한 선택이라고 생각하기도 했습니다. 가을 야구는 마무리 투수가 더욱 중요한 경기가 펼쳐지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손승락은 시즌 막바지 퓨처스리그(2군)에 다녀온 뒤에도 100% 컨디션은 아닌 것처럼 보였습니다.

 

기대치도 충분했습니다. 올 시즌 LI 2.0을 넘간 상황은 모두 6112번. 전체 5만6742 타석 중 10.8%에 해당하는 비율입니다. 상위 10%에 해당할 만큼 위급한 상황이라는 뜻입니다. 넥센에서는 LI 2.0 이상에서 당연히 손승락(11번)이 불을 끄러 나온 적이 제일 많았고, 그다음이 조상우(9번)였습니다. 기록은 조상우가 압도적이었습니다. 손승락이 상대 타자를 OPS(출루율+장타력) .619로 막는 동안 조상우는 .111이었으니까요.

 

그러니 조상우가 올 포스트시즌에서 한 뼘 더 자랐다면 넥센은 내년 시즌 특급 마무리 투수를 얻을 수 있었을 겁니다. 그랬다면 자유계약선수(FA) 자격을 얻은 손승락이 내년에도 함께 한다는 전제 하에 토종 선발 요원도 한 명 얻을 수 있게 됐을 테고요. 그걸 바랐기에 사흘 전에 49개를 던졌지만 조상우가 맥스 25개로 2이닝을 막아줄 거라고 믿고 싶었을 겁니다.

 

 

결과론이지만 너무 순진한 접근법이었습니다. 야구에서는 투수를 한 번 내리면 다시 올릴 수 없습니다. 실질적으로 믿을 만한 투수가 세 명뿐인 상황이라면 분명 염 감독이 조금 더 보수적으로 마운드를 운용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WC에서 흔들린 건 사실이지만 준PO만 놓고 보면 왜 그렇게 한현희를 믿지 못했는지 좀 아쉽습니다. 한현희는 1차전 때도 7회말에 허경민 딱 한 타자를 상대해 공을 3개밖에 던지지 않았습니다.

 

 

염갈량이 자기 감(感)을 좀더 믿어도 괜찮았을 이유

 

구원 투수 한현희도 조상우보다는 못했지만 역시 나쁘지 않았습니다. LI 1.5 이상으로 기준을 낮추면 전체 타석 중 11.1%. 이 상황에서 한현희는 상대 타자를 OPS .442로 묶는 '짠물 투구'를 선보였습니다. 선발로 나왔을 때 .942로 얻어터진 왼손 타자를 상대로는 .368로 더 좋았습니다. 준PO 2차전 때는 왼손 타자 오재원(30), 오재일을 차례로 잡아냈고, 4차전 때도 마지막 상대 타자가 된 정수빈은 우익수 뜬공이었습니다. WC에서도 SK 박재상(33)을 상대로 2루수 땅볼을 유도해냈습니다.

 

그런데도 염 감독은 '최적의 카드'를 쓰는 대신 '최고의 카드'를 당겨 썼습니다. 되돌릴 수 없는 최고의 카드 말입니다. 그 결과 1차전 때 아직 경기를 내준 것도 아닌데 정규 시즌 때 LI 1.5 이상에서 상대 타자가 OPS 1.172를 기록하게 만든 김택형(19)을 마운드에 올려야 했습니다. 박병호(29)의 올 시즌 OPS가 1.150입니다. 너무 서둘러 배수의 진을 친 거죠.

 

차라리 중간에 B급 투수들을 짧게 끊어갔으면 어땠을까요? '조현락(조상우-한현희-손승락)' 트리오를 제외한 넥센 불펜 투수가 올 시즌 포스트시즌 마운드에 있던 건 1과 3분의 1이닝이 전부입니다.

 

기록으로 보면 염 감독은 확실히 투수 교체에 일가견이 있습니다. 정규 시즌 때  LI 1.5 이상 상황에서 마운드에 오른 넥센 투수들은 첫 타자를 OPS .526으로 막았습니다. 10개 구단 중 가장 낮은 숫자입니다. 한 경기, 한 경기는 아쉬운 것 같아도 쌓아놓고 보면 쓸 만한 겁니다. 포스트시즌 때 임기응변을 아예 배제하고 '공식'을 세워놓고 간 마운드 운용이 아쉬운 이유입니다.

 

▌LI 1.5 이상 투수 교체 첫 타자 상대 기록 

 순위 구단 타석 타율 출루율 장타력 OPS
 1 넥센 47 .184 .289 .237 .526
 2 NC 62 .196 .339 .239 .578
 3 KIA 78 .203 .311 .271 .582
 4 kt 63 .231 .300 .327 .627
 5 SK 77 .206 .276 .471 .747
 6 LG 85 .319 .385 .478 .863
 7 두산 87 .329 .410 .575 .985
 8 삼성 54 .356 .392 .644 1.037
 9 한화 70 .321 .433 .642 1.074
10 롯데 77 .364 .413 .773 1.186

 

물론 넥센은 기본적으로 투수 자원이 부족하지만 그걸 염 감독 잘못으로 몰아갈 일은 아닙니다. 팀 형편이 어려울 때 떠나 보내야했던 장원삼(32·현 삼성)이나 이현승(32·현 두산)이 여전히 넥센 유니폼을 입고 있었다면 투수진 중심을 잡아줬겠죠. 아랫돌을 빼서 윗돌을 끼운 격인 한현희 선발 실험 같은 것도 없었을 겁니다. 또 넥센 보고 젊은 선발 투수들을 못 키운다고 하는 게 틀린 지적은 아니지만 다른 팀이라고 젊은 선발 자원이 넘치는 것도 사실 아니잖아요?

 


선수 만들기 vs 팀 만들기

 

그래서 투수가 부족한 게 상수인 만큼 3위 싸움에서 타자들이 힘을 더 냈어야 했다고 봅니다. WC를 치르지 않았다면 밴헤켄(36)을 1차전 선발로 내세울 수 있었을 테고 조상우도 투구수 제로(0)로 준PO를 시작할 수 있었을 테니까요. 그러나 3년 연속으로 0.5경기 차이로 순위가 밀렸고, 올해도 가을야구 잔혹사가 이어졌습니다. 3년 연속으로 정규시즌 1승이 정말 소중했는데, 한 경기만 더 이겼다면 가을야구 성적이 달라질 수 있었는데, 끝내 그걸 따내지 못했던 겁니다.

 

사실 진짜 문제는 여기 있다고 생각합니다. 프로야구에는 져도 괜찮은 경기도 많지만 꼭 이겨야 하는 경기도 있습니다. 넥센은 이런 경기에서 이기는 힘이 부족합니다. 특히 이기면 순위가 올라가는 경기에서는 이긴 적이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2013년 한화 바티스타(35)를 상대했던 최종전 때는 경험부족이라고 쳤지만 올해도 상황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고시엔(甲子園)이 감동적인 이유는 매일 '져서는 안 되는' 경기를 한다는 점이다. 프로야구는 사실 매일 '져도 괜찮은' 경기다. 그러나 오늘 #넥센히어로즈 '져서는 안 되는' 경기를 잃었다.

Posted by kini's Sportugese on 2013년 8월 20일 화요일

 

그런 생각까지 들 정도입니다. 현재 넥센 시스템이 스타 선수를 만들어내는 데는 분명 최고 수준인 게 사실. 하지만 팀을 만드는 데는 어딘가 구멍이 있는 게 아닐까요? 넥센 선수들은 이기려고 똘똘 뭉친 한 팀인가요? 아니면 그저 능력자들이 자기 타순과 등판 순서에 따라 경기를 뛰고 있을 뿐인가요? 그 결과 좀 많이 이기는 팀이 된 건가요?

 

 

이 차이를 가른 게 지난해 한국시리즈 때 강정호(28·피츠버그)의 그 빌어먹을 플레이였다고 생각합니다. 지난해 한국시리즈에서 우승했다면 올 시즌 넥센은 정말 '팀'이 됐을 겁니다. 그러면 김하성(20)이 다 못 채운 강정호의 빈자리도 올 시즌만큼 크지는 않았을 겁니다. 안타깝게도 결과는 반대였고 넥센은 '한국시리즈 준우승 후유증'을 앓게 됐습니다. 원래 한국시리즈에서 준우승하면 이듬해 승률이 내려갑니다

 


넥벤져스를 넘어 팀 히어로즈로

 

이제 중심 타선을 지켜주던 '목황상제' 박병호가 떠납니다. FA 단속도 해야 합니다. 이택근(35)은 몰라도 유한준(34), 손승락과 내년 시즌에도 함께 할 수 있을까요? 게다가 내년부터는 넥센 타순에 가장 알맞은 구장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목동도 더 이상 쓸 수 없습니다. 팀 이름도 바뀔지 모릅니다. 넥센타이어하고 맺은 메인 스폰서 계약이 올해로 끝나기 때문입니다. 위기가 곧 기회라는 말을 믿는다면 넥센이 다시 팀으로 거듭날 수 있는 계기가 찾아온 셈입니다.

 

여전히 넥센을 '드림팀'이라고 부르기에는 망설여지는 게 사실이지만 문제는 본질적으로 같다고 생각합니다. '드림팀이 실패하는 이유'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는 말씀입니다. 염 감독이 WC 미디어데이에서 "나 혼자 작년에 우승하고 싶었던 것 같았다"고 말할 때 뒷골이 서늘했던 이유입니다. '우리 선택은 언제나 옳다'는 집단적 사고가 엿보였거든요. 저는 절박함도 좋지만 오히려 초심이 더 중요하다고 믿는 축이었으니까요.

 

다른 말로 하자면 순리라고 할까요? 그러니까 정규 시즌에서 어떻게 하면 더 높은 순위를 차지할 수 있을까 고민하는 것 말입니다. 지난해 한국시리즈에 진출하면서 넥센은 강팀으로 가는 과정에 있는 팀이 아니라 강팀이 됐습니다. 최강팀이 되지 못했을 뿐이죠. 올해는 강정호가 나간데다 서건창(26)과 이택근 등이 부상으로 빠지면서 지난해만큼 전력을 내기가 어려웠습니다. 현실적인 상한선이 3위였습니다.

 

DBR 2013 Business Cases - ‘넥센 히어로즈’넥센히어로즈는 2008년 3월 재정난을 겪던 현대유니콘스를 투자회사인 센테니얼인 베스트먼트가 승계해서 재창단한 프로야구 구단이다. 국내 다른 구단과는...

Posted by 동아비즈니스리뷰 on 2013년 12월 18일 수요일

 

지금까지 넥센은 선수들에게 각기 다른 롤(role)을 맡기는 것으로 '조직적 사고'를 선수들 사이에 뿌리내리게 만들었습니다. 내년에는 팀 구성에 따라 한 걸음 뒤에 물러나 있던 선수들이 앞으로 나올 필요가 있습니다. 당연히 염 감독이 좀더 세심하게 전력을 끌고가야겠죠. 마지막 카드를 먼저 꺼내놓고 속수무책으로 당하는 건 더 이상 보고 싶지 않습니다. 넥벤저스를 뛰어 넘은 팀 히어로즈의 2016년을 기대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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