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 후배가 '외국인 투수들, 거침없는 탈삼진쇼… "류현진 17K 넘고 싶어"'라는 제목으로 기사를 썼습니다.
탈삼진 능력을 갖춘 외국인 투수가 늘어나면서 류현진(38·한화)이 보유하고 있는 9이닝 기준 한 경기 개인 최다 탈삼진 기록을 깰 수 있을지 관심을 끈다는 내용입니다.
류현진은 2010년 5월 11일 청주 LG전에서 삼진 17개를 잡아내면서 이 부문 기록을 새로 썼습니다.
그런데 이 기사 끝에 나온 아래 내용을 읽다가 고개를 갸웃거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지만 류현진의 17탈삼진을 넘어서기는 쉽지 않을 거란 이야기도 나온다.
예전에 비해 선발 투수들의 투구 수 관리가 철저하게 이뤄지고 있어서다.
당시 류현진은 124개의 공을 던졌지만 요즘 선발 투수들은 100개 안팎의 공을 던지고, 많아도 110개를 넘기지 않는다.
한마디로 삼진을 많이 잡으려면 공을 많이 던져야 하는데 최근에는 선발 투수가 공을 많이 던지지 못하게 하니 삼진을 많이 잡기가 힘들다는 겁니다.
삼진 1개를 잡으려면 공을 3개만 던져도 되지만 10개를 잡으려면 최소 30개는 던져야 하니 맞는 이야기처럼 들리기도 합니다.
그런데 공을 많이 던진다고 꼭 삼진을 많이 잡는 건 아닙니다.
특히 한 경기 최다 탈삼진처럼 '확실히 튀는' 기록에 도전할 때는 확실히 그렇습니다.
한국 프로야구가 10개 구단 체제를 갖춘 2015년 이후 지난해까지 투수가 삼진(⊃ 스크라이크아웃 낫아웃)으로 끝난 타석에서 던진 공은 평균 4.9개입니다.
같은 기간 타석당 평균 투구 수가 4.4개니까 삼진을 잡으려면 0.5개를 더 던져야 합니다.
정말 그럴까요?
18년 전(헉!)에 썼던 포스트에서 (맞춤법을 수정해) 가져오면:
사람들은 삼진이 투구 수를 늘린다고 생각한다. 실제로 그렇게 보이기도 한다. 최근 2년간 삼진을 잡으려면 투구 수 4.9개가 필요했다. 범타는 3.4개(kini註 - 최근 10년은 3.8개)였다.
그러나 낫아웃을 감안해도 삼진은 99.9% 아웃이다. 한 이닝은 아웃 카운트 세 개면 끝이 난다. 만약 세 타자를 모두 삼진으로 돌려세운다면 투수는 평균 14.7개만 던지면 된다.
타자가 공을 때리면 아웃 처리 확률은 71.5%(→ 67.3%)로 줄어든다. 한 이닝을 끝마치려면 28.5%(→ 32.7%) 많은 타자를 상대해야만 한다.
요컨대 상대 타자를 삼진을 돌려세우는 게 소위 '맞혀 잡는' 것보다 투구 수가 더 필요한 건 사실입니다.
다만 삼진을 잡으면 상대 타자 숫자가 줄어들게 되고 그 결과 투구 수가 줄어듭니다.
실제로 최근 10년 동안 10이닝 이상 던진 투수를 대상으로 9이닝당 탈삼진(K/9)과 이닝당 투구 수 사이 상관관계를 계산해 보면 -.0195가 나옵니다.
그러니까 삼진과 투구 수 사이 관계는 '랜덤'입니다.
여기서 또 한 가지 주목해야 하는 건 "많아도 110개를 넘기지 않는다"는 문장 역시 사실과 거리가 있다는 점입니다.
지난해에도 선발 투수가 110개를 넘게 던진 경기가 23번 있었습니다.
최다 투구 수는 롯데 윌커슨(36)이 6월 16일 잠실 방문 경기에서 LG를 상대로 남긴 117개였습니다.
그러면 투구 수 117개로 삼진을 몇 개나 잡을 수 있을까요?
잠깐 메이저리그(MLB)로 시선을 돌려 보겠습니다.
코리 클루버(39·당시 클리블랜드)가 2015년 5월 14일 안방 경기에서 세인트루이스를 상대로 8이닝 동안 탈삼진 18개를 기록할 때 던진 공이 113개였습니다.
또 맥스 셔저(41·당시 워싱턴)는 2016년 5월 12일 디트로이트 상대 안방 경기에서 공 119개를 던지면서 MLB 한 경기 최다 타이 기록인 삼진 20개를 잡아내기도 했습니다.
달성하기 힘든 건 사실이지만 공 117개로 삼진을 18개 이상 잡아내는 게 불가능한 건 아닙니다.
탈삼진 | 이름 | 날짜 | 구장 | 상대 | 투구 수 |
17개 | 류현진 | 2010-05-11 | 청주 | LG | 124 |
16개 | 최동원 | 1983-06-07 | 구덕 | 삼성 | 183 |
선동열 | 1992-04-11 | 잠실 | OB | 138 | |
이대진 | 1998-05-14 | 인천 | 현대 | 123 |
류현진 이전에는 최동원(1958~2011), 선동열(62), 이대진(51)이 16개로 한국 프로야구 9이닝 기준 최다 탈삼진 공동 1위에 이름을 올리고 있었습니다.
최동원은 1983년 6월 7일 안방 경기에서 0-5 완투패를 당할 때 공을 총 183개 던지면서 프로야구 출범 후 처음으로 한 경기 16탈삼진 기록을 남겼습니다.
류현진보다 탈삼진은 1개 더 적었는데 공은 59개(47.6%) 더 던졌습니다.
이때도 "요즘 투수들은 많아도 150개 이상은 잘 던지지 않는다"고 쓸 수 있었는데도 기록이 깨졌습니다.
후배가 쓴 기사는 "물론 날씨가 더워지며 투수들의 몸이 풀릴수록 기록 경신을 기대해 볼 수도 있다"는 문장으로 이어집니다.
이 문장 역시 사실과 거리가 있습니다.
6년 전에 말씀드린 것처럼 야구는 날씨가 더워질수록 타자에게 유리한 종목입니다.
날씨가 더워지면 투수는 삼진을 잡는 데 애를 먹게 됩니다.
그렇다고 새 기록이 여름에 나오지 말라는 법은 물론 없습니다.
앞서 말씀드렸듯 한 경기 최다 탈삼진 기록은 '아웃라이어(outlier)' 그 자체입니다.
이런 기록은 '우주의 기운' 다른 말로 우연에 우연이 겹쳐야 새로 쓸 수 있습니다.
다만 적어도 투구 수 관리 때문에 이 기록을 깨지 못하는 일은 없을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