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야구 넥센 안태영(28·사진)은 27일 대구에서 데뷔 후 첫 번째 1군 타석에 들어섰습니다. 땅볼을 친 뒤 1루로 전력질주해 머리부터 슬라이딩. 결과는 세이프였습니다. 안태영은 "근성을 보여주고 싶었다. 행복했다"고 그 순간을 회상합니다. 그는 이 경기에서 홈런을 포함해 4타수 4안타를 쳤습니다. 28일 경기에서도 삼진 하나를 먹었지만 3타수 2안타로 선방했죠. 넥센 염경엽 감독은 그에게 1루 수비를 시켜 박병호의 체력 부담을 덜어준다는 방침입니다.
안태영은 "3년 전, 아니 2년 반 전만해도 다시 야구를 한다는 생각은 해 본 적이 없다"고 말합니다. 그는 2004년 드래프트 때 전체 52순위로 삼성에 뽑혔던 투수 출신. 186㎝, 92㎏으로 신체 조건도 좋았습니다. 문제는 원하는 곳에 공을 던지지 못하는 '스티브 블래스 신드롬'이 찾아왔다는 것. "정말 이유를 몰라 너무 답답했다. 앞길이 너무 캄캄했다"던 그는 하릴없이 이듬해 타자로 전향합니다. 구단은 기다려주지 않았죠. 결과는 방출.
군 문제부터 해결하겠다며 훈련소로 향하던 길, 그는 "두 번 다시는 야구 생각을 하지 않겠다"고 다짐합니다. 하지만 제대 후 찾아온 '야구 앓이'는 어쩔 수 없었습니다. 자기도 모르게 TV 중계 화면을 보고, 표를 끊고 야구장을 찾기도 여러 번. '왜 나는 저기 못 있을까' 깊은 고민에 잠겼습니다. 그는 그 길로 사회인 야구팀을 찾아 몸을 만들면서 기회를 기다렸습니다. 돈 문제는 헬스 트레이너, 막노동으로 해결하면서 말입니다.
안태영에게 '패자부활전' 기회가 찾아온 건 2011년말 독립구단 고양 원더스 창단. 그는 트라이아웃을 통과하면서 6년 만에 다시 야구 유니폼을 입게 됐습니다. 안태영은 "사실 트라이웃 때 타구가 잘 안 날아가 합격을 기대하지 않고 있었다. 그런데 뜻밖에 합격소식을 들었다"며 "인생을 포기한 순간 날아온 합격통지서 같았다"고 말했습니다. 그때부터 목표가 생겼습니다. '안태영'이라는 이름 석자가 달린 유니폼을 입고 1군 경기장에 서는 것.
고양 원더스에서 안태영은 아침 7시부터 14시간 동안 특타만 할 정도로 연습에 매달리고 또 매달렸습니다. "방망이가 정말 보기 싫어질 정도였다"는 게 그 시절의 기억. 김성근 고양 원더스 감독은 그를 3시간 동안 배팅케이지 안에 세워두기도 했습니다. 몸이 알아서 반응하도록 훈련을 시키려던 것이었죠. 결국 안태영은 지난해 퓨처스리그(2군) 교류경기에서 타율 .333, 5홈런, 28타점을 기록하며 가능성을 알렸습니다. 지난해 8월 넥센이 그를 선택하면서 그는 고양 원더스 출신 네 번째 프로 선수가 됐습니다.
그리고 가혹하기로 유명한 강진 생활이 이어졌습니다. 그의 룸메이트는 바로 문우람. 안태영은 "곧잘 침대에 누워 둘이 1군에서 같이 뛰면 어떤 기분일까 상상하곤 했다"면서 "우람이가 1군에 올라간 뒤 안타를 치면 어떤 공을 어떻게 쳤는지 알려달라고 많이 졸랐다. 하루라도 빨리 그 공을 때려보고 싶었기 때문"이라고 말했습니다. 이어 "옆방을 쓰시는 강병식 (넥센 2군) 타격 코치님 덕에 변화구 적응 요령을 터득할 수 있었다"며 고마움을 표시했습니다.
나폴레옹은 "꿈을 이루면 나는 다시 누군가의 꿈이 된다"고 했습니다. 안태영에게 꿈을 준 이는 삼성 이승엽. 그는 "이승엽 선배가 내 우상이다. 이승엽 선배가 홈런을 펑펑 날리는 장면을 아직도 잊지 못하고 있다"며 "이승엽 선배도 투수에서 타자로 성공했다는 걸 떠올리며 다시 도전했다"고 말했습니다. 한국 사회는 유독 패자부활전 기회에 인색합니다. 안태영 역시 누군가에게 꿈이 되는 '원더델라'가 되기를 저 역시 꿈꿔봅니다. 가장 간절한 자가 웃는 세상이 아름다운 세상이라고 믿는 까닭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