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는 스포츠가 공용어입니다.


❝스포츠에서 유일한 것이 승리라면 이기는 그 순간 다시 경합을 벌여야겠다는 욕구는 사라질 것이다. 그렇다면 마이클 조던과 로저 클레멘스가 나이 마흔에 계속 경쟁을 벌였던 사실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 '소크라테스 야구장에 가다' 中에서

TV중계가 있는 날이면 그는 이해하기 힘든 행동을 했다. 바쁜 일정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아침부터 목욕탕에 가서 시간을 보내는가 하면, 타석에 들어서서 절대 초구를 치지 않았다. 수비를 하는 중에 모자가 날아가자 공보다 모자를 먼저 주운 적도 있다. 그의 이해할 수 없는 행동 때문에 감독과 동료 선수들이 속을 많이 태웠다.

하지만 알고 보면 그것은 팬들을 위한 그만의 서비스였다. 팬들에게 깔끔하게 보이고 싶었고, TV 화면에 더 많이 나와(초구를 치면 자신의 모습이 나가는 시간이 줄어들기 때문에) 팬들이 자신의 모습을 조금이라도 더 볼 수 있게 하고 싶었다.

- 'The Golf' 2008년 3월호 '야구 코치 혹은 골프지도자' 김우열

요즘은 거의 모든 프로야구 경기가 스포츠 채널을 통해 생중계되지만 김우열이 활약하던 때만 해도 TV중계는 드문 일이었다.

하지만 여전히 선수들은 TV 출연을 사랑한다.

'오빠 부대'의 상징 SK 김재현이 이번 시즌 364 타석 중 초구에 방망이를 휘두른 것은 11%(40번)뿐이다.

김재현은 "이제는 여성 팬들이 보낸 속옷을 입지 않는다"고 강조한 뒤 "초구를 그냥 흘려보내는 건 장모님이 사준 외제차를 몰고 싶은 마음과 맞서 싸우는 일"이라고 전했다.

그는 "여전히 내 멋진 미소를 보고 싶어하는 여성 팬들이 많은 건 사실"이라며 웃었다.

한 케이블채널 관계자는 "김재현이 타석에 들어서면 순간 시청률이 다소 올라간다"면서 "여고생이 잠실 구장을 찾으면 '김재현 보러 왔냐'고 묻던 때만큼은 아니어도 여전히 그만한 선수는 아무도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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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이 뜬 걸 잘 몰라줘 TV 출연에 매달리는 선수도 있다.

만성 간염을 딛고 골든글러브 후보로 성장한 KIA 김원섭은 "인터넷 기사를 검색해 봤더니 내 얘기보다 씨앤비뉴스 김원섭 편집국장 기사가 더 많았다"며 "하지만 TV 출연 시간은 전혀 다른 얘기"라며 너스레를 떨었다.

김원섭은 이번 시즌 타석에 들어서면 10번 중 9번(89.1%)은 초구를 그냥 흘려보냈다.

병역 비리로 인한 긴 공백을 이겨낸 롯데 조성환도 뒤지지 않는다. 조성환은 초구 스트라이크를 200번이나 그냥 흘려보냈다.

조성환은 "(히어로즈 마스코트인) 턱돌이보다 TV에 자주 또 오래 나오는 게 목표"라며 "올해 수비에서 허점을 드러낸 것도 TV에 더 잡히고 싶었기 때문"이라고 털어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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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같은 팀 가르시아는 "그런 건 소인배들의 짓"이라고 일침을 놓는다.

삼진도 스스로 선택하기로 유명한 가르시아는 통역을 통해 "방망이 한 자루만 부러뜨리면 초구를 그냥 흘려보내는 것보다 더 오래 TV에 나오게 된다"며 "차라리 홈런을 날리거나 타점을 올리는 편이 훨씬 오래 화면에 나온다"고 전했다.

가르시아는 이번 시즌 유일하게 초구 절반에 절반 이상(50.3%) 방망이를 휘두른 타자다. 그가 초구 스트라이크를 그냥 흘려보낸 것도 10% 미만(9.6%)이다.

국내 선수 중에선 송지만이 으뜸이다.

송지만은 "일부에서는 ‘남의 초구를 탐하지 말라’는 말도 하지만 그건 내 기록을 몰라서 하는 소리"라며 "제발 초구에 치기 좋은 공이 오게 해달라고 매일 기도한다. TV 출연 때문에 연봉을 깎일 수는 없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송지만은 초구를 때렸을 때 타율 3할7푼6리를 기록했다. 송지만의 시즌 평균 타율은 2할8푼이었다.

SK 포수 박경완은 "초구나 두번째 공이 날아올 때 타자들의 움직임을 보면 '아, 이 선수가 변화구를 노리는구나' 싶을 때가 있다. 경험을 이용해 감으로 느끼는 것"이라며 "베테랑 타자 중에 일부는 이를 역이용하기도 한다"고 전했다.

이번 시즌 전체 타자들이 초구를 때렸을 때 타율은 3할2푼8리(4812타수 1580안타)로 초구부터 10구까지 비교했을 때 가장 높았다.

반면 타자들이 가장 많이 타격에 나선 네 번째 볼(전체 3만4008타수 중 6307)은 2할3푼7리밖에 되지 않았다.

※본문에 등장하는 숫자는 100% 확인된 숫자지만, 선수들의 멘트는 박경완을 제외하면 모조리 픽션임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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