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9회말 2아웃 주자 2루

클러치히터.

이만큼 야구팬을 설레게 만드는 낱말이 또 있을까?

끊임없이 이어질 것 같은 팽팽한 승부. 마침내 2사후에 기회가 찾아온다. 방망이로 양 발을 한 번씩 툭툭 치고 타자가 타석에 들어선다. 힘껏 방망이를 움켜쥐고 매섭게 투수를 노려보는 타자. 투수는 로진백을 만지며 호흡을 가다듬고 주위는 순식간에 고요해 진다.

배터리가 사인을 주고받는 그 몇 초가 너무도 길다. 타자의 심장이 두근거리고 포수 역시 신중에 신중을 거듭한다. 마침내 고개를 끄덕이고 투구 자세에 들어가는 투수. 하지만 채 2초가 지나기 전에 1, 3루 관중석 분위기는 완전히 갈린다.

파란 잔디 사이를 깨끗이 갈라 날아가는 하안 공. 타자는 1루 베이스를 밟자마자 동료들에게 얻어맞기 바쁘다. 그는 속으로 되뇌인다다.

"내 심장이 투수의 그것보다 강했다."


#2 "심장이 강할수록 큰 경기에 강하다."

현대의 주전 포수 김동수는 클러치히터의 존재를 믿는다. 심장이 강한 선수일수록 큰 경기에 강하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하지만 김동수는 적어도 득점권에서는 강한 타자가 못 된다. 28일 현재까지 김동수의 득점권 타율은 .195밖에 되지 않는다. 타율은 물론 출루율(.265)과 장타율(.244) 모두 시즌 평균(타율.303/출루율.350/장타율.421)보다 떨어진다.

그럼 김동수는 심장이 약한 타자인가?

하지만 동점 혹은 역전 주자가 루상에 나가면 상황은 달라진다. 먼저 타율 5할부터 사람을 놀라게 만든다. 게다가 김동수는 이런 조건에서 장타율 1.333을 기록했다. (OPS가 아닌 장타율이 1.333이다.) 이 기록만 보자면 김동수야 말로 완전한 클러치히터인 셈이다.


#3 클러치 상황?

그럼 도대체 클러치 상황은 어떻게 정의해야 하는 것일까?

소위 '영양사'라 불리는 야구팬들은 득점권 기록을 중요한 지표로 여긴다. 하지만 10대 0으로 이기고 있는 9회초 공격에서도 주자가 2루에 있다면 득점권 기록에 반영되게 마련이다. 타점 기회를 따지는 것이라면 차이가 없겠지만 과연 이 타석 결과가 승부에 끼치는 영향이 얼마나 될까?

그래서 어떤 이들은 7회 이후 박빙 상황을 중시하기도 한다. 영어 표현으로 흔히 Late and Close라 불리는 그 상황 말이다. 하지만 5회에 추가점을 올렸으면 편하게 갈 수 있는 찬스를 놓친 타자가 7회 이후에 잘 때려냈다고 해서 그를 클러치히터라 부를 수 있을까?

결국 어떤 주관적인 느낌만으로는 클러치 상황을 정의하기가 그리 쉽지 않다는 얘기다.


#4 레버리지 인덱스(Leverage Index) 혹은 LI

그래서 등장한 지표가 바로 레버리지 인덱스(Leverage Index, LI)다. 레버리지 인덱스는 객관적 수치로 해당 상황이 경기에서 얼마나 중요한 순간인지를 나타낸다.

LI는 기본적으로 평균이 1.0이다. 만약 이보다 수치가 낮으면 승부에 의미가 없는 상황이고, 승부에 끼치는 영향력이 커질수록 LI값 역시 커진다.

LI는 어떻게 계산하는 것일까?

기본적으로 LI는 WP(Win Probability)에 근거하고 있다. 몇 차례 소개한 적 있는 WP는 각 이벤트가 벌어진 시점에서 해당 팀이 경기에서 승리할 기대치를 나타내는 값이다.

보기를 통해 한번 LI 계산법을 알아보자.

평균 득점 4.5점인 구장에서 홈팀이 1:0으로 이기고 있는 상황에서 원정팀이 9회초 공격을 시작한다. 이 때 홈팀의 WP는 .838이다. 홈팀이 이 경기에서 승리를 거둘 확률이 83.8%라는 이야기다.

이때 원정팀 선두 타자가 아웃으로 물러난다면 홈팀의 WP는 .072가 늘어 .911이 된다. 현대 야구에서 타자는 평균적으로 플레이 한번에WP .027을 변화시킨다. 그럼 이 순간 아웃 카운트 하나는 평소에 비해 약 2.7배 중요하다고 말할 수 있다. (.072 ÷ .027 ≒  2.7) 이게 바로 가장 기본적인 LI 계산법이다.

실제 LI 계산에는 이보다 복잡한 양상이 존재한다. 위 상황은 간략한 개념 이해를 위해 예를 들었을 뿐, 실제로는 30점으로 뒤진 상황부터 30점 이기고 있는 상황까지 벌어질 수 있는 모든 사건을 계산에 반영한다.


#5 클러치히터

이제 우리는 어떤 때가 중요한 순간인지를 확인할 수 있게 됐다. LI가 높으면 높을수록 승부에 끼치는 영향이 더 크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자연스레 클러치 히터를 알아내는 일도 수월해 진다.

하지만 여전히 난제는 남는다. 1) LI가 높은 상황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는 타자를 클러치히터로 볼 것인가? 아니면 2) 평소보다 LI가 높은 상황일수록 더 잘하는 타자를 클러치히터로 볼 것인가?

다음 시간에는 지난 2년간의 실제 데이터를 가지고 이 문제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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