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는 스포츠가 공용어입니다.


❝스포츠에서 유일한 것이 승리라면 이기는 그 순간 다시 경합을 벌여야겠다는 욕구는 사라질 것이다. 그렇다면 마이클 조던과 로저 클레멘스가 나이 마흔에 계속 경쟁을 벌였던 사실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 '소크라테스 야구장에 가다' 中에서

박근영 심판 오심 사태 이후 첫 경기를 이겼더라면 좋았을 텐데 4-5로 추격한 9회초 1사 만루에서 강정호가 병살타를 치면서 또 지고 말았습니다. 그래서인지 아직도 '어떻게 그런 판정을 내릴 수 있었을까'하는 분노가 가슴에서 치솟아 올라옵니다. 아무리 고의가 아니었다고 해도 어떻게 그럴 수 있었을까요.


사실 15일 경기에서 오심이 나오고 나서 저는 1983년 김진영 감독님(위 사진) 퇴장 사건이 떠올랐습니다. (물론 제가 그 경기 본 걸 기억할 리는 없고 나중에 언론을 통해 접한 겁니다. 누구처럼 초등학교 때 봤던 일을 취재 현장에서 본 것처럼 떠들 배짱은 저한테 없으니까요.)

프로 원년이던 1982년 삼미는 80경기를 치르면서 단 15승(승률 .180)을 거둔 최약체였습니다. 그러나 1983년은 달랐습니다. 국가대표 에이스 임호균, 그와 배터리를 이뤘던 김진우가 입단했고 재일교포 장명부가 힘을 보탰기 때문입니다. 여기에 '인천 야구'의 상징과도 같았던 김진영 감독(김경기 선수 아버지)이 팀을 맡은 것도 큰 몫을 해냈죠.

김 감독은 임호균과 장명부를 앞세워 시즌 초반부터 승승장구합니다. 4, 5월 두 달 동안 14승을 거둔 삼미는 중간 순위에서 선두를 지키고 있었지만 해태 역시 호락호락한 팀이 아니었죠. 그러다 6월 1일 MBC 청룡 경기에서 결국 사단이 납니다.

전날 경기에서 장명부가 MBC 김재박한테 끝내기 안타를 내주며 팀 분위기가 가라 앉아 있던 상황. 삼미는 8회까지 0-1로 끌려가고 있었습니다. 2사 만루에서 적시타가 터지며 삼미는 2-1로 역전했지만 1루 주자가 3루로 뛰다가 객사하게 됩니다.

문제는 주심이 2루 주자가 홈에 들어온 것보다 1루 주자가 3루에서 먼저 죽었다고 판정한 것이죠. 김 감독이 나와 항의를 시작합니다. 보통 이럴 때는 2루 주자가 홈에 들어오는 게 먼저라는 주장이었죠. 주심이 자기 뜻을 굽히지 않자 김 감독 뒷짐을 지고 '배치기'를 시도합니다. 결국 김 감독은 퇴장 조치를 받습니다. 여기서 그만두었으면 좋았을 걸 김 감독은 '날라차기'를 시전하고 맙니다.


감독이 빠진 상태에서 팀은 흔들렸고 9회말 MBC 이종도가 끝내기 안타를 터뜨리며 삼미는 2연패를 당합니다. 여기까지도 있을 수 있던 일. 전날 이 경기를 지켜 본 전두환 대통령이 김 감독이 "정의사회 구현에 역행했다"며 그를 '폭행죄'로 구속하라고 명령했던 거죠.

이 사건 이후 팀은 걷잡을 수 없이 무너졌고 삼미는 전반기에 27승을 거뒀지만 30승을 챙긴 해태에 밀려 리그 우승을 내주고 맙니다. 후반기에도 25승을 거뒀지만 3위에 만족해야 했습니다. (당시는 전·후기 우승팀이 한국 시리즈에서 맞붙던 형태였습니다.) 김 감독은 시즌이 끝날 때까지 지위는 유지했지만 선수들을 지도할 수는 없었습니다.

삼미는 이듬해에도 전·후기 모두 꼴찌(38승 3무 59패)였고, 1985년에는 여전히 역대 최다 기록인 18연패를 당하며 또 전반기 꼴찌(15승 40패)를 차지합니다. 청보로 바뀐 후반기에는 4위(24승 1무 30패)로 선전했지만 39승 1무 70패로 통합 꼴찌는 면하지 못했죠. 결국 김 감독은 해임됐고 이 팀은 태평양으로 이름이 바뀐 1989년에야 포스트 시즌에 나설 수 있었습니다.

물론 지금처럼 중계 기술이 발전하지 않았던 때라 1983년 6월 1일 그 경기가 오심인지 아닌지는 알 수 없습니다. 그래도 내림세이던 팀이 '외부 요인' 때문에 무너진 건 비슷하죠. 늘 약체였던 팀이 모처럼 상위권에 올랐던 것도 마찬가지. 저는 음모론 같은 건 믿지 않는 사람이지만 "정말 '넥센 죽이기' 같은 게 있는 건가"하고 의심을 품게 만든 장면.

사람은 밉지만 "역대급 오심에도 결국 실력으로 증명하는 수밖에 없다"는 건 사실 반박하기 힘든 말입니다. 지금까지 분위기로는 박근영 심판의 그 오심이 '넥센의 시즌을 날린 판정'이 될 공산이 커 보이지만 선수들을 믿어야지요. 삼미가 청보가 되고, 태평양이 현대가 되고, 왕조가 꼴찌팀이 되도록 믿고 또 믿었던 것처럼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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