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는 스포츠가 공용어입니다.


❝스포츠에서 유일한 것이 승리라면 이기는 그 순간 다시 경합을 벌여야겠다는 욕구는 사라질 것이다. 그렇다면 마이클 조던과 로저 클레멘스가 나이 마흔에 계속 경쟁을 벌였던 사실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 '소크라테스 야구장에 가다' 中에서


오늘 잠실 두산 경기는 비록 승리도 내주고 작전도 실패했지만 '아, 넥센이 정말 달라졌구나'하고 생각하게 만든 장면이 나왔습니다. 염경엽 감독이 마운드를 방문했기 때문이 아닙니다. 염 감독은 비슷한 장면은 이미 몇 번 연출했죠. 중요한 건 마운드에 내야수들을 모아놓고 지시한 내용입니다.

결국 승부가 갈린 11회말 두산 공격. 선두타자 이종욱이 바뀐 투수 마정길을 상대로 2루타를 치고 나갔습니다. 어차피 1점 승부에서 다음 타자 손시헌이 희생번트를 대는 건 공식과 마찬가지. 사실 저는 여기서 마정길이 3루를 선택하는 게 맞다고 봤습니다. 어차피 이종욱이 들어오면 경기가 끝나는 상황에서 아웃 카운트 하나는 별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으니까요. 이게 얼마나 멍청한 짓이었는지 지금부터 알아보겠습니다.

이어 타석에 들어선 오재원은 고의사구. 결승점을 3루에 둔 수비팀으로선 이 역시 당연한 선택. 이때 염 감독이 내야수들을 마운드로 불러 모읍니다. 저는 여기서 염 감독이 병살 타구를 유도할 수 있는 볼 배합, 수비 포메이션을 지시할 확률이 더 높다고 봤습니다. 이종욱이 전진 수비로 잡을 수 있는 주자가 아니라고 봤기 때문이죠.

그런데 염 감독 전진수비를 지시합니다. 이런 상황이 되면 당연히 1루 주자는 2루로 뛸 겁니다. 발 빠른 오재원이라면 더더욱. 그러면 수비팀은 다시 1루를 채우고 만루작전을 노리는 거죠. 예상대로 오재원을 2루를 향해 스타트.

이때 놀란 건 박동원이 기다렸다는 듯 공을 바깥으로 뺐다는 것. 그리고 다소 앞쪽으로 덜 나와 있던 유격수 김민성이 제 타이밍에 2루 커버를 들어갑니다. 비록 도루는 성공했지만 오재원이 김민성의 글러브를 치고 지나가지 않았다면 아웃이 될 수도 있던 상황이었습니다. 만약 오재원을 잡았다면 2사 3루. 그럼 정말 경기는 알 수 없는 국면으로 흘렀겠죠.


지난달 말 염 감독이 세밀한 야구를 강조한다는 기사가 떴었습니다.
염 감독은 뜬구룸 잡는 식으로 선수들에게 주문하지 않는다. 상황에 따른 수비 포메이션을 명확하게 제시한다. 이를테면 무사 1, 2루에서 어떤 식으로 번트를 대야하는 지를 가정해 번트 훈련을 시킨다. 그는 수비 포메이션에 관한 매뉴얼까지 직접 만들어 선수들에게 나눠줬다.
오늘 포메이션도 매뉴얼에 들어있었을까요? 만약 손시헌의 희생번트 상황에서 '될 대로 되라'는 심정으로 3루를 선택했다면 이런 작전을 구사하는 게 처음부터 불가능했을 겁니다. 미리 준비했으니 이렇게 과감한 선택이 가능했던 것이라고 봅니다.  정말 야구 공부 더 많이 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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