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 김일경은 뛴다. 공수교대 때 김일경만큼 열심히 뛰어 다니는 선수를 찾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자신에게 찾아온 기회를 꼭 잡고 말겠다는 의지가 엿보이는 힘찬 발걸음. 그렇게 10년만에 주전이 되기 위해 김일경은 죽을힘을 다해서 뛰고 또 뛴다.
김일경은 경동고를 졸업하고 1997년 2차 드래프트 전체 16번으로 현대에 지명됐다. 하지만 믿을 만한 내야 자원이 부족한 현대에서도 그의 자리는 좀처럼 생기지 않았다. 통산 타율 .231의 선수에겐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를 일이다. 어느 틈엔가 현대 팬들은 그를 '김 코치'라는 별명으로 부르기 시작했다.
올해 역시 시작은 2군이었다. 그러나 주전 2루수로 낙점됐던 채종국은 15일까지 1할대 타율(.182)에 허덕였고 실책 역시 세 개나 저질렀다. 현대 김시진 감독은 과감히 김일경을 1군에 올리고 곧바로 스타팅 라인업에 포함시켰다. 그렇게 2군 9경기에서 .381의 고감도 타율을 자랑하던 김일경은 만 2년 만에 1군 무대를 밟을 수 있었다.
출발은 좋지 못했다. 번트 수비 과정에서 1루수 이숭용이 던진 평범한 송구를 뒤로 빠뜨리며 실점의 빌미를 제공했던 것. 반면 타석에서는 4타수 3안타 1타점을 몰아치며 자신이 새로운 2루의 주인이 될 수 있음을 알렸다. 이후 11경기 연속 그는 현대의 스타팅 2루수 자리를 내놓지 않고 있다.
사실 현대는 이번 시즌에도 고질적인 내야 수비 불안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채 개막을 맞이했다. 서한규는 박진만의 공백을 메울 만한 유격수 자원이 결코 못 되며, 강정호 지석훈 차화준 등 신인급 선수들 성장은 더디기만 했다. 2루 터줏대감 채종국도 포구와 송구는 비교적 안정적이지만 수비 범위는 결코 후한 점수를 주기가 어려웠다. 타격에서는 별 도움이 못 되는 선수들이라는 점에서 문제는 더욱 심각했다.
김일경의 타율 .259가 반갑게 느껴지는 것 그런 까닭. 그리 높은 타율은 아니지만 이번 시즌 현대에서 2루수로 출장했던 그 어떤 선수도 이보다 높은 타율을 기록하지는 못했다. 리그 전체를 봐도 박현승(.347)을 제외하면 타격에서 이 정도 성적을 거둔 2루수를 찾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리그 최악 수준이었던 2루수 자리를 평균 정도로는 채워주고 있다는 얘기다.
수비는 점차 안정돼 가고 있지만 아직 100% 완벽한 상태는 아니다. 실책은 1개뿐이지만 더러 손쉬운 타구의 바운드를 놓치거나 낙구 위치 판단에 있어 실수를 저지르는 모습이 발견되고는 한다. 그래도 역시 팀에 손해를 끼칠 정도의 수비는 절대 아니다. 채종국보다는 확실히 '업그레이드'라고 해도 좋을 정도.
김일경은 올해 우리 나이로 서른 살을 맞이했다. 남자 나이 서른은 홀로서기를 완성해야 할 때. 공자님도 이립(而立)이라는 낱말로 서른을 표현했다. 이 의미에 가장 잘 맞는 서른을 보내고 있는 선수가 바로 김일경이다.
아직은 걸어온 길보다 걸어가야 할 길이 더 멀다. 그러나 스파이크 소리가 들릴 정도로 열심히 뛰고, 내야 땅볼에 1루 슬라이딩도 마다하지 않는 그의 열정만큼은 분명 높게 사고 싶다. 꿈과 청춘이 멀어지는 나이 서른, 하지만 김일경의 서른은 오히려 그 청춘과 꿈을 쟁취하는 열정으로 가득찬 너무도 근사한 시간이기 때문이다.
야구팬들 사이에 '현대렐라'라는 낱말이 쓰인다. 현대 소속의 중고 신인이 신데렐라처럼 등장해 새로운 스타로 등장하는 상황을 나타내는 낱말이다. 2005 시즌 황두성, 정수성이 그랬고 지난 시즌에는 박준수, 이택근이 그 주인공이었다. 올 시즌은 김일경의 열정이 그를 주인공으로 만들어 주길 희망해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