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14일) 프란치스코 교황은 꿈을 두 개 이뤘습니다. 오래 전부터 방문하고 싶다던 한국 땅에 내린 게 첫 번째, 추기경 시절 정회원 자격으로 응원하던 CA 산로렌소가 우승한 게 두 번째입니다. 산소렌소는 이날 남미 최강 축구 클럽을 가리는 리베르타도레스컵 결승 2차전에서 나시오날(파라과이)을 1-0으로 눌렀습니다. 1차전에서 1-1 무승부를 기록했던 산 로렌소는 이로써 1908년 창단 후 106년 만에 처음으로 이 대회 우승을 차지하게 됐습니다.
물론 교황께서 산로렌소를 응원하는 건 고향 부에노스아이레스, 그 중에서도 플로레스 지역 연고팀이기 때문입니다. 교황은 어릴 때 축구 이야기를 나누다 흥분해 교실 바깥으로 나가 공을 찰 정도 열혈 축구광이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자연스레 고향 팀을 응원하게 된 거죠. 평발인 데다 스무살 때 폐 수술을 받아 어릴 때처럼 공을 찰 수는 없게 됐지만 축구에 대한 열정은 변하지 않았습니다.
흥미로운 건 이 팀 이름이 로렌소 마사 신부(神父) 이름에서 유래했다는 겁니다. 길거리 축구가 유행하던 지역에 버스와 트램 노선이 들어서면서 아이들이 마음껏 축구를 즐기기가 어렵게 됐습니다. 이에 로렌소 신부는 성당 뒤뜰에서 이들이 축구를 할 수 있도록 배려했습니다. 그는 결국 1908년 제대로 팀을 창단했는데, 이 팀이 훗날 아르헨티나 리그에서 14번 정상에 오른 산로렌소가 된 겁니다.
산로렌소 구단에서도 교황이 자기 팀 열혈 팬이라는 걸 알고 있습니다. 구단은 호르헤 마리오 베르고글리오 추기경이 교황으로 추대되자 그의 회원 번호 88235번을 영구 결번하며 예를 갖췄습니다. 교황은 미사를 집전하며 "신자는 세상의 빛이 되어야 한다. 로마의 올림픽 스타디움이나 부에노스아이레스에 있는 산 로렌소 경기장처럼 환한 빛을 밝혀야 한다"면서 이에 화답했습니다.
교황에게 축구는 그저 자신만 즐기는 '놀이'가 아닙니다. 교황은 2000여 명의 사상자를 낸 이스라엘과 팔레스탄 간 무력 분쟁 중단을 요구하는 '평화를 위한 축구 대회'를 공동 주최할 계획입니다. 이 대회에는 같은 나리 출신 디에고 마라도나(54), 리오넬 메시(27)는 물론 로베르토 바조(47)·안드레아 피를로(41·이상 이탈리아)·지네딘 지단(44·프랑스)·사무엘 에투(33·카메룬) 등이 참가할 예정입니다. 교황은 직접 이 전·현직 축구 선수들에게 전화를 걸어 참가해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물론 교황이 축구만 편애하는 것도 아닙니다. 젊은이들에게 늘 꿈과 희망을 강조하는 그에게 운동 선수라고 예외일 리는 없는 법. 교황은 이탈리아 체육위원회 창립 70년을 맞아 바티칸 광장에 모인 젊은 선수들에게 "스포츠는 도전이다. 인생에서도 적당히 타협하고 안주하는 게 아니라, 승리를 향해 도전하라"고 강조했습니다. 이어 "스포츠는 우리에게 수용(受容)이 무엇인지를 일깨운다"면서 "같은 유니폼을 입고 뛰면서 팀의 구성원으로로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배우라"고 조언하기도 했습니다.
학창 시절 체육 시간에 배운 이론을 떠올려 보면 체육이나 운동 같은 개념과 스포츠를 구분하는 가장 큰 기준은 '경쟁'과 '유희'입니다. 즐겁게 경쟁하며 인종 언어 문화 등이 서로 다른 이들끼리 서로를 이해하는 수단이 바로 스포츠겠죠. 교황 말씀 한 마디 한 마디를 다들 자기 좋은 대로 풀이하는 현실에 숟가락을 얹는 것 같지만, 스포츠를 업(業)으로 삼고 있는 한 사람으로서 교황 방한을 맞아 우리가 서로를 더 잘 이해하는 수단으로 스포츠가 기능하기를 꿈꿔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