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전 기회는 '도둑처럼' 찾아왔다. 그래서 지금이 제일 소중하다. 한국 남자 배구 대표팀 세터 이민규(23·OK저축은행·사진)가 "앞으로 10년이 흘러도 이번 월드리그가 가장 기억에 남을 것 같다"고 말한 이유다. 고질적인 부상을 안고 사는 유광우(30·삼성화재)가 이번 유럽 방문 일정에 함께하지 못하면서 '대표팀 막내' 이민규는 팀 공격을 조율하는 중책을 맡게 됐다.
프랑스 몽펠리에에서 2015 국제배구연맹(FIVB) 월드리그 국제남자배구대회 대륙간 라운드 D조 마지막 주 일정을 준비 중인 이민규는 1일(이하 현지시간) "광우 형이 있었다면 내가 조금 더 편하게 대회를 치를 수 있었을 것이다. 그래도 부담보다 책임감을 느낀다. 큰 경기에 계속 나가다 보니 몸으로 느끼고 생각하는 것도 많다"고 말했다. 수원과 천안을 오가며 치른 안방 경기에서도 유광우보다 더 많은 시간을 소화한 이민규였다.
이민규는 이어 "사실 나는 항상 자신감이 없었다. 지난 시즌 프로배구 V리그에서 팀이 우승할 때도 마찬가지였다"며 "강한 상대와 계속 맞붙으면서 자신감이 생기는 걸 느낀다. 내게는 중요한 동시에 잘해야 하는 시기다. 개인적인 컨디션 같은 건 아예 신경 쓰지 않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민규는 동갑내기 송명근, 송희재(이상 OK저축은행), 오재성(한국전력)과 함께 대표팀 막내지만 어느덧 책임감을 느낄 만한 위치에 선 것이다.
이민규는 지난해 월드리그 때는 현재 상근예비역으로 군목부 중인 한선수(30·대한항공)의 백업으로 주로 출전했습니다. 이민규는 "선배 공격수들과 호흡을 맞추는 게 힘들 수도 있다. 하지만 고맙게도 형들이 많이 존중해주기 때문에 그에 대한 부담은 없다. 다들 '어떻게든 처리할 테니 믿고 올려달라'고 한다. 형들이 많이 희생해주는 것이고 그런 점을 느낄 수 있기 때문에 고맙다"고 전했다.
한국 대표팀은 2일 오후 8시 프랑스와 D조 예선 11차전을 치른다. 10연승을 기록하며 월드리그 최다 연승 신기록을 새로 쓴 프랑스는 한국이 상대하기 벅찬 상대인 게 사실. D조 1위는 따놓은 당상이고, 한국은 이미 안방에서 프랑스에 2연패를 당했다. 하지만 이민규는 "아무 생각 없이 부딪히고 달려들 수 있는 게 약자가 가진 특권"이라며 패기를 내비쳤다.
그런 무모함이 오히려 이민규를 성장시키는 자극제가 되고 있다. 이민규는 장차 '업계'에서 알아주는 선수로 성장하는 게 목표다. 이민규는 "한 코트에서 같이 뛰는 동료들로부터 인정받는 선수가 되고 싶다. '같이 있어서 든든하다'는 걸 넘어 '저 친구가 상대편이면 정말 곤란하겠다'는 생각이 드는 선수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