깡패 타선, 뻥 야구, 골든 글러브 세 명 수상. 하지만 사실은 이보다 해설위원 조성민을 선수로 만든 것을 비롯해 볼빨간 감독님의 재활용 능력이 빛을 발했던 한화의 2005 시즌 리뷰입니다.
오탈자 지적 대 환영입니다. 그밖의 내용 지적도 대환영!
# 0. 믿음의 결실
이번 시즌 한화의 수훈갑은 누구일까? FA 신청할 때가 지나지 않았나 싶은 데이비스? '승엽이 형이 없을 때 받게 되어서 아쉽다.'는 마음에 드는 수상 소감을 밝힌 김태균? 아니면 '공인' 이범호? (덕아웃 참조) 이들 모두 리그 최고 수준의 활약을 펼친 게 맞지만, 개인적 기준으로는 이들 모두 탈락이다. 이 팀을 성공으로 이끈 주인공은 다름 아닌 이 팀의 수장 '볼빨간' 김인식 감독이다.
한화는 지난 시즌에 비해 이번 시즌 별다른 전력 보강이 없었다. 아니, 없어 보였다. 하지만 기아에서 이렇다할 활약을 펼쳐 보이지 못했던 김인철은 한화에서 두자릿수 홈런을 기록했고, SK의 풍족한 외야 자원 사이에서 자리를 잡지 못하고 있던 조원우는 한화에서 출루율 .370을 넘기며 리드오프 역할을 톡톡히 수행해 냈다. 문동환은 제 2의 전성기를 열어가는 듯 보이고, 데이비스는 순한 양이 돼 버렸다. 이 모두가 德將 김인식 감독의 영향이다.
# 1. 약한 강팀?
기록에서 드러나듯, 이번 시즌 한화는 사실 상위 세 팀과 동급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물론 시즌 말미에 전력을 다한 경기를 펼치지 않은 탓도 있겠지만, 기본적인 득점실점 차이가 상위 세 팀에 비해 쳐진다. 실제로 그 결과 5할 승률에서 불과 세 경기 앞서있을 뿐이다. 그럼에도 준-플레이오프에서 8.5 경기차나 나는 SK를 꺾어 버렸다. 그 힘은 어디서 비롯됐을까? 아니, 시즌 전체를 이끌어 온 이 팀의 진짜 장점은 무엇일까?
# 2. 뻥야구, 뻥야구, 뻥야구
이 질문의 해답은 사실 너무도 뻔하다. 다름 아닌, 공격력. 이번 시즌 한화를 떠올릴 때 자연스레 연상되는 낱말은 '뻥야구' 혹은 '깡패 타선'이다. 기록상 한화는 리그 평균과 비교해 무려 61점이나 더 생산해 냈다. 약 6승 정도의 추가 승수가 타선의 몫이었다는 뜻이다. 반면 수비진은 28점을 더 실점했다. 약 2~3승 정도의 손해. 무승부를 감안하면 충분히 예측이 가능한 승률이다.
-1. 깡패 타선
공격에 대해 좀더 알아보자. 총득점 1위가 말해주듯 이 팀은 시즌 내내 강한 공격력을 선보였다. .270/ .341/ .434를 기록한 타격 라인은 상대를 공포에 떨기에 충분한 기록이다. 특히 .434에 달하는 장타력은 리그 2위 SK에 비해 31포인트나 앞선 수치다. 순수한 장타력을 보여주는 ISO에 있어서도 .164를 기록 2위 현대에 21포인트나 앞섰다. 팀 홈런(159) 1위, 팀 2루타(211) 1위 등을 기록한 결과물이다. 또한 팀 GPA(.262), OPS(.775)에서도 모두 1를 차지했다. 말 그대로 '깡패 타선'이라 불릴 만했다.
득점 분포를 살펴보면, 리그 평균 득점보다 높은 5 득점 이상을 기록한 경기가 58 경기에 달한다. 이는 전체 경기의 46% 수준이다. 그리고 이 경기에서 .810의 뛰어난 승률을 기록했다. 경기 분포 비율이나 해당 승률 모두 리그 평균에 비해 20 포인트 가량 높은 기록이다. 그만큼 많은 득점을 올린 경기가 많았고, 또 많은 득점을 올린 경기에서 많은 승수를 챙겨갔다는 뜻이다. '뻥야구'가 제대로 구현된 셈이다.
따라서 자연히 희생번트라는 수단이 그리 많이 필요하지 않았다. 어쩌면 희생번트를 지시하지 않은 결과로 '뻥야구'가 구현됐는지도 모를 일이다. 이번 시즌 한화 타자들이 기록한 희생번트는 고작 29개, '87 삼성(26) '82 해태(28)리그 역대 최소 3위 기록이다. 참고로 '82 시즌의 팀당 경기수는 80 경기였고, '87년도에는 108 경기였다. 김인식 감독이 얼마나 희생번트를 아끼고 또 아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공격에서만큼은 확실히 그의 믿음이 풍족한 결실을 맺을 수 있었다.
-2 ; 다소 아쉬운 수비
반면 수비는 공격만큼 완벽하지 못했다. 실점은 최다 4위로 리그 평균에 비해 떨어진다. 무엇보다 안타를 많이 맞은 것이 문제였다. .279에 달하는 팀 피안타율은 LG(.283)에 이어 두 번째로 높은 수치다. 하지만 고무적인 것은 생각보다 그리 많은 장타를 허용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대전이 홈런과 2루타 수가 늘어나는 구장이라는 걸 감안하면 이는 충분히 칭찬받을 만한 점이다.
전체 안타 가운데 장타의 비율을 보여주는 XBH%는 26.3%, 이는 두산의 23.5%에 이은 리그 2위 기록이다. 피안타는 1193개나 얻어맞으면서 LG(1212)에 이어 두 번째로 많았지만, 장타를 억제하는 데 있어선 나름 효율적인 면모를 보였던 것이다. 땅볼/뜬공 비율을 확인해 보면 어느 정도 이런 추세를 느낄 수 있다. 1.15를 기록한 GO/AO 비율은 리그 1위 롯데의 1.16과 별반 차이가 없는 기록이다. 그만큼 땅볼 유도가 많았기 때문에 장타를 억제할 수 있었다.
하지만 장타를 억제하는 것만으로 수비가 모두 끝난 건 아니다. 한화는 무려 110개의 에러를 남발하며 리그에서 가장 많은 실책수를 기록한 팀이다. 이 가운데 60개의 실책은 아웃으로 처리되었어야 할 타자 주자를 살려준 것이었다. 이는 롯데(62)에 이은 2위 기록이다. 특히 내야 수비의 핵이 되어야 했을 브리또 선수는 78경기밖에 나서지 않았으면서도 21개의 실책을 기록, 리그에서 가장 많은 실책을 저지른 선수로 기록됐다. 그밖에 주전 3루수 이범호 선수 역시 15개의 실책을 기록하며 한화의 좌측 내야를 불안하게 만들었다. 2루에서도 실책은 17개나 발생됐다.
하지만 내년 시즌 수비 문제는 다소 숨통이 트일 것으로 보인다. 솔리드한 수비로 알려진 김민재 선수를 SK로부터 영입했기 때문이다. (적어도, 확실히, 브리또의 유격수 수비보다는 나을 것이다.) 게다가 시즌 말미 백재호 선수와 함께 2루수로 번갈아 출장했던 한상훈 선수 점차 수비가 안정돼 가는 추세를 보여줬다는 점 역시 희망적이다. 데이비스가 버티고 있는 중견수, 그리고 이제 본궤도에 오른 포수 신경현까지. 미들 라인의 짜임새는 괜찮아 보인다. 조원우 선수는 그리 뛰어난 수비수라고 볼 수는 없지만, 그리 큰 손해를 끼친다고 볼 수는 없고, 고동진은 어깨 하나만큼은 수준급이다. 김태균과 이범호는 따로 언급할 필요가 없겠다.
# 3. 난 민이라고 해~
이어서 골든 글러브에서 세 부분을 차지할 정도로 뛰어난 활약을 선보인 한화 선수들에 대해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골든 글러브를 수상한 김태균, 이범호, 데이비스 외에도 SK에서 이적한 조원우, 시즌 중반까지도 말이 많았던 이도형 선수 등이 무시무시한 한화의 공격을 이끈 주역들이다. 이들부터 이야기하고 이어서 투수 이야기를 해보도록 하겠다. 먼저 辛라면 狂, 데이비스다.
이 선수는 이제 외국인 선수라는 생각이 잘 들지 않을 정도다. 이번 시즌 데이비스가 기록한 +38의 RCAA는 서튼(+45)에 이은 리그 2위 기록이다. 3위는 김태균이 기록한 +33. 두 선수의 수비 위치가 좌익수와 1루수라는 점까지 고려하자면, 데이비스의 활약은 실로 눈부셨다고 하겠다. 세이버메트릭스 초기 선수의 득점 공헌을 측정하는 한 지표로 쓰였던 (득점+타점-홈런)를 알아보면 152를 기록, 리그 전체 1위다. (물론 더 이상 쓰이지는 않는다. -_-) 내년까지 뛰고 은퇴를 하겠다는 발언을 들은 기억이 나는데, 벌써 은퇴라니 가당치도 않은 소리다. 아, 그리고 그 기자분 안 보시겠지만, 데이비스가 수비를 못하면 수비 잘하는 중견수는 누구인가요?
개인적으로 악바리 근성의 선수들을 선호하는 편이다. 본인의 성격이 그렇지 못한 탓이 가장 크겠지만, 팬들이 야구장을 찾고 야구 경기를 보는 목적은 선수들이 최고 플레이를 펼치는 광경을 보고 싶기 때문이라고 믿는다. 물론 최선이 언제나 최고로 연결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최선을 다하지 않고도 최고의 플레이를 선보일 수 있는 선수들은 몇 되지 않는다. 김태균 선수는 그런 의미에서 다소 안타깝다. 자신의 한계를 넘어서지 못하는 타입이라고 할까. 문학에서의 어이없는 주루사나 잠실에서 황당하게 아웃된 사례 등은 사실 그를 고까운 시선으로 보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골든 글러브 수상식장에서 남긴 소감은, 비록 말뿐이라 해도 그를 다시 보게 만들었다. 꼭 이승엽 선수를 뛰어 넘는 타자가 되길.
홈런을 무려 22개나 날리고, 74타점이나 기록한 타자가 같은 수의 아웃 카운트를 소비한 타자에 비해 6점밖에 더 생산하지 못했다? 이게 세이버매트릭스의 장점일 수도 있고, 거꾸로 안티-세이버 세력으로부터 비난을 받는 이유가 될 수도 있다. 하지만 .325라는 낮은 출루율은 그가 얼마나 많은 아웃을 기록했는지 반증하고 있다. 만약 딱 한가지 능력만으로 타자를 판단한다고 하면 여려분은 무엇을 고를 생각이신지? 개인적으로는 아웃을 당하지 않는 능력을 꼽고 싶다. 어차피 야구란 2/3나 아웃 당하는 타자들을 상대로 하는 경기니까, 죽지 않는 건 그만큼 중요하다.
사실 수려한 외모(?)와 특유의 눈 깜빡임으로 실력이 저평가된 경향이 있다. (정말 그럴까? -_-) 하지만 전경기를 출장한 3루수라는 것만으로도 칭찬 받아 마땅하다고 생각한다. 전경기를 출장했으니, 한번 이런 기록을 알아보는 건 어떨까? 이범호는 팀이 승리한 경기에서 .298/ .386/ .580 GPA .319 16 홈런 46 타점을 기록했다. 패한 경기에서는 .239/ .322/ .438 GPA .254 10홈런 22타점이었다. 또 이런 기록도 나왔다. 모두 9개의 몸에 맞는 볼을 기록했는데, 이긴 경기에서 8개, 진 경기에서는 하나밖에 맞지 않았다. 꼭 이기고 싶은 경기라면, 이범호 선수에게 한번 맞고 나가 보라는 사인을 내 보는 건 어떨지? -_-;
트레이드 성패를 단 한 시즌만에 논하기는 사실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미래의 마무리 투수라 일컬어지던 유망주와 노장 외야수를 바꾼 SK와 한화의 트레이드는, 이번 시즌만큼은 한화쪽의 손을 들어주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무엇보다 부족한 부분을 채웠다는 점에서 그렇다. 조원우 선수가 합류하기 전, 한화 1번 타순의 타격라인은 .238/ .313/ .339밖에 되지 않았다. 좌익수는 .253/ .310/ .387, 이후의 기록은 위에 나타난 바와 같다. 역시 달리기를 끊은 효과가 뛰어났다. (← 제 拙稿를 꾸준히 읽어 오신 분만 아실 발언 -_-)
이어서 투수진이다.
사실 한화에서 가장 잘 던진 투수는 최영필이다. 규정 이닝에 아깝게 미달했지만 112 이닝 동안 방어율 2.89를 기록하며 8승 8패 5세이브의 준수한 기록을 찍었다. 선발과 중간, 마무리를 오가며 전천후 활약을 펼쳤다. 또 한명의 '마당쇠'였던 셈이다. 특히 롯데戰에서 빼어난 성적을 올리며 확실한 롯데 킬러로 자리매김했다. 게다가 포스트 시즌에서 보여준 활약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다. 이제 그는 정말 무서운 투수가 돼 버렸다.
그리고 예전의 위용을 되찾은 문동환이다. 작년과 올해의 활약상을 비교해 보는 것만으로도, 그가 얼마나 달라졌는지 손쉽게 확인할 수 있다. 김원형 선수와 맞대결을 펼쳤던 문학 경기를 비롯해, 송진우 선수 이후 팀의 에이스 노릇을 담당하기에 충분할 정도로 전성기의 포스를 되찾아 가고 있는 듯하다. 다만 늘 아쉬운 건, 번트 타구를 수비하다 당한 부상의 여파인지, 투수앞 땅볼을 처리하는 데 있어 부자연스런 모습을 보일 때가 종종 있다는 것이다. 문동환 선수가 진정 에이스로 거듭나길 바란다면, 구단은 빨리 카페트에 조치를 취해야 한다.
이어서 꿈을 던진 지연규 선수. 정말 아무도 그가 이렇게 멋지게 재기할 줄은 몰랐을 것이다. 비록 38이닝밖에 던지지 않았고, 그나마 후반기에는 11이닝밖에 던지지 못했지만, 그가기록한 20 세이브가 없었다면 어땠을까? 특히 그는 대전에서 0.98의 방어율을 기록하며 특급 마무리로서의 위용을 보였다. 그에게 기대하는 바가 컸었을 대전 팬들은 올시즌 그의 활약을 보며 확실히 위안을 삼았을 것 같다. 얼마나 선수 생활이 더 연장될지 알 수 없지만, 적은 이닝이라도 계속 던져질 그의 꿈이 너무도 간절히 보고 싶다.
마지막은 역시나 송진우 선수다. '회장님' 송진우 선수는 이번 시즌에도 나이를 잊게 만드는 투구로 존경받을 만한 자기 관리를 다시 한번 자랑했다. 시즌 초반에는 우려가 존재했던 것도 사실이다. 63.6이닝 동안 방어율 5.09, 3승 6패의 초라한 성적으로 전반기를 마감했으니 그런 우려의 목소리가 들려오는 것도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여름을 맞으며 그는 달라지기 시작했다. 최고령 완봉 기록을 갈아치운 것은 물론, 64이닝 동안 방어율 2.53, 8승 1패의 빼어난 성적을 올렸다. 경기당 100개가 넘는 투구가 가능할 정도로 여전히 건강한 모습으로 말이다. 장종훈은 이제 말 그대로 '전설'이 됐다. 송진우 선수는 오래오래 '살아있는' 전설로 특유의 투구폼을 오래 볼 수 있길 희망한다.
# 3.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
별다른 전력 보강도 없었으면서, 오히려 RCAA +28을 기록했던 이영우라는 스타가 자리를 비웠음에도, 한화는 이번 시즌 기대 이상의 성적을 올렸다. 그 중심에는 '믿음의 야구'를 구사한 김인식 감독님의 역할이 누구보다 지대했다. 선수가 납득할 수 있을 때까지 끝없이 기회를 제공해 준 김 감독님이 아니었더라면, 순한 데이비스도, 지연규 선수의 재기 신화도, 어린 투수들의 성장도 모두 불가능했을 것이다. 조성민은 여전히 해설위원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김 감독님은 이 모든 걸 바꿔놓았다. 믿음이란 계속 참고 무식하게 기다리기만 하는 것이 아니다. 어르고 달래고 격려하고 때로는 꾸짖기도 하면서 자신의 최대치가 되도록 이끌어 주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김 감독님과 함께 할 이 팀의 미래는 더더욱 희망적으로 보인다. 불안한 내야 수비 역시 김민재 선수의 영입 효과가 나타난다면 확실히 안정적이 될 것으로 보인다.
이번 시즌 한화는 장종훈이라는 그들 최고의, 아니, 리그 최고의 스타를 영원히 그라운드에서 떠나보냈다. 한 시대를 찬란하게 장식했던 우리의 '홈런왕'은 그렇게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하지만 김태균, 이범호는 이제 팀의 중심으로 당당히 자리매김 했으며, 신주영, 윤규진, 윤근영 등 영건들의 활약도 뛰어났다. 그렇게 이번 시즌 한화는 '현재‘ 속에서 '과거'와 '미래'를 모두 맛본 뜻 깊은 한 시즌을 보냈다.
애석하게도 시간은 한 방향으로만 흐른다. 그래서 내년에 어떤 선수가 또 어떤 일을 낼지 아무도 알 수가 없다. 하지만 믿음은 한 방향으로만 흐르지 않는다. 믿음에는 보답이 따른다. 자신을 믿어주는 이를 위해선 목숨이라도 내놓는 것이 사나이들의 세계다. 그리고 누구보다 멋진 사내들이 어우려져 그깟 '공놀이'에 목숨을 거는 게 바로 야구판이다. 내년엔 또 누가 우리를 놀라게 할 김인식판 재활용품이 될지, 자못 기다려진다.
+
내년 시즌에도 9연전이 과연 있을 것인가? 위가 긴 쪽이 9연전이다.
이번 시즌 한화의 수훈갑은 누구일까? FA 신청할 때가 지나지 않았나 싶은 데이비스? '승엽이 형이 없을 때 받게 되어서 아쉽다.'는 마음에 드는 수상 소감을 밝힌 김태균? 아니면 '공인' 이범호? (덕아웃 참조) 이들 모두 리그 최고 수준의 활약을 펼친 게 맞지만, 개인적 기준으로는 이들 모두 탈락이다. 이 팀을 성공으로 이끈 주인공은 다름 아닌 이 팀의 수장 '볼빨간' 김인식 감독이다.
한화는 지난 시즌에 비해 이번 시즌 별다른 전력 보강이 없었다. 아니, 없어 보였다. 하지만 기아에서 이렇다할 활약을 펼쳐 보이지 못했던 김인철은 한화에서 두자릿수 홈런을 기록했고, SK의 풍족한 외야 자원 사이에서 자리를 잡지 못하고 있던 조원우는 한화에서 출루율 .370을 넘기며 리드오프 역할을 톡톡히 수행해 냈다. 문동환은 제 2의 전성기를 열어가는 듯 보이고, 데이비스는 순한 양이 돼 버렸다. 이 모두가 德將 김인식 감독의 영향이다.
# 1. 약한 강팀?
기록에서 드러나듯, 이번 시즌 한화는 사실 상위 세 팀과 동급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물론 시즌 말미에 전력을 다한 경기를 펼치지 않은 탓도 있겠지만, 기본적인 득점실점 차이가 상위 세 팀에 비해 쳐진다. 실제로 그 결과 5할 승률에서 불과 세 경기 앞서있을 뿐이다. 그럼에도 준-플레이오프에서 8.5 경기차나 나는 SK를 꺾어 버렸다. 그 힘은 어디서 비롯됐을까? 아니, 시즌 전체를 이끌어 온 이 팀의 진짜 장점은 무엇일까?
# 2. 뻥야구, 뻥야구, 뻥야구
이 질문의 해답은 사실 너무도 뻔하다. 다름 아닌, 공격력. 이번 시즌 한화를 떠올릴 때 자연스레 연상되는 낱말은 '뻥야구' 혹은 '깡패 타선'이다. 기록상 한화는 리그 평균과 비교해 무려 61점이나 더 생산해 냈다. 약 6승 정도의 추가 승수가 타선의 몫이었다는 뜻이다. 반면 수비진은 28점을 더 실점했다. 약 2~3승 정도의 손해. 무승부를 감안하면 충분히 예측이 가능한 승률이다.
-1. 깡패 타선
공격에 대해 좀더 알아보자. 총득점 1위가 말해주듯 이 팀은 시즌 내내 강한 공격력을 선보였다. .270/ .341/ .434를 기록한 타격 라인은 상대를 공포에 떨기에 충분한 기록이다. 특히 .434에 달하는 장타력은 리그 2위 SK에 비해 31포인트나 앞선 수치다. 순수한 장타력을 보여주는 ISO에 있어서도 .164를 기록 2위 현대에 21포인트나 앞섰다. 팀 홈런(159) 1위, 팀 2루타(211) 1위 등을 기록한 결과물이다. 또한 팀 GPA(.262), OPS(.775)에서도 모두 1를 차지했다. 말 그대로 '깡패 타선'이라 불릴 만했다.
득점 분포를 살펴보면, 리그 평균 득점보다 높은 5 득점 이상을 기록한 경기가 58 경기에 달한다. 이는 전체 경기의 46% 수준이다. 그리고 이 경기에서 .810의 뛰어난 승률을 기록했다. 경기 분포 비율이나 해당 승률 모두 리그 평균에 비해 20 포인트 가량 높은 기록이다. 그만큼 많은 득점을 올린 경기가 많았고, 또 많은 득점을 올린 경기에서 많은 승수를 챙겨갔다는 뜻이다. '뻥야구'가 제대로 구현된 셈이다.
따라서 자연히 희생번트라는 수단이 그리 많이 필요하지 않았다. 어쩌면 희생번트를 지시하지 않은 결과로 '뻥야구'가 구현됐는지도 모를 일이다. 이번 시즌 한화 타자들이 기록한 희생번트는 고작 29개, '87 삼성(26) '82 해태(28)리그 역대 최소 3위 기록이다. 참고로 '82 시즌의 팀당 경기수는 80 경기였고, '87년도에는 108 경기였다. 김인식 감독이 얼마나 희생번트를 아끼고 또 아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공격에서만큼은 확실히 그의 믿음이 풍족한 결실을 맺을 수 있었다.
-2 ; 다소 아쉬운 수비
반면 수비는 공격만큼 완벽하지 못했다. 실점은 최다 4위로 리그 평균에 비해 떨어진다. 무엇보다 안타를 많이 맞은 것이 문제였다. .279에 달하는 팀 피안타율은 LG(.283)에 이어 두 번째로 높은 수치다. 하지만 고무적인 것은 생각보다 그리 많은 장타를 허용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대전이 홈런과 2루타 수가 늘어나는 구장이라는 걸 감안하면 이는 충분히 칭찬받을 만한 점이다.
전체 안타 가운데 장타의 비율을 보여주는 XBH%는 26.3%, 이는 두산의 23.5%에 이은 리그 2위 기록이다. 피안타는 1193개나 얻어맞으면서 LG(1212)에 이어 두 번째로 많았지만, 장타를 억제하는 데 있어선 나름 효율적인 면모를 보였던 것이다. 땅볼/뜬공 비율을 확인해 보면 어느 정도 이런 추세를 느낄 수 있다. 1.15를 기록한 GO/AO 비율은 리그 1위 롯데의 1.16과 별반 차이가 없는 기록이다. 그만큼 땅볼 유도가 많았기 때문에 장타를 억제할 수 있었다.
하지만 장타를 억제하는 것만으로 수비가 모두 끝난 건 아니다. 한화는 무려 110개의 에러를 남발하며 리그에서 가장 많은 실책수를 기록한 팀이다. 이 가운데 60개의 실책은 아웃으로 처리되었어야 할 타자 주자를 살려준 것이었다. 이는 롯데(62)에 이은 2위 기록이다. 특히 내야 수비의 핵이 되어야 했을 브리또 선수는 78경기밖에 나서지 않았으면서도 21개의 실책을 기록, 리그에서 가장 많은 실책을 저지른 선수로 기록됐다. 그밖에 주전 3루수 이범호 선수 역시 15개의 실책을 기록하며 한화의 좌측 내야를 불안하게 만들었다. 2루에서도 실책은 17개나 발생됐다.
하지만 내년 시즌 수비 문제는 다소 숨통이 트일 것으로 보인다. 솔리드한 수비로 알려진 김민재 선수를 SK로부터 영입했기 때문이다. (적어도, 확실히, 브리또의 유격수 수비보다는 나을 것이다.) 게다가 시즌 말미 백재호 선수와 함께 2루수로 번갈아 출장했던 한상훈 선수 점차 수비가 안정돼 가는 추세를 보여줬다는 점 역시 희망적이다. 데이비스가 버티고 있는 중견수, 그리고 이제 본궤도에 오른 포수 신경현까지. 미들 라인의 짜임새는 괜찮아 보인다. 조원우 선수는 그리 뛰어난 수비수라고 볼 수는 없지만, 그리 큰 손해를 끼친다고 볼 수는 없고, 고동진은 어깨 하나만큼은 수준급이다. 김태균과 이범호는 따로 언급할 필요가 없겠다.
# 3. 난 민이라고 해~
이어서 골든 글러브에서 세 부분을 차지할 정도로 뛰어난 활약을 선보인 한화 선수들에 대해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골든 글러브를 수상한 김태균, 이범호, 데이비스 외에도 SK에서 이적한 조원우, 시즌 중반까지도 말이 많았던 이도형 선수 등이 무시무시한 한화의 공격을 이끈 주역들이다. 이들부터 이야기하고 이어서 투수 이야기를 해보도록 하겠다. 먼저 辛라면 狂, 데이비스다.
이 선수는 이제 외국인 선수라는 생각이 잘 들지 않을 정도다. 이번 시즌 데이비스가 기록한 +38의 RCAA는 서튼(+45)에 이은 리그 2위 기록이다. 3위는 김태균이 기록한 +33. 두 선수의 수비 위치가 좌익수와 1루수라는 점까지 고려하자면, 데이비스의 활약은 실로 눈부셨다고 하겠다. 세이버메트릭스 초기 선수의 득점 공헌을 측정하는 한 지표로 쓰였던 (득점+타점-홈런)를 알아보면 152를 기록, 리그 전체 1위다. (물론 더 이상 쓰이지는 않는다. -_-) 내년까지 뛰고 은퇴를 하겠다는 발언을 들은 기억이 나는데, 벌써 은퇴라니 가당치도 않은 소리다. 아, 그리고 그 기자분 안 보시겠지만, 데이비스가 수비를 못하면 수비 잘하는 중견수는 누구인가요?
개인적으로 악바리 근성의 선수들을 선호하는 편이다. 본인의 성격이 그렇지 못한 탓이 가장 크겠지만, 팬들이 야구장을 찾고 야구 경기를 보는 목적은 선수들이 최고 플레이를 펼치는 광경을 보고 싶기 때문이라고 믿는다. 물론 최선이 언제나 최고로 연결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최선을 다하지 않고도 최고의 플레이를 선보일 수 있는 선수들은 몇 되지 않는다. 김태균 선수는 그런 의미에서 다소 안타깝다. 자신의 한계를 넘어서지 못하는 타입이라고 할까. 문학에서의 어이없는 주루사나 잠실에서 황당하게 아웃된 사례 등은 사실 그를 고까운 시선으로 보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골든 글러브 수상식장에서 남긴 소감은, 비록 말뿐이라 해도 그를 다시 보게 만들었다. 꼭 이승엽 선수를 뛰어 넘는 타자가 되길.
홈런을 무려 22개나 날리고, 74타점이나 기록한 타자가 같은 수의 아웃 카운트를 소비한 타자에 비해 6점밖에 더 생산하지 못했다? 이게 세이버매트릭스의 장점일 수도 있고, 거꾸로 안티-세이버 세력으로부터 비난을 받는 이유가 될 수도 있다. 하지만 .325라는 낮은 출루율은 그가 얼마나 많은 아웃을 기록했는지 반증하고 있다. 만약 딱 한가지 능력만으로 타자를 판단한다고 하면 여려분은 무엇을 고를 생각이신지? 개인적으로는 아웃을 당하지 않는 능력을 꼽고 싶다. 어차피 야구란 2/3나 아웃 당하는 타자들을 상대로 하는 경기니까, 죽지 않는 건 그만큼 중요하다.
사실 수려한 외모(?)와 특유의 눈 깜빡임으로 실력이 저평가된 경향이 있다. (정말 그럴까? -_-) 하지만 전경기를 출장한 3루수라는 것만으로도 칭찬 받아 마땅하다고 생각한다. 전경기를 출장했으니, 한번 이런 기록을 알아보는 건 어떨까? 이범호는 팀이 승리한 경기에서 .298/ .386/ .580 GPA .319 16 홈런 46 타점을 기록했다. 패한 경기에서는 .239/ .322/ .438 GPA .254 10홈런 22타점이었다. 또 이런 기록도 나왔다. 모두 9개의 몸에 맞는 볼을 기록했는데, 이긴 경기에서 8개, 진 경기에서는 하나밖에 맞지 않았다. 꼭 이기고 싶은 경기라면, 이범호 선수에게 한번 맞고 나가 보라는 사인을 내 보는 건 어떨지? -_-;
트레이드 성패를 단 한 시즌만에 논하기는 사실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미래의 마무리 투수라 일컬어지던 유망주와 노장 외야수를 바꾼 SK와 한화의 트레이드는, 이번 시즌만큼은 한화쪽의 손을 들어주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무엇보다 부족한 부분을 채웠다는 점에서 그렇다. 조원우 선수가 합류하기 전, 한화 1번 타순의 타격라인은 .238/ .313/ .339밖에 되지 않았다. 좌익수는 .253/ .310/ .387, 이후의 기록은 위에 나타난 바와 같다. 역시 달리기를 끊은 효과가 뛰어났다. (← 제 拙稿를 꾸준히 읽어 오신 분만 아실 발언 -_-)
이어서 투수진이다.
사실 한화에서 가장 잘 던진 투수는 최영필이다. 규정 이닝에 아깝게 미달했지만 112 이닝 동안 방어율 2.89를 기록하며 8승 8패 5세이브의 준수한 기록을 찍었다. 선발과 중간, 마무리를 오가며 전천후 활약을 펼쳤다. 또 한명의 '마당쇠'였던 셈이다. 특히 롯데戰에서 빼어난 성적을 올리며 확실한 롯데 킬러로 자리매김했다. 게다가 포스트 시즌에서 보여준 활약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다. 이제 그는 정말 무서운 투수가 돼 버렸다.
그리고 예전의 위용을 되찾은 문동환이다. 작년과 올해의 활약상을 비교해 보는 것만으로도, 그가 얼마나 달라졌는지 손쉽게 확인할 수 있다. 김원형 선수와 맞대결을 펼쳤던 문학 경기를 비롯해, 송진우 선수 이후 팀의 에이스 노릇을 담당하기에 충분할 정도로 전성기의 포스를 되찾아 가고 있는 듯하다. 다만 늘 아쉬운 건, 번트 타구를 수비하다 당한 부상의 여파인지, 투수앞 땅볼을 처리하는 데 있어 부자연스런 모습을 보일 때가 종종 있다는 것이다. 문동환 선수가 진정 에이스로 거듭나길 바란다면, 구단은 빨리 카페트에 조치를 취해야 한다.
이어서 꿈을 던진 지연규 선수. 정말 아무도 그가 이렇게 멋지게 재기할 줄은 몰랐을 것이다. 비록 38이닝밖에 던지지 않았고, 그나마 후반기에는 11이닝밖에 던지지 못했지만, 그가기록한 20 세이브가 없었다면 어땠을까? 특히 그는 대전에서 0.98의 방어율을 기록하며 특급 마무리로서의 위용을 보였다. 그에게 기대하는 바가 컸었을 대전 팬들은 올시즌 그의 활약을 보며 확실히 위안을 삼았을 것 같다. 얼마나 선수 생활이 더 연장될지 알 수 없지만, 적은 이닝이라도 계속 던져질 그의 꿈이 너무도 간절히 보고 싶다.
마지막은 역시나 송진우 선수다. '회장님' 송진우 선수는 이번 시즌에도 나이를 잊게 만드는 투구로 존경받을 만한 자기 관리를 다시 한번 자랑했다. 시즌 초반에는 우려가 존재했던 것도 사실이다. 63.6이닝 동안 방어율 5.09, 3승 6패의 초라한 성적으로 전반기를 마감했으니 그런 우려의 목소리가 들려오는 것도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여름을 맞으며 그는 달라지기 시작했다. 최고령 완봉 기록을 갈아치운 것은 물론, 64이닝 동안 방어율 2.53, 8승 1패의 빼어난 성적을 올렸다. 경기당 100개가 넘는 투구가 가능할 정도로 여전히 건강한 모습으로 말이다. 장종훈은 이제 말 그대로 '전설'이 됐다. 송진우 선수는 오래오래 '살아있는' 전설로 특유의 투구폼을 오래 볼 수 있길 희망한다.
# 3.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
별다른 전력 보강도 없었으면서, 오히려 RCAA +28을 기록했던 이영우라는 스타가 자리를 비웠음에도, 한화는 이번 시즌 기대 이상의 성적을 올렸다. 그 중심에는 '믿음의 야구'를 구사한 김인식 감독님의 역할이 누구보다 지대했다. 선수가 납득할 수 있을 때까지 끝없이 기회를 제공해 준 김 감독님이 아니었더라면, 순한 데이비스도, 지연규 선수의 재기 신화도, 어린 투수들의 성장도 모두 불가능했을 것이다. 조성민은 여전히 해설위원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김 감독님은 이 모든 걸 바꿔놓았다. 믿음이란 계속 참고 무식하게 기다리기만 하는 것이 아니다. 어르고 달래고 격려하고 때로는 꾸짖기도 하면서 자신의 최대치가 되도록 이끌어 주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김 감독님과 함께 할 이 팀의 미래는 더더욱 희망적으로 보인다. 불안한 내야 수비 역시 김민재 선수의 영입 효과가 나타난다면 확실히 안정적이 될 것으로 보인다.
이번 시즌 한화는 장종훈이라는 그들 최고의, 아니, 리그 최고의 스타를 영원히 그라운드에서 떠나보냈다. 한 시대를 찬란하게 장식했던 우리의 '홈런왕'은 그렇게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하지만 김태균, 이범호는 이제 팀의 중심으로 당당히 자리매김 했으며, 신주영, 윤규진, 윤근영 등 영건들의 활약도 뛰어났다. 그렇게 이번 시즌 한화는 '현재‘ 속에서 '과거'와 '미래'를 모두 맛본 뜻 깊은 한 시즌을 보냈다.
애석하게도 시간은 한 방향으로만 흐른다. 그래서 내년에 어떤 선수가 또 어떤 일을 낼지 아무도 알 수가 없다. 하지만 믿음은 한 방향으로만 흐르지 않는다. 믿음에는 보답이 따른다. 자신을 믿어주는 이를 위해선 목숨이라도 내놓는 것이 사나이들의 세계다. 그리고 누구보다 멋진 사내들이 어우려져 그깟 '공놀이'에 목숨을 거는 게 바로 야구판이다. 내년엔 또 누가 우리를 놀라게 할 김인식판 재활용품이 될지, 자못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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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년 시즌에도 9연전이 과연 있을 것인가? 위가 긴 쪽이 9연전이다.
오탈자 지적 대 환영입니다. 그밖의 내용 지적도 대환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