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는 스포츠가 공용어입니다.


❝스포츠에서 유일한 것이 승리라면 이기는 그 순간 다시 경합을 벌여야겠다는 욕구는 사라질 것이다. 그렇다면 마이클 조던과 로저 클레멘스가 나이 마흔에 계속 경쟁을 벌였던 사실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 '소크라테스 야구장에 가다' 中에서


한화 김태균(35·사진)이 1일 대전 안방 경기에서 프로야구 연속 출루 경기 기록을 84경기로 늘렸습니다.


김태균은 이날 첫 세 타석에서 출루에 성공하지 못했지만 네 번재 타석에서 2루타를 치며 출루 기록을 이어갔습니다. 이로써 김태균은 테드 윌리엄스(1918~2002)가 1949년 세운 메이저리그 기록과 어깨를 나란히 하게 됐습니다.


그런데 이 연속 경기 출루 기록이 참 애매합니다. 사실 야구 규칙이나 한국야구위원회(KBO) 리그 규정 어디에도 연속 경기 출루 기록에 대한 내용은 없습니다. 야구 규칙 10.24(b)에 따로 규정을 두고 있는 연속 안타하고 다른 점입니다.


(b) 연속 경기 안타

연속 경기 안타 기록은 경기의 모든 타석이 4사구, 타격방해, 주루방해 및 희생번트만으로 끝났을 경우에는 중단되지 않는다. 그러나 안타 없이 희생플라이만 있으면 그 기록은 중단된다. 선수 개인의 연속 경기 안타는 팀의 경기에 의하지 않고 선수가 출전한 경기에 따라 결정한다.

[주] 선수가 경기에 출전하였으나 타석이 돌아오기 전에 경기가 끝났을 경우 또는 베이스상의 주자가 아웃되어 공수가 바뀌었기 때문에 타석에는 들어갔더라도 타격을 완료하지 못하였을 경우에는 연속 안타 및 연속 경기 안타의 기록은 중단되지 않은 것으로 간주한다.


그래서 개인적으로 올해 한화가 치른 52경기 중 38경기에만 출전한 김태균이 과연 연속 출루 행진을 벌인 게 맞는지 의문이 들기도 했습니다.


KBO 관계자에게 물었더니 "사실 명확한 규정이 없으니 그렇다, 아니다를 논할 수는 없다. 그래도 연속 경기 안타 규정을 준용(準用)해 기록을 이어가고 있는 것으로 보는 게 옳지 않겠나"하는 답이 돌아왔습니다.


규정이 명확하지 않다 보니 연속 경기 출루 기록은 오래 묵혀 있기도 했습니다. 조 디마지오(1914~1999)가 1941년 56경기 연속 안타를 때렸다는 건 메이저리그 상식 퀴즈에도 곧잘 등장하는 사실이지만 윌리엄스가 84경기 연속 출루에 성공했다는 건 2003년 아마추어 연구자들이 알아냈을 정도입니다.


그러니 이치로!(44·현 플로리다)가 아니라 린즈셩(林智勝·35)이 이 부분 아시아 기록 보유자라는 사실이 뒤늦게 밝혀진 것도 꼭 대만 프로야구를 무시해서 그런 것만은 아닐 겁니다. (참고로 마이너리그 연속 경기 출루 기록은 74경기입니다.)


그럼 이 기록을 언론에서 대서특필하고 있는 게 문제라고 생각하느냐?


전혀 아닙니다. 오히려 반길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적어도 제가 스포츠 기자로 일하고 있는 이상 이를 반대할 아무런 이유도 없습니다. 기자는 기본적으로 영국 철학자 프랜시스 베이컨(1561~1626)이 말한 '시장의 우상'을 밑천 삼아 먹고 사는 직업이니까요. 시장의 우상은 다른 사람 말만 듣고 그럴 것으로 착각하는 편견을 가리키는 개념입니다. 


세상에 '연속 경기 출루'라는 개념이 존재한다고 해서 누구 하나 손해 보는 사람이 없습니다. 오히려 언론사에서는 시장에 내놓을 수 있는 상품이 하나 더 생긴 셈이고, 독자(대중)들에게도 즐길 거리가 하나 늘어난 셈입니다. 선수 본인도 좋을 겁니다. 이걸 반대해야 할 이유 같은 건 당연히 어디에도 없습니다. 원래 야구가 (적어도 한국과 미국, 일본에서) 인기 스포츠가 된 건 거의 매일 언론에 기삿거리를 제공했기 때문입니다.


세이버메트릭스 역시 저는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세이버메트릭스만이 야구에서 절대적인 진리는 아닐 테지만 기자에게는 좋은 기삿거리가 됩니다. 세이버메트릭스는 같은 원리를 야구뿐 아니라 배구에도 이렇게 적용할 수 있는 좋은 도구입니다.


그러니까 제게는 (그럴 능력도 안 되지만) 세이버메트릭스를 통해 야구에 숨은 진리를 밝혀내는 것보다 '이야기가 되는' 지점을 발견하는 게 훨씬 더 중요하다는 말씀입니다. 숨은 진리를 찾는 건 각 구단 전력분석팀에 더 어울리는 일일 겁니다.


또 한국 언론에서는 세이버메트릭스(sabermetrics)를 흔히 '야구 통계학'이라고 번역하지만 원래는 'SABRmetrics'고 저기서 SABR은 'Society for American Baseball Research' 약자입니다. 야구를 (과학적으로) 연구하는 모든 분야가 세이버메트릭스입니다. 윌리엄스가 84경기 연속 출루 기록을 세웠다는 걸 밝혀낸 것도 바로 세이버메트릭스인 셈입니다.


세이버메트릭스는 또 윌리엄스가 저 84경기 동안 .406/.557/.711을 쳤다는 것도 알려줍니다. 56경기 연속 안타 기록을 세울 때 디마지오는 .408/.463/.717이었습니다. 이건 확실히 얘기가 됩니다. 


이렇게 이야기를 많이 만들 수 있다는 점에서, 그리고 그 가치를 인정받는다는 점에서 저는 프로야구 선수들 연봉이 치솟는 걸 긍정적으로 보고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자유계약선수(FA) 몸값이 오르는 데도 별 거부감이 없습니다. 제가 몸담은 시장이 커지는 걸 제가 앞장서 반대할 이유는 없기 때문입니다. 남들이, 예를 들어 프로축구 담당 기자가 그걸 지적할 수는 있어도 프로야구 담당이 그럴 필요는 없다는 말씀입니다.


요컨대 저는 앞으로 이렇게 이상한(?) 기록이 더 많이 늘어나기를 희망합니다. 그래서 제가 각종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프로필에 쓰고 있는 문장처럼 이 세상 모든 질문이 스포츠였으면 좋겠습니다. 스티븐 킹 '리타 헤이워드와 쇼생크 탈출'에 나오는 "희망은 좋은 것이고, 좋은 건 절대 사라지지 않는다"는 말을 이렇게 한번 더 믿어봅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스포츠 저널리즘'은 너무 거창한데 대체할 만한 낱말을 찾지 못해 제목을 바꾸지 못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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