퀴즈 하나: 장비만 보고 아마추어와 프로 복서를 구분하는 가장 빠른 길은 뭘까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가장 눈에 띄는 건 단연 '헤드기어.' 그런데 올해 전국체육대회부터 성인 남자 선수들은 이 헤드기어를 쓰지 않게 됐습니다. 29년 만의 일입니다.
사실 국제아마추어복싱협회(AIBA)는 지난해 6월 모든 국제 대회에서 헤드기어를 쓰지 못하도록 결정했습니다. 한국 아마 복싱은 1년을 준비 시간으로 보내고 이번 체전부터 이 제도를 적용한 겁니다. 여자 선수나 주니어 선수는 이 규정을 적용받지 않기 때문에 이시영(사진 왼쪽)은 앞으로도 계속 헤드기어를 쓰고 경기를 치릅니다.
아마추어 선수들이 헤드기어를 쓰게 된 건 1984년 로스앤젤레스 올림픽 때부터였습니다. 1982년 프로복서 김득구가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레이 맨시니와 세계권투협회(WBA) 라이트급 타이틀전을 치르다 숨진 사건이 계기가 됐습니다.
문제는 아마추어 인기가 예전만 못하다는 것. 한때 '올림픽 퇴출설'이 나돌 정도였습니다. AIBA는 헤드기어를 벗으면 선수들 표정이 더 잘 보여 인기를 끄는 데 도움이 될 것으로 판단했습니다. 헤드기어를 벗으면 KO가 늘어날 거고 그러면 흥행도 더 잘 될 것이라는 분석도 나오지만 AIBA는 이는 사실과 다르다고 했습니다. AIBA는 "옛날과 달리 요즘 글러브는 충격 흡수력이 높기 때문에 헤드기어를 벗는다고 KO가 늘어나지 않는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러면서 "부상을 막으려고 헤드기어를 벗는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AIBA에서는 복서 1만5000명이 치른 7353라운드 경기를 분석한 결과 헤드기어를 쓴 선수가 뇌진탕을 일으킬 확률(0.38%)이 맨 머리인 경우(0.17%)보다 2.24배 높았다는 거죠. 한국 복싱 국가대표팀 이옥성 코치 역시 연합뉴스 인터뷰에서 "헤드기어가 머리를 꽉 싸매고 있으면 충격으로 인한 열기가 머리에서 빠져나가지 못해 뇌에 오히려 악영향을 줄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헤드기어는 양쪽 뺨을 보호하지 못하기 때문에 카운터 펀치가 날아오는 턱을 보호할 수 없습니다. 또 헤드기어를 쓰면 시야가 좁아져서 카운터 펀치를 피하기 어렵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헤드기어 없이 치른 체전 첫 경기에서 승리한 이화진(한국외국어대)도 "헤드기어를 벗으니 시야가 넓어지고 상대 표정이 잘 보이니까 더 박진감 있는 경기를 할 수 있었다"고 전했습니다.
한국에서는 복싱 인기가 많이 죽었지만 미국에서는 플로이드 메이웨더 주니어(36)가 지난 1년 동안 9000만 달러(1005억 원)를 벌어 스포츠 스타 수입 1위에 오를 만큼 인기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젊은 선수들이 복싱을 기피하는 건 마찬가지. 과연 이 규칙 변화로 복싱이 새 붐을 일으킬 수 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