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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에서 유일한 것이 승리라면 이기는 그 순간 다시 경합을 벌여야겠다는 욕구는 사라질 것이다. 그렇다면 마이클 조던과 로저 클레멘스가 나이 마흔에 계속 경쟁을 벌였던 사실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 '소크라테스 야구장에 가다' 中에서

지난 번에 우리는 '클러치 상황'을 정의할 때 레버리지 인덱스(Leverage Index, LI)가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아봤다. 사실 LI 정의 자체가 '해당 플레이가 벌어지고 있는 시점이 경기에 끼치는 영향력' 정도 될 테니 어찌 보면 당연한 일.

그럼 LI가 어느 정도 되어야 클러치 상황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이를 알아보기 위해 각 LI 상황에서 리그 평균 타격은 어느 정도 되는지 먼저 살펴보도록 하자.

<표 1> LI 상황별 리그 평균 GPA (2005~2006 시즌)

LI가 5 이상인 경우가 예외이기는 하지만, 일반적으로 LI 2.0을 기점으로 타자들 평균이 갈린다. 2.0 이하일 때는 전체 평균 GPA인 .252 부근을 유지하는 데 비해 그 이상이 되면 평균보다 못한 모양새다.

실제로 LI 2.0을 기준으로 크게 전체 타석을 둘로 나누면 이런 차이를 좀더 분명히 확인할 수 있다. 위기에서는 타자보다 투수들이 더 강했다.

<표 2> LI 2를 기준으로한 GPA 차이 (2005~2006 시즌)


왜 이런 일이 벌어진 걸까? 이유는 간단하다. 위기가 닥치면 감독이 투수 교체를 통해 분위기 쇄신을 노리기 때문이다. 지친 선발이 내려가고 싱싱한 어깨를 자랑하는 구원 투수가 올라오거나, 좌완 원 포인트 릴리프가 올라와 불을 끄는 시점이 바로 LI 2.0 부근이다.

이를테면 홈팀이 1:0으로 앞선 원정팀 8회초 공격 때 선두 타자가 타석에 들어선 순간 LI가 1.9 정도 된다. 이때 선두 타자가 출루에 성공하면 LI는 3.0으로 치솟고, 아웃 카운트를 빼앗아 낸다 해도 1.5로 크게 떨어지지 않는다. 이 정도라면 클러치 상황이라 부를 만하지 않을까?

물론 LI가 2.0인 순간이 이럴 때에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경기가 진행되는 내내 LI가 2.0을 넘어서는 순간은 언제라도 찾아올 수 있다. 원정팀이 1점차 뒤진 5회초 공격 2사 주자 3루 상황 역시 LI 2.0이다. 

달리 말해, 7회 이후 박빙 상황(Late and Close)이 아니더라도 우리가 클러치라고 부를 수 있는 때는 언제든 찾아올 수 있다는 이야기다. 그리고 꼭 경기 후반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승부에 미치는 영향력이 유사한 수준이라면 그때 역시 클러치 상황이라고 불러도 큰 무리는 없다고 생각한다.

이를 가정한 후, 한번 LI 2.0 이상에서 어떤 타자들이 강했는지 알아보자.

<표 3> LI 2.0이상 기준 GPA 상위 10걸 (2005~2006 시즌)


표에서 C_GPA는 LI 2.0 이상일 때 GPA, NC_GPA는 나머지 상황 GPA를 가리킨다. 비고는 이 두 값 차이다. 흥미로운 건 상위 10걸의 C_GPA가 NC_GPA보다 높다는 점이다. 앞서 우리가 알아본 바에 따르면 LI 2,0 기준으로 리그 평균 기록은 하락하는데 말이다. 역시 클러치상황에서 평소보다 집중력을 발휘하는 타자는 존재하는 것일까?

이런 특징을 가장 확실히 보여주고 있는 타자는 바로 SK 최정. 평소에 그는 리그 평균(.252)에도 한참 못 미치는 타자지만, 클러치상황에만 들어서면 리그 탑10 클래스 선수로 변모한다. 클러치 상황에서 평소보다 뛰어난 활약을 보이는 선수를 클러치히터라고 할 때 최정이야 말로 진정한 클러치히터인 것이다.

하지만 LI 2.0 이상일 때 최정은 타석에 겨우 47번 들어섰을 뿐이다. 전체 393 타석 중 12% 정도에 그치는 비율. 나머지 88%에서 GPA .209밖에 때리지 못하는 선수를 그 12% 때문에 굳이 기용할 필요가 있을까? 최정은 전체적으로 GPA .220밖에 못 때리는 타자다. 

경기 중요도를 좀더 끌어 올려 LI 3.0인 상황을 알아보자.

<표 3> LI 3.0이상 기준 GPA 상위 10걸 (2005~2006 시즌)


서튼, 데이비스, 김한수, 마해영 등은 LI 2.0 때도 등장한 타자지만 나머지 6명은 새로이 모습을 드러냈다. 이 6명 모두 LI 2.0인 때보다 더 좋은 GPA를 기록했다. 혹시 상황이 더 중요해질수록 더 뛰어난 기량을 발휘하는 타자가 있는 것일까?

LI를 4.0까지 올려 한번 알아보자. LI 4.0은 끝내기 안타를 때려낼 수 있는 수준인 클러치 상황이다.

<표 3> LI 4.0이상 기준 GPA 상위 10걸 (2005~2006 시즌)


현대 김동수가 제일 잘 쳤다. LI 5.0 이상인 상황도 마찬가지다. 김동수는 제일 중요한 클러치 상황에서도 GPA .950을 때려내며 리그에서 제일 좋은 기록을 남겼다. 

그렇다면 김동수야 말로 우리가 이야기했던 두 가지 조건에 모두 들어맞는 타자다. 그러니까 중요한 순간에 제일 잘 치는 타자도 김동수고, 평소보다 더 잘 치는 타자도 김동수다. 지난 2년간 최고의 클러치히터는 김동수였던 셈이다.

게다가 김동수의 활약은 올해도 계속되고 있다. LI 2,0을 기준으로 했을 때 김동수는 GPA .378을 때려내며 쟁쟁한 후보들을 제치고 리그 5위에 랭크돼 있다. 해마다 꾸준히 같은 기록을 낸다면 그것은 '능력'이라 부를 만하다. 그런 의미에서 김동수는 클러치 '능력'을 갖춘 타자다.

<표 3> LI 2.0이상 기준 GPA 상위 10걸 (2007 시즌)


하지만 한번 스스로 물어보자. 자기 생명이 걸린 타석에 한 타자를 골라야 한다고 치자. 당신은 어떤 타자를 선택하겠는가?

지금껏 우리가 살펴본 자료에 따르면 김동수를 고르는 게 가장 현명한 선택이 될 것이다. 김동수는 평소보다 클러치 상황에 강하며, 상황이 중요하면 중요할수록 더 잘 친다. 그리고 해마다 변하지 않는 클러치 '능력'까지 갖추고 있다.

그래서 정말 김동수를 택하겠는가? 어쩌면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이 각자 클러치히터를 믿느냐, 믿지 않느냐의 갈림길인지도 모르겠다.


※ 조사 표본 타석

1)  2005~2006 시즌 도합 390 타석 (규정타석의 50%)  이상 들어선 타자의 타석
2)  고의사구 및 희생번트가 나온 타석 제외

※ GPA(Gross Production Average)

GPA는 (출루율×1.8+장타율)÷4로 계산한다. OPS가 출루율과 장타율을 1:1로 더함으로써 생기는 장타율을 과대평가하는 걸 막기위한 메트릭. 무엇보다 타율과 유사한 범위로 결과가 나와 직관적인 판단이 가능한 게 장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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