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는 스포츠가 공용어입니다.


❝스포츠에서 유일한 것이 승리라면 이기는 그 순간 다시 경합을 벌여야겠다는 욕구는 사라질 것이다. 그렇다면 마이클 조던과 로저 클레멘스가 나이 마흔에 계속 경쟁을 벌였던 사실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 '소크라테스 야구장에 가다' 中에서


올 시즌 프로배구 여자부 경기가 끝나던 31일, 아니 도로공사의 올 시즌이 끝나던 바로 그 순간 가장 서럽게 눈물을 흘린 건 외국인 선수 니콜(29·미국·사진)이었습니다. 그는 프로배구 2014~2015 NH농협 V리그 여자부 챔피언 결정전 3차전에서 팀이 0-3으로 패하자 코트 위에 주저 앉아 대성통곡했습니다. 서남원 감독과 코칭 스태프가 말려도 소용이 없을 정도였습니다. 니콜은 숙소로 돌아가는 버스에 타기 전까지도 하염없이 흘러내리는 눈물을 주체하지 못했습니다.


최근 세 시즌 동안 도로공사는 니콜의 팀이었습니다. 배구 좀 본다는 팬들은 아예 이 팀을 '니콜공사'라고 부르기도 했습니다. 2012~2013 시즌 처음 한국 무대를 밟은 니콜은 올 시즌 공격 점유율 48.3%를 기록하며 팀을 정규리그 우승으로 이끌었습니다. 세 시즌 중 가장 높은 비율이었죠. 도로공사는 이번 시즌을 앞두고 자유계약선수(FA) 시장에서 세터 이효희(35)와 센터 정대영(34)을 영입했지만 여전히 팀 중심에는 니콜이 자리잡고 있던 겁니다. 


단지 실력만 뛰어난 게 아닙니다. 니콜은 그저 단순한 공격 제1 옵션이 아니라 팀의 에이스였습니다. 지난해 배구 시즌 끝 무렵에 썼던 기사를 잠깐 인용하면:


야구에서 '에이스'는 보통 제1 선발 투수를 가리키는 말이다. 그러나 엄밀히 말하면 에이스와 제1 선발은 다르다. 고(故) 최동원을 두고 그저 "프로야구 롯데 제1 선발이었다"고 쓰는 건 그가 한국 야구사에 남긴 족적을 설명하지 못한다. 최동원은 에이스였다.


프로배구도 마찬가지다. 외국인 선수가 각 팀 제1 공격 옵션으로 자리매김하면서 몰방(沒放) 배구가 트렌드처럼 굳어졌지만 에이스라고 부를 만한 선수는 그리 많지 않다.


여자부 도로공사 니콜(28·미국)은 확실한 에이스다. 도로공사는 배구 팬들이 '니콜공사'라고 부를 만큼 니콜 의존도가 높다. 지난해부터 그랬다. 니콜이 지난 시즌 남녀부를 통틀어 당시 최고 기록이었던 한 경기 55득점(현재 2위)을 올릴 수 있었던 건 거꾸로 도로공사에 그만큼 믿을 만한 선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중략)


도로공사 경기가 끝나면 사인을 모두 해줄 수 없을 정도로 많은 팬들이 니콜을 기다린다. 니콜은 일일이 눈을 맞추며 팬들에게 감사의 뜻을 전한다. 니콜이 그저 '용병'이 아니라 언니 자격으로 동료 선수들을 다독이는 모습에 팬들은 감동했다. 도로공사 팬들이 내년에도 계속 니콜과 함께하기를 바라는 이유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제 니콜은 더 이상 도로공사 팬들과 함께 할 수 없습니다. 외국인 선수 선발 규정이 바뀌었기 때문입니다. 이제 V리그 여자부 팀은 △미국대학스포츠협회(NCAA) 소속 대학을 졸업하고 △해외리그 경험이 3년 미만인 선수만 데려올 수 있습니다. 니콜은 V리그에서 뛰기 이전에도 해외 경험이 풍부한 선수. 결국 이 챔피언 결정전 3차전은 결국 그가 V리그에서 뛴 마지막 경기가 됐습니다.


니콜과 V리그는 어쩌면 운명적인 만남이었습니다. 니콜은 경기 평택시에서 주한미군으로 근무했던 아버지와 배구 선수였던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습니다. 그 덕에 어릴 때부터 한국 식당을 자주 찾아 청국장도 문제 없는 식성을 지니게 됐습니다. 보통 숙소를 따로 얻어 사는 다른 외국인 선수와 달리 단체 숙소에서 동료들과 함께 지내며 트레이너 볼을 꼬집어 고마움을 표현할 정도로 선수단과 정도 돈독하게 들었습니다. 그랬기에 누구보다 더 팀에 우승 트로피를 작별 선물로 남기고 싶었을 겁니다. 그는 '용병'이 아니라 '동료'였으니까요.


서 감독은 "니콜은 한국말로 이효희에게 '언니, 고마워'하고 말할 만큼 다정다감한 성걱이였다. 한 마디로 다신 만날 수 없는 최고의 외국인 선수다. 기량과 성품 모두 최고였다"며 니콜을 치켜세웠습니다. 니콜은 8일 V리그 시상식을 마지막으로 한국 무대에 작별을 고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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