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는 스포츠가 공용어입니다.


❝스포츠에서 유일한 것이 승리라면 이기는 그 순간 다시 경합을 벌여야겠다는 욕구는 사라질 것이다. 그렇다면 마이클 조던과 로저 클레멘스가 나이 마흔에 계속 경쟁을 벌였던 사실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 '소크라테스 야구장에 가다' 中에서


국회사무처에서 100명에 육박하는 현역 의원들에게 영리 업무에 종사하거나 겸직을 하면 안 된다고 통보했습니다. 이 소식을 전한 연합뉴스 정치부발 기사마저 "국회의원 체육단체장 겸직 전면금지…100여명에 통보"라고 붙인 걸 보면 국회의원들이 가장 겸직을 많이 하고 있는 자리가 체육단체장인가 봅니다. 관련 기사에서는 "특히 체육단체장에 대해서는 원천적으로 겸직하지 못하도록 했다"고 못 박고 있습니다.

의정 활동에 지장을 초래할 수 있는 자리를 기본적으로 겸직 금지 대상으로 판단했으며, 특히 체육단체장에 대해서는 원천적으로 겸직하지 못하도록 했다.
 
그런데 모든 의원이 겸직 금지 대상에 포함된 건 아닙니다. "윤리심사자문위는 다만 의정 활동에 상대적으로 영향이 적거나 국가적 의미가 있는 직에 대해서는 겸직을 허용했다"고 합니다. 문대성 의원(38·새누리당)은 계속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선수위원을 겸직할 수 있고 (서울시장 출마로 현재 의원 신분이 아니지만) 정몽준 전 의원(63·새누리당)도 대한축구협회 회장·국제축구연맹(FIFA) 부회장을 겸직할 수 있습니다.

여기 바로 딜레마가 있습니다. 한국 스포츠가 철저하게 정치 의존적으로 굴러가기 때문입니다. 한국 최고 인기 스포츠라는 프로야구를 총괄하는 한국야구위원회(KBO)조차 '정치권 낙하산 인사'에서 자유로운 게 얼마 되지 않습니다. 2006~2008년 KBO 총재를 지낸 신상우 씨는 노무현 대통령의 멘토로 불렸던 분이죠. 그렇다고 부끄러울 건 없습니다. 세계 어떤 나라나 마찬가지일 테니까요. 정치가 스포츠를 이용하고, 스포츠가 정치(인)를 이용하는 먹이사슬 말입니다. 누이 좋고 매부 좋고, 도랑 치고 가재 잡는 격이지요.

소위 비인기 종목은 정치인 힘을 빌리지 않으면 돈 나올 구멍을 찾기가 쉽지 않습니다. 겨울올림픽 때 컬링은 지상파에서 동시 생중계를 할 정도로 인기를 끌었지만 요즘 경북 의성컬링센터에서 전국컬링대회가 열리고 있다는 건 알고 계신가요? 올해 핸드볼코리아리그 남녀부 우승팀은 어디인지 아시나요? 여름·겨울 종목 최고 '우생순'조차 사정이 이렇습니다. 그런데 정치력마저 빼면 어떻게 될까요?

또 각종 '민원'을 해결하려고 해도 정치력이 필요합니다. 이상적으로야 모든 일이 원칙과 순리에 따라 풀리면 좋겠지만 어느 분야가 그렇겠습니까. 특히 정규재 한국경제 논설위원실장 지적처럼 한국은 "연고(nepotism)라는 낡은 소속감 없이는 돌아가지 않는 낮은 단계의 사회"인 것을요.

그래서 기업이 종목을 하나씩 책임지기도 합니다. 대한조정협회는 23일 최진식 ㈜SIMPAC 대표이사 회장(56)을 제14대 회장으로 뽑았는데요, 이는 'STX 시대' 종말을 뜻합니다. 그 전에는 2대에 걸쳐 STX 그룹 계열사 임원이 조정협회장을 맡았습니다. 회사가 어려워지니 조정이라는 종목을 내려놓은 거죠. 어떤 종목하면 어떤 회사가 떠오르는 게 우연은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지방자치단체도 세금 들여 자선사업 하느라 비인기 종목 실업 팀을 운영하는 게 아니고 말입니다.

이게 한국 스포츠가 굴러가는 방식입니다. 최선은 아니죠. 더 나은 방식이 분명 있을 겁니다. 그러나 최악뿐 아니라 최선 역시 선(善)의 적(敵)입니다.

선(善)의 반대는 악(惡)이 되겠지요. 그런데 선의 적(敵)은 무엇이 되겠습니까. 그것은 최악과 동시에 최선입니다. 순수, 완전, 무오류, 신성(神性) 등 최선의 깨끗한 논리야 말로 최악과 가장 친하고 가장 가까운 맹우(盟友)입니다.
 
연합뉴스에서는 이번 겸직 금지를 "세월호 참사를 계기로 기본과 원칙이 강조되는 사회 분위기 속에서 국회의원들의 이른바 '특권 내려놓기'를 강제하는 측면이 있(다)"고 분석했습니다. 이 조치는 기본과 원칙이라는 이름으로 최선을 강요하고 있을 뿐 현실을 너무 도외시했습니다. 정말 이대로 겸직을 금지하면 난리라는 종목이 한 두 개가 아닐 겁니다. 배구마저 임태희 전 대통령 비서실장을 놓아주고 있지 못한 상황이니 말입니다.

한국 사회에는 도덕을 이야기하는 사람을 높게 평가하고 직접 손에 피를 묻혀가며 일하는 이들은 폄하하는 문화가 뿌리내린 측면이 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어쩌면 우리는 실제로는 누구도 지키지 힘든 기준을 높다랗게 걸어놓고 왜 이렇게 좋은 걸 지키지 않느냐며 '한 놈만 걸리라'고 기다리고 있는지 모릅니다. 종갓집 제사상이 그 모양이 되고도 여전히 감 놔라 배 놔라 하는 어르신들이 계신 것과 이번 조치가 닮지 않은 듯 닮았다는 느낌이 드는 건 아마 그런 까닭 때문일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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