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는 스포츠가 공용어입니다.


❝스포츠에서 유일한 것이 승리라면 이기는 그 순간 다시 경합을 벌여야겠다는 욕구는 사라질 것이다. 그렇다면 마이클 조던과 로저 클레멘스가 나이 마흔에 계속 경쟁을 벌였던 사실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 '소크라테스 야구장에 가다' 中에서

1996년 9월 12일 대전 야구장, 홈팀 한화 대 OB 경기.

한화는 전날까지 5연승을 내달렸다. 선두 해태와 두 게임 차. 내심 1위 자리도 노려볼만 했다.

꼴찌 OB도 7위 LG에 겨우 반 게임 뒤져 있었다. 이날 경기에 따라 순위가 바뀔 수도 있는 상황.

초반 주도권은 한화가 잡았다. 장종훈의 연타석 홈런과 이강돈의 솔로홈런을 묶어 치고 나갔던 것.

OB도 곧바로 반격했다. 3회 이명수, 4회 김태형의 적시타가 터지며 3 대 2로 쫓아갔다.

그리고 6회초.

이보형이 솔로 홈런을 날리면서 스코어는 3 대 3.

한화 덕아웃에 긴장감이 감돌았다. 강병철 한화 감독은 선발 이상목을 내리고 마무리 구대성을 투입했다.

OB 덕아웃에도 긴 침묵이 흘렀다. 환호 대신 냉랭한 덕아웃 분위기.

노골적으로 "아니, 도대체 거기서 왜 홈런을 친 거야?" 하고 차가운 눈빛을 보내는 이들도 있었다.

이보형은 그 흔한 하이파이브 한 번 없이 조용히 덕아웃 구석에 앉아 말을 아꼈다.

OB 김인식 감독은 이보형을 한번 쳐다보고는 무명에 가까운 김유봉을 마운드에 올렸다.

결국 8회말 선두 타자 홍원기가 2루타로 나간 뒤 조경택의 희생플라이 때 홈을 밟으면서 경기는 4 대 3 한화 승리로 끝났다.

그제야 선수들이 하나 둘 찾아 와 "프로 첫 홈런 축하한다"는 말을 건넸다. 이보형은 7회말 수비 때 한 수 아래로 평가받는 함석원과 교체돼 벤치에 앉아 있었다.

OB는 이날 3연패를 기록하면서 LG에 한 게임 뒤진 꼴찌를 유지했다.

3일 뒤 전주 구장 9회말 1사 1, 2루.

쌍방울 김실의 우전 적시타에 이어 우익수 함석원이 끝내기 실책을 저질러 두 점을 내줬다.

6연패로 시즌 최하위가 확정된 순간, OB 코칭 스탭은 함석원을 부둥켜안으며 외쳤다.

"잘했다. 정말 잘했다. (진)갑용이는 이제 우리 팀 선수다!"

진갑용이 고려대 졸업을 앞두고 있던 그해 여름.

롯데 김용희 감독은 손민한과 진갑용을 따로 만났다.

"둘 중 하나가 1년만 좀 미국 갔다 오면 안 되겠나?"

연고 부산고 출신인 두 선수 모두 놓치고 싶지 않던 롯데 구단이 꼼수를 생각해 낸 것.

이때만 해도 김용희 감독은 1차 지명으로 진갑용을 염두에 두고 있었다. 건초염을 앓고 있던 손민한이 못 미더웠기 때문.

그런데 최창양이 필라델피아를 거쳐 삼성에 입단에 입단하면서 이마저 소용없게 됐다.

게다가 구단 고위층도 최동원 이후 맥이 끊긴 초특급 에이스를 갈망하고 있었다. 롯데는 결국 손민한을 1차 지명했다.

자연스레 2자 지명에서 어떤 팀이 진갑용을 차지하느냐에 관심이 쏠렸다. 오직 꼴찌만 진갑용을 '모셔올 수 있었다'.

LG의 거센 추격(?)을 받고 있는 OB로서는 한 경기 한 경기 패배가 간절했다.

이 때 이보형이 "그 누구도 바라지 않던" 홈런을 때렸던 것.

이보형은 이듬해 프로 두 번째 홈런을 때리고 나서야 제대로 된 축하를 받을 수 있었다.

이 홈런은 그의 커리어 마지막 홈런이기도 했다. 1997 시즌이 끝난 뒤 OB는 이보형을 방출했다.

한편 1996 시즌 롯데는 57승이나 거두며 5위를 차지했다.

이 시즌 롯데가 꼴찌의 영예(?)를 차지했다면 2000년대 프로야구 역사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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