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이스북에서 보니 모 사이트에서 '포수 리드' 논란이 한창인가 봅니다. 사실 저는 포수 리드 같은 건 없다고 믿는 사람입니다. 포수 제1 덕목은 '공을 잘 받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공을 잘 받는다는 건 뭘까요? 그러니까 포수 리드가 무엇인지 그 개념이 불명확하다는 겁니다. 국내에서 드물게 '포수 리드 무용론'을 펼치는 이만수 감독 얘기부터 들어보겠습니다.
이 감독은 "피칭은 투수가 하는 것으로 포수가 백 번 몸 쪽 공을 요구해도 제구가 되지 않으면 그만"이라며 "포수의 역할은 투수 리드보다 경기 운영에 더 치중해야 한다"고 설파했다. 즉 공 한 개마다의 볼 배합보다 전체의 흐름을 이끌어야 한다는 관점이다. 예를 들어 "타자와 승부할 것인가. 아니면 다음 타자를 잡을 것인가. 또는 투수의 투구 템포를 어떻게 조절할까와 결부된다"고 설명했다.이 감독도 포수를 그저 '공 받는 사람'으로만 보지는 않는 겁니다. 다만 볼 배합보다 큰 흐름을 보라는 주장을 하는 셈이죠. 이 감독이 이 지론을 바탕으로 선택한 주전 포수는 LG에서 뛰던 조인성입니다. 조인성은 이 지론을 얼마나 뒷받침하고 있을까요?
지난해 조인성이 공을 받는 상황에서 상대 팀 타자들은 SK 투수들을 상대로 2667타석(623⅔)에서 .259/.338/.380을 때렸습니다. 정상호가 앉아 있던 1861타석(444⅓이닝)에서는 .256/.332/.369였습니다. OPS(출루율+장타력)로 따지면 조인성(.718)이 정상호(.702)보다 .018 높기는 하지만 사실상 똑같은 성적입니다.
여기서 한 가지 재미있는 건 2010~2012 세 시즌 동안 SK 투수들 투구 내용을 살펴 보면 정상호와 박경완이 놀랄 만큼 비슷하다는 점입니다. 조인성은 SK에서 뛴 지난해 기록만 들어 있습니다. ('스트라이크'는 심판이 스트라이크라고 선언한 비율)
팀 | 포수 | 투구수 | 스트라이크 | 헛스윙 | 파울 | 타격 | 볼 |
SK | 박경완 | 1만9071개 | 18.1% | 9.4% | 16.4% | 16.7% | 39.5% |
SK | 정상호 | 2만4724개 | 18.1% | 9.4% | 16.3% | 16.8% | 39.4% |
SK | 조인성 | 1만257개 | 17.4% | 7.8% | 16.8% | 19.4% | 38.6% |
박경완, 정상호만 보면 포수보다는 투수가 투구 결과에 더 큰 영향을 끼친다고 볼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포수가 누구냐에 상관없이 투수들이 일정한 기록을 보이고 있는 걸 테니까요. 그런데 조인성은 다릅니다. 박경완하고 정상호는 타자들이 방망이를 휘둘렀을 때 허공을 가르게 하는 타입. 반면 조인성은 타구를 일단 페어 지역으로 보내는 유형입니다.
그럼 조인성을 떠나 보낸 LG는 어떨까요? 2010~2011년 조인성이 공을 받았을 때하고 지난해 LG 투수들 투구 내용을 보면 역시나 재미있는 결과가 나옵니다. 박경완-정상호 수준은 아니더라도 그리 큰 차이가 없는 겁니다.
팀 | 포수 | 투구수 | 스트라이크 | 헛스윙 | 파울 | 타격 | 볼 |
LG | 조인성 | 3만3799개 | 18.2% | 7.2% | 16.2% | 18.7% | 39.7% |
LG | 2012 | 1만9779개 | 18.0% | 7.6% | 16.1% | 20.0% | 38.2% |
전체적으로 투구 내용이 비슷한 가운데 타격은 늘어났지만 볼은 줄었습니다. 페어 지역에 들어온 타구를 야수들이 아웃으로 처리하는 비율(DER)도 조인성 시절과 지난해 모두 68.7%로 변함이 없습니다. 포수가 바뀌었다고 특별히 강한 타구를 맞지는 않았다는 거죠.
지금까지 결과를 보면 포수가 투수에게 영향을 준다기보다 조인성이 자기한테 공을 던지는 투수들이 바뀐 영향을 받았다고 보는 게 옳은 해석일 겁니다. 그러니까 이 감독의 '포수 리드 무용론'이 설득력 있는 논리라는 뜻입니다. 포수는 볼 배합보다 '전체 흐름'입니다.
그럼 박경완도 지난해 정상호, 조인성하고 비슷한 성적을 냈을까요? 247타석(57⅓이닝)밖에 안 되지만 지난해 박경완이 포수일 때 상대 타자들은 .248/.322/.322에 그쳤습니다. OPS로는 .654죠. 포수 평균 자책도 박경완(2.98)이 조인성(4.11)이나 정상호(3.63)보다 좋습니다. 물론 같은 팀 포수라고 해도 서로 다른 투수 공을 받은 거니까 이 기록만으로 박경완이 둘보다 나은 포수라고 단정지을 수는 없습니다.
그렇다면 박경완이 주전 포수였을 때는 어땠을까요? 2010년 SK 투수들은 .243/.331/.365를 허용했습니다. 조정OPS(OPS+)로 환산하면 92, 즉 리그 평균보다 8% 뛰어난 성적을 거둔 셈입니다. 이 중 박경완이 포수 마스크를 썼을 때는 .242/.329/0.359로 살짝 더 좋았습니다. (OPS+ 91)
그런데 박경완은 득점권에서 OPS+ 91로 상대 타자를 막았지만 정상호는 OPS+ 102를 내줬습니다. 그 결과 평균 자책 0.5가 넘는 차이가 났습니다. 두 포수가 공을 받은 투수가 서로 달라 생긴 우연일까요?
더 보겠습니다. 박경완은 2010년 득점권 상황에서 OPS .710을 허용했습니다. 리그 평균은 .787. 지난해 조인성은 같은 상황에서 .765, 리그 평균은 .729였습니다. 지난해만 봐도 박경완이 득점권에서 상대 타자들을 타율 .246으로 묶을 때 조인성은 .265를 허용했습니다. 역시나 우연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제구력을 측정하는 데 흔히 쓰는 삼진 대 볼넷 비율(K/BB)도 2010년 박경완은 2.05(리그 평균 1.74), 지난해 조인성은 1.66(리그 1.80)이었습니다. 박경완의 지난해 K/BB도 1.89로 조인성보다 좋았습니다. 같은 패턴이 계속 나타나는 데 이번에도 또 우연일까요?
연도 | 포수 | 평균 자책 (ERA+) |
K/BB (K/BB+) |
OPS (OPS+) |
득점권 OPS (OPS+) |
헛스윙 (헛스윙+) |
2010 | 박경완 | 3.58 (128) |
2.05 (116) |
.688 (91) |
.710 (91) |
9.5% (118) |
2010 | 정상호 | 4.11 (116) |
1.75 (101) |
.686 (91) |
.804 (102) |
9.3% (116) |
2012 | 박경완 | 2.98 (123) |
1.89 (104) |
.654 (94) |
.750 (103) |
7.9% (94) |
2012 | 조인성 | 4.11 (93) |
1.83 (91) |
.718 (103) |
.765 (105) |
7.5% (93) |
이 모든 게 우연이라고 해도, 이만수 감독이 이야기한 '전체의 흐름'이라는 측면에서도 꾸준히 박경완이 조인성보다 나은 모습을 보였습니다. 우연이 반복되는 건 실력이라고는 할 수 없어도 실적이라고는 할 수 있죠. 그리고 보통은 실적이 좋은 선수는 일단 써 보는 게 일반적인 기용법입니다.
그런데도 이 감독은 이번 시즌에도 박경완 대신 조인성을 주전 포수로 택했습니다. 자신을 쓰지 않을 거면 트레이드 시켜달라던 박경완 요구도 들어주지 않은 채 말입니다. 이 감독은 기본적으로 박경완이 경쟁에서 살아남아야 그를 기용하겠다는 의견입니다.
이 감독은 "(트레이드를 요구할 때) 경완이가 어떤 심정이었는지 누구보다 내가 잘 안다. 나도 선수 시절 말년에 시합 못 뛰고 매일 더그아웃에서 벤치만 달구고 있을 때 트레이드 욕심이 생겼다"며 "현실에서 도망가려는 것보다는 그 현실을 극복해서 이겨내는 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습니다.
또 "그 선수(박경완)를 쓰려고 해도 부상 때문에 쓸 수 없었다. 그런데 시범경기 막판에 허벅지 근육에 부상을 당해 어쩔 수 없이 제외시킬 수밖에 없었다"며 "2군 경기에 출전하다가 1군에 올리려 했더니 이번엔 등에 담이 와 뛸 수 없었다. 지금 경완이는 퓨처스리그에서 활약 중"이라고 덧붙였습니다.
이어 "박경완과 관련된 기사를 보면 부상 소식은 거의 없고, 이만수가 왜 박경완을 1군에 안올리는지에 대한 기사들이 많더라. 경완이를 사랑하는 팬들을 위해서라도 하루 빨리 좋은 기량을 되찾았으면 하는 바람"이라고도 했습니다.
#skwyverns 박경완 선수가 이 시각에 KBO에 와 있네요 -_-;;
— sportugese (@sportugese) 2013년 4월 1일
올해도 우연이 계속되리라는 법은 당연히 없습니다. 그러나 박경완이 다시 옛 기량을 되찾지 못 하더라도 '납득의 기회'는 필요합니다. 우연이 끝나면 실적도 끝나고, 그러면 '아, 이제 옷을 벗을 때가 됐다'고 스스로 느낄 테니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