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는 스포츠가 공용어입니다.


❝스포츠에서 유일한 것이 승리라면 이기는 그 순간 다시 경합을 벌여야겠다는 욕구는 사라질 것이다. 그렇다면 마이클 조던과 로저 클레멘스가 나이 마흔에 계속 경쟁을 벌였던 사실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 '소크라테스 야구장에 가다' 中에서


병살타가 희생번트보다 기대득점을 더 줄인다.

야구에서 공격 때 가지고 있는 가장 귀한 자산은 아웃카운트 27개다.

1960~80년대 메이저리그 볼티모어를 이끈 얼 위버 감독(1930~2013)이 남긴 말입니다. 이 말 앞에 덧붙는 말이 그 유명한 "한 점을 얻으려고 공격하면 한 점밖에 못 얻는다"는 겁니다. 우리가 희생번트를 문제 삼는 건 가장 소중한 자원인 아웃 카운트 하나를 상대팀에게 '헌납'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원하지 않았는데 아웃 카운트 두 개를 헌납하는 병살타는 어떨까요? 2010~2012년 프로야구에서(게을러 지난해 자료는 아직 계산을 못해서 -_-;;)  병살타 하나는 0.780점을 줄입니다. 거의 나오지 않는 삼중살을 제외하면 어떤 플레이도 이만큼 기대 득점을 줄이지 않습니다. 여기 비하면 희생번트(-0.017점)는 애교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건 이렇게 계산하는 겁니다. 병살타(희생번트)가 나오기 전하고 똑같은 상황에서 나온 모든 득점(A)을 더합니다. 그 다음 병살타(희생번트)가 나온 다음 몇 점이나 얻었는지(B)를 계산합니다. A에서 B를 빼고 횟수로 나누면 병살타(희생번트)가 점수를 얼마나 줄이는지 알 수 있습니다. 도움이 되는 플레이는 물론 몇 점을 더했는지도 알 수 있지요. 이렇게 해보면 병살타가 희생번트보다 기대득점을 46배나 줄인다는 결과가 나옵니다.

가장 축복받은 한화 이글스


그러니까 이 ㅍㅍㅅㅅ 페이스북 포스트 설명과는 달리 희생번트보다는 병살타가 "팀 득점을 가장 낮추는 주범"인 겁니다. 23일 경기 전까지 100번(1위)이나 '축복'을 받은 한화가 이 타고투저 시즌에 유일하게 4점대(4.99점) 팀 득점을 기록하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고요. 한화는 지난해에도 140번(역시 1위)이나 축복을 받았는데 역시나 유일하게 400점대 득점(480점)으로 시즌을 마쳤습니다.

심지어 한화는 지난해 병살타가 나올 수 있는 상황에 가장 많이 처했던 팀도 아니었습니다. 무사 또는 1사 주자 1루 등 병살타 찬스(?)에서 한화 타자들은 1162타석(4위)에 들어섰는데 이 중 12.0%(당연히 1위)를 병살타로 연결했습니다. 이는 나머지 8개 구단 평균(8.6%)보다 39.6% 높은 비율입니다. 그러니까 어떤 이유로든 병살타를 더 많이 치는 팀이 따로 있기는 있다는 말씀입니다.


숫자도 희생번트보다 병살타가 더 많다.

또 예전에 '야왕'의 한화가 병살타가 적은 이유에서 설명한 것처럼 병살타를 줄일 수 있는 수단이 희생번트뿐인 것도 아닙니다. 홈런을 치면 주자가 사라지기 때문에 병살타 위험이 아예 줄어들고, (연속) 삼진을 당해 2아웃이 돼도 병살타를 칠 수 없습니다. 도루도 병살 위험을 없앱니다. LG 김무관 코치가 정의윤하고 했다는 병살타 막는 훈련 역시 '결과적'으로 병살타를 줄이는 훈련이었던 셈입니다. 그저 공을 잘 칠 수 있게 타격 자세를 바로잡는 훈련이었으니까요.

정의윤이 공을 찍어누르며 타격하는 버릇이 있고 임팩트 순간 어깨가 일찍 열리는 자세를 고치고 있는 것입니다.

게다가 지난해 병살타 가능 상황에서 병살타가 9.0%(910개) 나오는 동안 희생번트가 차지한 비율은 5.4%(549개)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올해는 다르지 않냐고요? 전반기까지 병살타 우려 상황(6678타석)에서 희생번트가 나온 건 382번(5.7%)였습니다. 진짜 병살타가 나온 건 8.6%(574번)였고 말입니다.

물론 병살타는 '자연발생적' 산물이고, 희생번트는 감독이 의도한 결과입니다. 그런데 희생번트가 기대 득점을 줄이는 건 틀림없는 사실이지만 그게 병살타하고 동급으로 취급할 정도는 아닙니다. 그러니 병살타가 나오지 않은 91% 상황에서 나머지 5%마저 아웃 카운트 하나를 헌납한 것을 비판할 수는 있지만 여전히 '희생번트를 대느니 병살타가 낫다'고 말할 수는 없는 겁니다. 생각만큼 병살이 많지 않으니 강공을 하라고 주문하는 게 옳은 일이죠. 


병살타에 대한 예의

결국 병살타를 그 차제로 '옹호'할 수는 없는 겁니다. 병살타는 분명 마이너스(-)입니다. 다만 그 선수도 치고 싶어서 병살타를 치는 건 아닐 테고, 주자가 없었다면 평범한 땅볼이 됐을 타구가 병살타로 남았으니 억울하다는 점은 인정해줄 수 있을 겁니다. 또 병살타를 치지 않은 타석에서 활약한 것도 인정해줄 수 있을 테고요.

위 영상에서 빅터 마르티네스(디트로이트)는 이날 네 번째 타석에 들어서 이날 네 번째 더블 플레이 타구를 때렸습니다. (이 타구는 직선타였기에 병살타는 아니었습니다.) 그래도 캐스트도 어이없다는 듯 웃고, 선수도 웃으며 들어갑니다. '오늘은 날이 아니었나' 정도로 이해하고 넘어가는 장면일 겁니다. 이게 우리가 병살타에 대해 용납할 수 있는 최대치 아닐까요? 가장 귀한 자산을 두 개나 날리는 플레이에 이 정도면 충분한 호의일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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