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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에서 유일한 것이 승리라면 이기는 그 순간 다시 경합을 벌여야겠다는 욕구는 사라질 것이다. 그렇다면 마이클 조던과 로저 클레멘스가 나이 마흔에 계속 경쟁을 벌였던 사실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 '소크라테스 야구장에 가다' 中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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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김연아를 곧잘 박태환과 비교하지만 오히려 장미란이 더 어울린다. 박태환이 나쁜 선수라는 뜻은 아니지만 '압도적 무게감'이 다르다. 김연아는 마이크 펠프스다. 아니, 마이크 펠프스는 어쩌면 역사상 최고 수영 선수인지도 모른다. 김연아는 아직 아니다. 27일(한국 시각) 이탈리아 토리노에서 열린 '2010 세계피겨선수권대회' 김연아 경기 모습. AP 연합통신


김연아보다 '압도적'이던 스케이터들

맞다. 김연아가 올림픽 금메달을 목에 건 뒤 우리 언론은 여자 싱글 선수로는 사상 처음 그랜드슬램을 달성했다고 열심히 보도했다. 사실이다. 김연아는 2006년 그랑프리파이널 우승을 시작으로 세계피겨선수권대회, 4대륙피겨선수권대회, 겨울 올림픽까지 모두 금메달을 차지했다.

그런데 1998년 나가노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타라 리핀스키(미국)는 1999년부터 시작한 4대륙선수권대회에 참여한 적이 없다. 리핀스키는 올림픽 한달 후인 1998년 4월 프로로 전향했다.

게다가 4대륙선수권대회에는 유럽 선수들이 참여할 수 없다. 4대륙선수권대회 자체가 유럽선수권대회에 대항하려는 목적에서 출발했기 때문이다. '그랜드슬램'은 다분히 우리 언론에서 만들어낸 표현이다.

또 김연아의 롤 모델 미셸 콴(미국)도 올림픽 금메달과 인연이 없었다. 하지만 미셸 콴은 1995~1996 시즌부터 2003~2004 시즌까지 9년 동안 세계선수권 대회에서 매해 메달을 땄다. 이 중 5번은 금메달이었다. 이 기간 동안 실질적으로 여자 피겨스케이팅 싱글을 지배했던 건 미셸 콴이었다.

시대를 조금 더 거슬러 올라가면 카타리나 비트(당시 동독)는 1984 사라예보, 1988 캘거리 올림픽에서 2연패를 달성했다. 세계선수권대회 4회 우승, 유럽선수권은 1982~1983 시즌부터 1987~1988 시즌까지 6연패다.

소냐 헤이(노르웨이)가 1928 생모리츠, 1932 레이크플레시드, 1936 가르미쉬 파르텐키르헨 올림픽에서 3연패한 건 너무 오래 전이라고 해도 김연아를 '피겨의 전설'이라고 흔쾌히 부르기 망설여진다. 김연아가 지난 두 시즌 동안 여자 싱글을 '지배'한 건 사실이지만 그보다 더 한 선수들이 있었다.


제2의 페기 플레밍?

페기 플레밍(미국)은 1968년 그레노블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1964년 전미피겨선수권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하며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한 플레밍은 1966~1968년 세계선수권대회 3연패를 차지했다. 이해까지 전미선수권대회에서도 5연패. 문자 그대로 '불꽃 같은' 전성기를 보낸 뒤 플레밍은 스무살이던 1968년 은퇴를 선언했다.

은퇴한 지 40년도 더 지났지만 플레밍은 여전히 미국인들이 가장 사랑하는 스포츠 스타로 손꼽힌다. TV 해설자로 20년 넘게 활약하고 있으며 본인이 유방암 선고를 받은 뒤로는 유방암 예방 활동에도 열심이다.

(플레밍이 은퇴 이후 영화배우로 전향했다고 믿는 이들이 퍽 되지만 사실과 다르다. 플레밍이 영화 '하얀 여인들(13 Jours En France)'에 출연한 건 사실이다. 하지만 이 영화는 그레노블 겨울올림픽을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다.)

어쩌면 김연아는 헤이, 비트, 콴보다 플레밍 같은 미래를 꿈꾸고 있는지도 모른다. 브라이언 오서 코치는 23일 AP 통신과의 인터뷰에서 "김연아가 올림픽이 끝난 뒤 이번 대회에 출전해야 하는 동기를 찾지 못하며 운동하는 것을 꺼렸다"고 말했다. 김연아도 "올림픽 금메달 꿈을 이루면서 정신적으로 풀린 면이 있는 것 같다"고 했다.

우려는 현실로 나타났다. 김연아는 26일 이탈리아 토리노에서 열린 세계선수권대회 여자 싱글 쇼트프로그램에서 7위(60.30점)에 그쳤다. 시니어 데뷔 이후 가장 낮은 성적이다. 김연아는 경기 뒤 "프로그램을 하면서 이처럼 기본과제를 소화하지 못한 것은 처음"이라며 "힘든 일이 있었어도 지금까지 잘 이겨내 왔다. 오늘 일을 빨리 잊고 프리스케이팅에 전념하겠다"고 말했다.


김연아는 이미 세상을 아름답게 만들었다.

아니, 부담을 주자는 게 아니다. "김연아가 기여한 대한민국 브랜드 상승효과는 쏘나타 100만대를 수출하는 것과 맞먹는다." "3·1절을 앞두고 일본 선수를 꼼짝 못하게 제압한 데서 국민들이 카타르시스를 느꼈을 것이다." 하고 '촌스러운 오지랖'을 떨고 싶지도 않다.

김연아가 피겨스케이팅 역사에 길이 남는 선수가 되고 싶다면 우리는 마지막 퍼즐 '트리플 악셀' 정복에 나서는 그녀를 응원할 것이다. 이번 대회를 마지막으로 링크를 떠나고 싶다면 또 그대로 우리는 김연아 인생의 제2장을 진심으로 응원하면 된다. 그저 '여왕의 품격' 같은 낱말로 김연아를 옥죄지 말자는 뜻이다.

이 글은 그저 김연아 스스로 가장 행복한 자기 20대를 보낼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작은 팬심에서 비롯됐다. 스탠퍼드에 다니며 골프투어 중에 호텔방에서 리포트를 쓴다는 미셸 위보다 김연아가 인류 전체에 더 많은 아름다움을 안겨줬다. 김연아는 지금껏 보여준 것만으로도 세상을 충분히 더 아름답게 만들었다. 지구상 그 누구보다 우리가 그 혜택을 가장 온전히 누렸다. '이제 너의 선택을 믿는다'고 말해도 우리는 이미 충분히 행복한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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