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는 스포츠가 공용어입니다.


❝스포츠에서 유일한 것이 승리라면 이기는 그 순간 다시 경합을 벌여야겠다는 욕구는 사라질 것이다. 그렇다면 마이클 조던과 로저 클레멘스가 나이 마흔에 계속 경쟁을 벌였던 사실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 '소크라테스 야구장에 가다' 中에서


Q1. 한국 최고 핸드볼 무대 SK핸드볼코리아리그 올 시즌 남자부 우승팀은?

정답은 '웰컴론코로사'입니다. 이 팀 이름에도 프로야구 넥센처럼 '네이밍 스폰서십'이 들어 있습니다. 많은 분들이 케이블TV서 '전화단박대출' 광고를 보셨을 웰컴론은 대부(중계)업체이고, 코로사는 독일에서 장미 육종을 수입해 화훼농가에 파는 작은(얼마나 작은지는 조금 뒤에…) 회사입니다.

이 팀을 만든 건 코로사 정명헌 대표(54). 중학교 때 처음 핸드볼을 접한 그는 한국외국어대를 졸업하고 독일 유학을 거치면서 열혈 핸드볼 팬이 됐습니다. 그는 독일 슈투트가르트대 유학 시절에는 4부 리그 선수로 뛰기도 했습니다.

1998년 코로사를 창업한 정 대표는 3년이 지나 회사가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아 "일하며 운동하는" 핸드볼 클럽팀을 만들자며 대학 졸업반 선수를 데려와 이 팀을 만들었습니다. 핸드볼 선수 출신 직원 한 명이 입사했는데 "동료들이 갈 곳이 없다"고 하소연하는 걸 들은 직후였죠.

그러다 2009년 돈 문제로 더 이상 팀을 꾸려가기 어렵게 되자 후원자를 찾아 나섰고 결국 웰컴론하고 네이빙 스폰서 계약을 맺었습니다. 웰컴론은 팀 이름 앞에 자기들 이름을 쓰는 대가로 연간 7억5000만 원을 후원하기로 했습니다. 여기에 전국체육대회(전국체전) 때 경남 대표로 뛰는 조건으로 경남체육회에서도 2억5000만 원을 받고 있습니다. (비인기 종목 선수들에게 전국체전이 어떤 의미인지 알고 싶으시면 이 링크 클릭.)


Q2. 듣자 하니 이 팀 선수단이 정 대표를 비판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던데요?

네, 맞습니다. 맨 위 사진이 그 장면입니다. 장인익 감독(47‥서 있는 사람)을 비롯한 이 팀 선수단은 28일 서울 성북구 한 식당에서 기자 회견을 열고 "정 대표 밑에서는 운동할 수 없다"고 주장하고 나섰습니다. (사실 이날 정 대표가 자기 동의 없이 기자회견을 연다고 해임했으니 장 전 감독이 맡겠네요.) 장 감독은 "개인적으로 정 대표가 어려운 가운데서도 팀을 운영해 왔다는 것 안다. 스스로 창단했다는 것 자체가 놀라운 일이다. 그런데 돈 문제를 투명하게 하지 않는다"고 주장했습니다.

이어 "기자회견을 하려고 하자 27일 느닷없이 밀린 급여가 입금됐다. 25일 기자회견에서는 고액 연봉자를 줄이겠다고 해놓고 어제(27일)는 다시 안고 가겠다고 하더라. 스폰서도 구했다고 한다. 이렇게 말을 다르게 하니 믿음이 가지 않는다"라고 말했습니다.

골키퍼 용민호(27) 역시 "두 달 월급이 밀려 있다. 월급 달라고 하면 회사가 어려우니 조금만 기다려달라고 한 것이 8개월이 넘었다. 웰컴론에서 (자금 집행을) 다 해줬다고 하는데 왜 나오지 않는지 모르겠다"며 서운한 감정을 드러냈습니다.

이에 앞서 정 대표는 25일 기자회견을 열고 "웰컴론의 후원 중단으로 해체 위기에 빠진 팀을 구해달라"고 호소했습니다. 이 자리에 선수단도 함께 하기로 했다가 참석하지 않으면서 내분설이 처음 불거져 나왔습니다. 웰컴론하고 코로사가 맺은 후원 계약이 내년 2월에 끝나는데, 웰컴론은 8월에 이미 더 이상 후원하지 않겠다고 밝힌 상황입니다. 이 사실을 정 대표가 선수단에 숨겨오다 최근에야 알리면서 문제가 커진 겁니다.


Q3. 그럼 이 팀에서 몸값이 가장 많은 선수는 얼마나 받을까요?

국내 남자 핸드볼 선수들 평균 연봉은 4000만 원 안팎. 2000만 원이 안 되는 선수도 많습니다. 그런데 이 팀 정수영(29)은 2012년 4년간 계약하면서 계약금을 포함해 4억5000만 원에 도장을 찍었습니다. (실업팀 선수가 연봉 1억 원이 넘는 건 드물지만 놀랄 만한 일은 아닙니다. 정구 국가대표 김동훈도 소속팀 문경시청에서 계약금으로 1억 원을 받았습니다.)

이 쯤 되면 코로사가 돈이 많은 회사라고 생각하실 수도 있을 터. 그런데 코로사는 사실 직원이 정 대표를 비롯해 강원 원주시 문막 농장 직원까지 7명이 전부입니다. 1년 매출 18억 원에, 순이익 7억 원 정도 되는 회사입니다. 이 회사에 일반 직원으로 취업한 강원대 골키퍼 출신 김은수 씨(23)는 "와서 깜짝 놀랐다. 핸드볼 팀을 갖고 있어 회사가 큰 줄 알았다. 사장님이 정말 대단한 분인 것 같다"고 전했습니다.

이렇게 작은 회사가 1년에 14억 원 정도를 들여 핸드볼 구단을 운영하려니 해마다 적자가 나는 게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웰컴론이 네이밍 스폰서로 나선 2009년 이전까지 이 팀 선수들은 낮에는 영업사원으로 뛰면서 회사 살림에 힘을 보태야 했습니다. 처음 시작할 때 내세운 롤 모델과는 달리(?) 일을 하지 않으면 운동도 할 수 없는 분위기였던 겁니다.

정 대표는 "주위 사람들로부터 '미쳤다'는 소리를 자주 듣는다"며 "팀 운영비 때문에 은행 대출을 한두 번 받은 게 아니다. 내가 사는 아파트도 담보로 잡혀 있다. 아직도 남은 빚이 13억 원"이라고 말했습니다. 국내 남자 핸드볼 5개 팀 중 클럽팀(실업팀)은 두산과 웰컴론코로사뿐입니다. 나머지는 군 팀 상무와 지방자치단체에서 만든 인천도시공사하고 충남체육회 즉 전국체전용 팀입니다.


Q4. 웰컴론이 후원을 중단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당연히 기대만큼 홍보효과가 나오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4년에 한 번만 핸드볼 팬이 되는 데다 그마저 국가대표 경기, 그것도 메달 색깔에만 관심이 있는 게 사실이니까요. 그마저 남자보다는 여자 경기에 더 관심을 갖습니다. 이러니 올해는 13억5000만 원까지 오른 후원금을 낼 필요와 이유를 느끼지 못했던 겁니다.  

여기에 프로배구 OK저축은행(옛 러시앤캐시)이 잘 나가는 것도 배를 아프게 했습니다. 최윤 러시앤캐시 회장과 장세영 웰컴론 회장은 대부업계에서 유명한 라이벌(앙숙) 사이라고 합니다. 게다가 때마침 우리카드도 매물로 나와 있는 상황. 웰컴론에서 명분은 좋지만 실리를 얻기 힘든 핸드볼 팀을 후원하는 대신 직접 배구 팀을 인수하기로 했다는 소문이 배구계에 널리 퍼진 상황입니다.

프로배구 남자팀을 운영하려면 1년에 최대 70억 원 정도가 듭니다. 하지만 홍보효과는 그 이상이죠. 평소에 핸드볼 경기 결과는 단신으로 처리하는 게 보통이지만 배구는 다르니까요. OK저축은행이 생기면서 진입 장벽도 많이 낮아졌습니다. 현재 분위기라면 우리카드는 한국배구연맹(KOVO) 관리 구단으로 가거나 팀을 해체 해야 하는 상황인데 웰컴론이 거들어 준다면 나쁠 게 없죠.

아예 팀을 새로 창단한다는 말도 들립니다. 현대 대학교 1, 3학년 선수 중에 대어가 많습니다. OK저축은행이 경기대 3인방을 싹쓸이 해 창단 2년 만에 정상권으로 발돋움한 것처럼 웰컴론 역시 단박에 명문 팀으로 올라설 수 있는 기회가 오고 있는 겁니다. 팀이 늘어나는 것 역시 KOVO에서도 환영할 만한 일이죠. 이렇게 되면 프로야구처럼 연전(시리즈)으로 경기 일정도 짤 수 있게 됩니다.


Q5. 그렇다면 코로사 그리고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일단 대한핸드볼협회는 "코로사의 구단과 선수단의 갈등이 심각하다고 판단해 조속한 분쟁 해결을 위해 핸드볼실업선수관리규칙 12조3항에 의거해 분쟁조정위원회를 소집하겠다"고 밝혔습니다. 하지만 딱히 '돈 줄'을 찾지 못하면, 그러니까 스폰서 혹은 인수자를 구하지 못하면 코로사가 해체하는 게 당연한 수순처럼 보이는 상황입니다.

그런데 어떤 회사에서 이 팀을 후원한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요? 냉정하게 따져 보면 비인기 종목을 후원한다는 명분이야 있겠지만 사실 어떤 효용을 누릴 수 있을지 불투명한 상황입니다. 실리야 어찌됐든 명분을 노릴 수 있는 업체라면 웰컴론 이상을 기대하기 힘들 겁니다. 대부업체만큼 이런 브랜드 관리가 필요한 업체를 찾기가 쉽지 않은 게 현실이라고 생각한다는 말씀입니다.

한편으로는 이런 생각도 해봅니다. "그래도 핸드볼"이기에 이 사태가 이 정도라도 언론에 나오는 게 아닐까. 얼마나 많은 선수(또는 지도자)가 이렇게 경제적 어려움을 이겨내지 못하고 운동을 접었을까. 그렇다면 우리는 모든 스포츠를 후원해야 하는 걸까. 아니, 거창하게 이야기하면 모든 꿈을 언제든 존중받아야 하는 걸까. 끝내 대답을 찾지 못한 채 서둘러 글을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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