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응국, 액셀레이터를 밟다.
라인업에 남은 타자가 없었다. 넥센 장기영(사진 왼쪽)이 프로 데뷔 이후 첫 타석에 들어선 이유는 그것뿐이었다.장기영은 2001년 2차 드래프트에서 전체 9순위로 현대 유니콘스에 뽑힌 투수 유망주였다. 계약금은 1억 원. 하지만 입단 후 3년 동안 1군에서 4경기를 던진 게 전부였다. 군 생활을 마치고도 줄곧 2군이었다.
첫 타석에서 안타를 쳤다. 타점도 2개나 올렸다. 경기가 끝난 후 김응국 코치(사진 오른쪽 위)가 찾아왔다. "타자 안 할래?" 장기영은 아픈 왼팔을 쳐다보며 속으로 생각했다. '한 번 해볼까?'
팀이 히어로즈로 바뀐 2008년 장기영도 타자로 전향했다. 장기영은 "1군에서 이 정도 할 수 있게 된 건 김 코치님 덕분이다. 나에게 애정을 쏟고 정말 열심히 가르쳐주셨다"며 "아마도 같은 투수 출신이라서 내 마음을 더 이해해주셨던 것 같다"고 말했다.
김응국 코치는 1988년 롯데에 투수로 입단했지만 이듬해부터 타자로 전향했다. 1989년 29타수 14안타(타율 .483)로 가능성을 보여준 김응국 코치는 1990년 타율 .292로 연착륙에 성공했다. 이후 2003년 은퇴할 때까지 빠른 발과 정교한 방망이 솜씨를 주무기로 통산 타율 .292, 1452 안타를 기록하면서 롯데의 전성기를 이끌었다.
타자 전향은 쉽지 않았다. 2008년 1군에서 4타석에 들어섰지만 안타를 하나도 때리지 못했다. 4타석 중 2번은 삼진이었다. 김응국 코치마저 부산고로 떠났다. 그렇게 타자로도 빛을 못 보고 유니폼을 벗어야 하는 줄 알았다.
심재학, 브레이크 밟는 법을 가르치다.
그때 세로운 구세주가 나타났다. 심재학 코치(오른쪽 사진 아래)였다. '국가대표 4번 타자'로 LG 트윈스에 입단했지만 프로는 물이 달랐다. 1997년 .285였던 타율이 이듬해 .267로 떨어지자 구단은 그에게 투수 전향을 권했다. 심재학은 1999년 투수로 마운드에 섰지만 평균자책점이 6.33점인 투수를 반길 구단은 없었다.심재학은 현대로 트레이드 된 2000년 홈런 21개를 쏘아 올리며 부활을 알렸고 2001년에는 두산 유니폼을 입고 골든글러브도 차지했다. 충암고 재학 시절 명품 커브를 기억하던 팬들에게는 안타까운 이야기지만 심재학은 천상 타자였다.
'타격 코치' 심재학이 처음 본 장기영은 타자와 거리가 멀었다. 심 코치는 "그저 모든 것이 직진이었다. 무조건 세게 치는 것만 할 줄 아는 선수였다. 힘이 잔뜩 들어간 스윙 탓에 타이밍을 좀처럼 맞히지 못했다. 특히 변화구 공략은 실망스러운 수준이었다"고 회상했다.
심재학 코치는 장기영을 '타자답게' 만드는 것부터 시작했다. 많이 치는 게 최선이었다. 장기영은 하루에 '빠른 티(tee)' 훈련을 500~700개 소화했다. 빠른 티 훈련은 코치가 공을 여러 개 손에 쥔 다음 연속적으로 빠르게 공을 토스해주면 타자도 계속 그 공을 때려내는 훈련이다. 어느새 장기영은 힘을 뺀 채 빠르게 공을 때리는 타격 폼을 몸에 익힐 수 있었다.
2009년 장기영은 2군에서 타율 .315를 기록하면서 타자가 되기 시작했다. 2루타 15개, 3루타 5개, 홈런도 5개였다. 1군 성적도 25타수 5안타. 전년 성적과 비교하면 희망적이었다.
장기영, 고속도로를 달리다.
그 뒤 스토리는 우리 모두가 알고 있는 그대로다. 이제 이종욱을 그리워하는 히어로즈 팬은 없다. 이종욱은 현대에서 방출된 뒤 두산 톱타자로 자리매김했다.물론 장기영은 아직도 부족한 게 많다. 톱타자에게 필수적인 선구안이 떨어지는 건 빨리 보완해야 할 과제다. 삼진을 51개 당하는 동안 볼넷은 23개밖에 얻어내지 못했다. 또 우투수에게는 타율 .365를 때리지만 좌투수에게는 .200로 묶이는 것도 빨리 보완해야 할 과제다. 수비에서도 아직은 미숙한 모습을 보일 때가 많다.
심 코치는 "아직 장기영이 해야 할 일들이 많이 남아있다. 주루할 때 보면 알겠지만 여전히 직진성향이 남아 있다. 좀 더 세련된 타자가 되기 위해선 지금의 자신감을 통해 업그레이드를 시도해야 한다. 워낙 열심히 하는 선수인 만큼 좋은 결과가 기대된다"고 말했다.
어디 심 코치 생각만 그럴까. 히어로즈 노우트에 쓴 것처럼 확실하게 '전준호의 후계자'로 거듭나기를 바란다. 아니, 충분히 그럴 수 있으리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