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는 스포츠가 공용어입니다.


❝스포츠에서 유일한 것이 승리라면 이기는 그 순간 다시 경합을 벌여야겠다는 욕구는 사라질 것이다. 그렇다면 마이클 조던과 로저 클레멘스가 나이 마흔에 계속 경쟁을 벌였던 사실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 '소크라테스 야구장에 가다' 中에서



'I'm constantly amazed at her disposition. She's uncomfortable, she's having a hard time … but yet, she's got a smile for you. I'm really blessed to have a child like her.'

‘저희 딸아이는 너무도 쉽게 병에 걸려요. 저는 그로부터 놀라운 경이를 느낍니다. 저희 딸은 편안치가 못해요,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죠. … 하지만, 그 아이는 우릴 보고 웃어주곤 해요. 주님이 이런 딸을 제게 주셨다는 건, 정말 은총 받은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 John Olerud, on his daughter Jordan (with glasses, sitting with mom Kelly and her siblings, Jessica and Garrett) (Globe Staff Photo / Jim Davis)

- 그의 딸 조던에 대해 존 올러루드 (안경 낀 아이가 조던이다. 엄마인 켈리, 그리고 그의 여동생/오빠 제시카와 개럿이다.)


Growing family

Oleruds' faith helps them cope with their daughter's illness
By Adam Kilgore,

He wanted so badly to explain why the man with the needle was hurting her. He knew he could not.

그는 주사 바늘을 든 남자가 왜 아프게 해야 하는지 자기 딸에게 설명하고 싶어 안달이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이 설명할 수 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Instead, John Olerud blocked out his anguish and held down his daughter Jordan as she squirmed on a doctor's table, being prodded repeatedly. Jordan Olerud had already spent too much of her first three years in a hospital; she certainly didn't deserve this.

그 대신, 존 올러루드는 자신의 슬픔을 감춘 채 진료대 위에서 발버둥치는 딸을 붙들어 잡고 있었다. 주사 바늘이 자꾸만 딸아이를 찔렀다. 존 올러루드의 딸, 조던은 세 살이 될 때까지 아주 많은 시간을 병원에서 보냈다. 이 시간은 확실히 어린 아이가 감당하기에 너무도 힘들고 긴 시간이었다.

The doctor was trying to inject an IV, but Jordan's tiny veins wouldn't cooperate. He tried her wrists. Her feet. The inside of her elbows. Nothing. She was crying, writhing in pain. Olerud held her as, finally, the doctor planted the IV in the middle of Jordan's forehead.

의사는 조던에게 항생제를 놓으려 시도했다. 하지만 조던의 얇은 혈관은 너무도 희미했다. 팔에서도, 발에서도, 팔꿈치 안쪽에서도 혈관을 쉽사리 찾을 수가 없었다. 아이는 고통으로 몸을 비틀며 울었다. 마침내 의사가 조던의 이마 한 가운데 주사 바늘을 꽂을 때 아빠가 딸을 꼭 붙잡았다.

Olerud stared at the look on his daughter's face. What it said stabbed him in the heart.

올러루드는 딸아이의 얼굴 표정을 바라본다. 마치 자기 심장에 바늘이 꽂히는 것만 같다.

What's going on? I thought you were my dad, protecting me, and you're holding me down and allowing them to poke me? How can you say you love me and let somebody do this?

무슨 일이에요, 아빠? 난 당신을 내 아빠라고 생각했어요, 날 보호해줄 사람 말이에요. 그런데 당신을 날 꼭 붙들고는 다른 사람들이 날 찌르게 도와주는 거예요? 그러면서 어떻게 내게 사랑한다고 말할 수가 있어요? 다른 사람들이 내게 이런 일을 하도록 내버려 두면서 말이에요?

This is the feeling, the helplessness, that parents of special needs children experience, and John Olerud knows this. Olerud, a 36-year-old veteran first baseman who joined the Red Sox May 26 after signing a minor league contract earlier in the month, has lived it for four years, raising Jordan with his wife, Kelly.

이 아픈 마음은, 그 무엇도 아닌 무력감이다. 희귀병 아이를 둔 부모들이 겪는 바로 그 아픈 마음. 존 올러루드는 이 느낌을 알고 있다. 이 36살의 베테랑 1루수는 이런 감정 속에서 4년이나 살았다. 자신의 아내 켈리와 함께, 딸 조던을 키워 온 그 시간 동안 말이다.

Jordan was born in August of 2000 with a unique syndrome called tri-some 2p, 5p-. She has an extra second chromosome and is missing part of her fifth chromosome, a condition that left with her with a confluence of birth defects that affects almost all of her bodily functions.

조던은 2000년 8월에 태어났다. 이 꼬마 숙녀는 태어날 때부터 독특한 선천성 질병을 앓고 있었다. 조던에게는 2번 유전자가 하나 더 있었고, 5번 유전자의 특정 부분이 부족했다. 그결과 신진 대사 거의 대부분에 걸쳐 많은 문제를 갖고 있었다.

Jordan eats through a tube and needed a feeding pump her first two years. She cannot walk yet and only says an occasional "yes" or "no."

조던은 두 살 때까지 튜브와 거기 음식을 공급해주는 특별한 펌프를 통해 영양분을 섭취했다. 이 꼬마는 여전히 걸음마를 떼지 못했다. 그리고 이따금 “네”, “아니요.” 하고 말하는 게 말할 수 있는 낱말의 전부다.

She's undergone five surgeries and roughly a half-dozen other major medical procedures, including having ear tubes implanted. The Oleruds have taken her to doctors for her respiratory and pulmonary systems, taken her to cardiologists, neural surgeons, regular surgeons, and gastrointestinal doctors. They've been to just about every department at Children's Hospital of Seattle, where Jordan was born while John played for the Mariners.

그녀는 지금까지 다섯 번을 수술을 치렀고, 귀에 특수한 튜브를 삽입한 것을 포함해 예닐곱 번의 또 다른 중요한 치료 과정을 거쳤다. 올러루드 부부는 호흡기내과, 심장내과, 신경외과, 일반외과, 소화기외과 등 안 가본 곳이 없다. 조던이 태어난 시애틀의 소아과에 있는 모든 진료부서는 다 돌아다닌 셈이다. 존 올러루드가 매리너스에서 뛰고 있을 때 일이다.

"You never expect something like that to happen," Olerud said. "You figure you're going to have healthy kids. Just not knowing what to expect down the road, what sort of life our daughter is going to have.

“이런 일이 일어날 거라고 절대 예상하지 못했어요,” 올러루드의 말이다. “건강한 아이가 태어날 거라고 생각했죠. 바로 코앞에 벌어질 일도 모르는 게 인생이잖아요, 그런 일이 우리에게도 생긴 거예요. 바로 우리 딸 아이 말이죠.”

"It's tough. It's still tough."

“힘들어요, 여전히 힘들죠.”

While caring for Jordan over the past two years, Olerud has endured the roughest stretch of his rock-solid career, overcoming a career-threatening injury and wondering if there was a team that wanted him.

지난 2년 남짓, 조던을 돌보는 한편, 올러루드는 자신의 순탄했던 야구 인생에 찾아든 시련과도 맞서 싸워야 했다. 선수 생명을 위협하는 부상을 이겨내야 했으며, 자신을 원하는 팀도 알아봐야 알아봐야 했다.

Olerud never planned for any of that four years ago. His wife and 2-year-old son, Garrett, were happy and healthy. Olerud never thought he'd leave Seattle, never dreamed he'd be spending the next four years living in and out of hospitals on both sides on the country.

4년 전만 해도 이런 일은 전혀 예상 밖이었다. 그의 아내, 그리고 두 살배기 아들 개럿과 함께 존 올러루드는 건강하고 화목한 가정을 꾸리고 있었다. 그는 자신이 시애틀을 떠나게 되리라는 사실도 몰랐고, 다음 4년간을 병원을 오가는 생활을 해야 될지도 몰랐다. 그것도 미주 대륙의 양쪽 끝 모두를 오가며 말이다.


Small steps
Then came Jordan. When she was born, geneticists tried to find matches for Jordan's condition. There were none.

그때 조던이 세상에 태어났다. 아이가 태어났을 때, 유전학자들은 조던의 조건에 맞는 유전자 조합을 찾으려 애썼다. 하지만 하나도 없었다.

It's nearly impossible to know her potential, or how her defects will affect her as she ages. Deeply religious, the Oleruds contend with the uncertainty the only way they can -- faith.

아이가 앞으로 어떻게 될지, 혹은 성장에 따라 앞으로 어떤 영향을 받게 될지, 거의 아무 것도 알 수가 없었다. 독실한 신자로서, 올러루드 가족이 이런 불확실성에 맞설 수 있는 수단은 딱 하나뿐이었다. 그것은 신앙심이었다.

"We believe God has control of all things," Olerud said. "I don't think Jordan's a mistake by any means. We really don't know what it's going to be for her. Because she doesn't fit into those syndromes where they can say most kids are usually at this point, it's kind of in the Lord's hands."

“저희는 주님께서 모든 것에 관여하신다고 생각합니다,” 올러루드의 말이다. “전 결코 조던이 신께서 실수하신 게 아니라고 생각해요. 앞으로 이 아이에게 무슨 일이 벌어질지는 도무지 모르는 일이죠. 다른 아이들 같으면 벌써 했을 일들도 아직 하나도 못 하니까요. 이 모든 게 주님의 손에 달린 문제죠.”

After surgeries and tests, Jordan left the hospital. Once she got home, the Oleruds centered their lives around caring for her, learning why some parents say it should be labeled constant needs children, not special needs.

수술과 검사가 끝난 뒤, 조던은 병원 문을 나섰다. 집으로 조던을 데려온 뒤에도, 올러루드 가족의 삶은 조던을 돌보는 일을 중심으로 꾸려졌다. 왜 희귀병 어린이를 둔 부모들이 자기 아이들의 병을 ‘휘귀병’이 아닌 ‘늘 항상 보살핌을 요구하는 병’이라고 부르는지, 그 까닭을 올러루드 가족도 이해할 수 있었다.


"For the first two years," Kelly said, "it was a grind."

“처음 2년 동안,” 켈리의 말이다, “정말 너무너무 고된 일었어요.”

Jordan needed a feeding pump to receive water and nutrients, and the equipment required constant checkups. She couldn't even crawl then, so she needed help with any kind of movement. Every car ride, every trip out of the house, Jordan's safety never left their mind. Kelly estimates she and her husband got two or three hours of sleep nightly.

조던은 수분과 영양분 섭취를 위해 특별한 펌프를 필요로 했다. 그리고 이 장비들은 계속적으로 점검해 주어야 했다. 당시 조던은 기는 법조차 몰랐다. 그래서 조던을 조금만 움직이려고 해도 많은 손길이 필요했다. 차를 탈 때마다, 집밖으로 나설 때마다, 딸 아이의 안전은 항상 최우선 사항이었다. 켈리에 따르면, 당시 그녀와 남편은 하루에 2-3시간밖에 자지 못했다.

As much love as they poured out, they received little in return. Jordan couldn't recognize her parents, only staring blankly when John and Kelly were around.

두 부부가 쏟은 사랑에 비해, 돌아오는 건 너무도 적었다. 조던은 자기 부모조차 알아보지 못했다. 존과 켈리의 주변을 멍하니 응시할 뿐이었다.

The Oleruds focused on three things for Jordan to learn: walking, eating, and talking.

올러루드 부부는 세 가지를 집중적으로 조던에게 가르쳤다. : 걷기, 먹기 그리고 말하기.

Progress came -- and still comes -- year by year, not month by month. Milestones that would seem minuscule to most parents brought tears to the Oleruds: the first time Jordan peered into their eyes knowingly and smiled; the first time she crawled.

매해 조금씩 상태가 호전됐다. 그리고 여전히 호전되고 있다. 하지만 지난달과 이번 달을 비교하면 별만 차이가 나지 않는다. 대부분의 부모에게는 하찮게 보였을 획기적인 일들이 올러루드 부부의 눈시울을 적셨다. : 조던이 처음 부모를 알아보고 미소 지었을 때; 조던이 처음으로 기었을 때

While Jordan's improvement offered the Oleruds a chance to celebrate, caring for her never got easier. The good moments didn't make the bad ones go away.

조던의 상태가 호전됐다는 건 올러루드 부부가 축하해야 할 일임에 틀림없지만, 그렇다고 그 아이를 돌보는 일이 결코 쉬워진 건 아니었다. 좋은 것도 한 순간, 계속 힘든 일이 밀려들었다.

When she tries to eat solid food, she chokes because her body can't handle breathing and swallowing simultaneously. So the Oleruds mix vegetables with vitamins and administer the food through a tube.

처음으로 부부가 아이에게 일반 음식을 먹이려고 시도했을 때, 조던은 숨을 쉬지 못했다. 그 아이의 신체 구조로 삼키는 것과 숨쉬는 걸 동시에 하는 건 불가능했다. 그래서 올러루드 부부는 야채와 비타민을 섞어, 튜브 사이로 투입해주는 수밖에 없었다.

Jordan woke up one night gasping for breath, her respiratory system malfunctioning. Kelly rushed to her side as Jordan struggled to the point of exhaustion.

어느날 밤, 조던은 숨을 헐떡이며 잠에서 깨어났다, 호흡계에 이상이 온 것이었다. 금방이라도 숨이 넘어갈 것만 같았다. 켈리는 재빨리 딸 아이 곁으로 달려갔다.

Her body temperature shot to 105. She still couldn't breathe.

체온은 40.5도까지 치솟았고, 여전히 조던을 숨을 쉬지 못했다.

Kelly placed Jordan outside to cool her down, then sprinted upstairs to get a special steroid to conjure enough strength from Jordan for her to breathe until they reached the hospital. When Kelly headed back outside, Jordan was still fighting to live. As Kelly administered the steroid, she was shocked at what happened.

켈리는 조던을 밖으로 데리고 나가 열을 식혔다, 그리고는 2층으로 뛰어 올라갔다. 병원에 도착할 때까지 아이의 숨이 붙어 있게 만들어야 했다. 그러려면 조던에게 힘을 주기 위해 특별에 제조된 스테로이드가 필요했다. 켈리가 약을 들고 나왔을 때까지도 조던은 여전히 죽음의 문턱에서 싸우고 있었다. 조던에게 스테로이드를 먹이고 나서, 켈리는 믿지 못할 광경을 경험했다.

Jordan turned around and smiled.

조던이 뒤를 돌아보더니 웃음을 지은 것이다.

"I'm constantly amazed at her disposition," John Olerud said. "She's uncomfortable, she's having a hard time -- whether it's respiratory issues or just sick -- but yet, she's got a smile for you. I'm really blessed to have a child like her. Through all this tough stuff … I don't think I would be fun to be around. She smiles when she really shouldn't be smiling."

“전 항상 딸아이의 아픔을 보면서 경이로움을 느껴요.” 존 올러루드의 말이다. “그 아이는 불편해요,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죠. - 그것이 호흡기 계통의 문제건 그냥 아픈 것이건 간에 말이에요. - 하지만 딸아이는 우리 부부를 보고 웃어주곤 해요. 이런 아이를 가질 수 있다는 건 정말 축복스러운 일입니다. 물론 힘든 문제들이 많죠. 이런 상황으로 인해 즐거울 수는 없으니까요. 하지만 절대로 웃을 수 없는 상황에서도 딸 아이는 웃고는 해요.”

That emotion -- that joy intertwined with pain -- parents of special needs children confront is one of the reasons the Oleruds started the Jordan Fund in 2003. As a baseball player, Olerud had an opportunity to create awareness for special needs children and their parents. The strain the condition has financially and mentally on parents can be unbearable, and the charity would help them.

그 감정 -- 기쁨과 고통이 뒤엉킨 -- 이 올러루드가 2003년 희귀병 어린이를 위한 조던 펀드를 설립한 까닭 가운데 하나이다. 유명한 야구 선수로서, 올러루드는 희귀병 어린이와 그들의 부모들거 처해있는 상황을 널리 알릴 수 있는 좋은 위치에 있었다. 경제적으로, 그리고 정신적으로 부모들이 감당해야 할 부담은 참기 힘든 것이었고, 자선 단체들의 도움이 필요했다.

He started the organization in Seattle, figuring that would be home for life. Within a year, he was living 3,000 miles away.

처음에 그는 시애틀에서 시작했다. 거기가 삶의 터전이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1년도 못 돼, 그는 3000마일 떨어진 곳에서 살게 됐다.


Career decisions
In 2004, Olerud hit the first roadblock of his career. From his rookie year with Toronto in 1990, he'd known mostly success. A stellar defensive first baseman with a saccharine swing, Olerud helped the Blue Jays to two World Series. In 1993, he had one of the best offensive seasons of the '90s, batting a career-high .363 and mashing 24 home runs. Olerud played three years for the Mets, 4 1/2 years for the Mariners, and finished last season with the Yankees. Olerud came to the Sox as a .295 career hitter.

2004년, 올러루드는 자신의 야구 인생에 있어 처음으로 난관에 부딪쳤다. 1990년 토론토에서 데뷔했을 때부터, 그는 대체적으로 성공적인 시즌을 보냈다. 칼날 스윙을 갖춘 뛰어난 1루 수비수. 올러루드는 블루 제이스가 월드 시리즈 2연패를 달성하는 데 공헌했다. 1993년, 올러루드는 90년대를 통틀어 손꼽힐 만큼 좋은 타격 기록을 선보였다. 커리어 하이인 .363의 타율에 24개의 홈런을 몰아쳤다. 이후 올러루드는 메츠에서 3시즌을 뛰었고, 매리너스에서 세 시즌 반을 보냈다. 그리고 양키스에서 지난 시즌을 마쳤다. 올러루드가 보스턴에 합류했을 때, 그의 통산 타율은 .295이었다.

But 2004 was different. He hit .245 with just five homers through July, when the Mariners released him. For the first time in 14 years, he didn't show up to the ballpark in midsummer.

하지만 2004년은 달랐다. 그는 7월까지 .245의 타율에 5개의 홈런밖에는 기록하지 못했다. 결국 매리너스를 그를 방출했다. 14년만에 처음으로, 그는 한 여름에도 야구장에 나설 수가 없었다. 아직 시즌이 한창인데도 말이다.

He wasn't sure if his career was over until the Yankees contacted him about a week later. He didn't want to leave his hometown, but he had little choice.

1주일 뒤, 양키스 측에서 연락이 오기 전까지 그는 자신의 야구 인생이 끝났는지 아닌지 확신하지 못했다. 그는 고향을 떠나고 싶지 않았지만, 선택의 여지는 거의 없었다.

The move was the most difficult aspect, with all of Jordan's medical equipment and the concerns of moving her across country. The Oleruds even had to make cubes of Jordan's food and freeze them for the trip.

이사를 한다는 게 올러루드 가족에게 있어선 가장 힘든 문제였다. 조던의 모든 의학 장비들을 옮기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무엇보다 조던이 미주 대륙을 가로 지르는 여행을 해야 한다는 것이 걱정이었다. 심지어 올러루드 부부는 여행에 대비해, 조던의 음식을 네모나게 얼리기도 했다.

Once in New York, the Oleruds found an apartment quickly, and Olerud found a niche on the Yankees, serving as a backup down the stretch as he hit .280.

뉴욕에 도착하자마자, 올러루드 부부는 재빨리 아파트부터 구했다. 그리고 올러루드는 양키스의 틈새를 잘 매웠다. 백업 1루수로 출장 .280의 타율을 기록한 것이다.


It seemed Olerud had found a new home. One swing thrust his career back into jeopardy.

올러루드는 새로운 고향을 찾은 것 같았다. 하지만 딱 한번의 스윙이 다시 그의 야구 인생을 고난으로 밀어 넣었다.

In Game 3 of the American League Championship Series against the Red Sox, Olerud swung and missed. He crumpled to the ground in the batter's box, clutching his left foot. He thought his bat had struck his foot on his follow-through, creating the sharp pain.

레드삭스와의 ALCS 3차전, 올러루드는 헛스윙을 했다. 그리고는 타석에서 왼쪽 발을 움켜쥐며 그대로 주저 앉아 버렸다. 그는 팔로우스루 도중 자기 방망이로 발을 친 거라고 생각했다. 날카로운 고통이 찾아 들었다.

Olerud knows now that nothing hit his foot. Twisting his foot out of the dirt, he fractured his Lisfranc joint, the ligament where the big toe meets the instep. The Yankees misdiagnosed the injury, akin to an Achilles' tendon tear, calling it a bone bruise.

올러루드는 이제 아무 것도 그의 발을 때리지 않았다는 걸 안다. 먼지 속에서 발이 꺾이면서, 그의 발등 뼈와 발목을 이어주는 관절이 손상을 받았다. 엄지발가락과 발등을 이어주는 인대도 찢겨 나갔다. 하지만 양키스 측의 검진 결과는 오진이었다. 아킬레스건이 조금 손상되고 약간 삐끗한 정도라는 것이 양키스측의 검진 결과였다.

They told Olerud he could play, and he pinch hit in Game 7. Olerud says he might have been 50 percent, hobbling around so badly he could barely cover first base.

양키스에서는 올러루드가 뛸 수 있다고 말했다. 그리고 그는 7차전에 대타로 기용됐다. 올러루드는 컨디션이 50% 정도는 됐던 것 같다고 말한다. 그는 1루 수비를 보기엔 너무도 절뚝댔다.

Team doctors told Olerud he should heal in a week. Two weeks later, he felt no improvement. Having moved back to Washington, he visited a foot specialist in Seattle.

팀 닥터는 올러루드에게 1주일 정도 후면 괜찮아질 거라고 말했다. 하지만 2주 후에도 아무런 차도가 없었다. 워싱턴州로 다시 이사한 다음, 그는 시애틀에 있는 발 치료 전문가를 찾았다.

"How many stolen bases did you have last season?" the doctor asked Olerud. He laughed.

“지난 시즌엔 도루를 몇 개나 하셨죠?” 의사가 올러루드에게 물었다. 그는 그냥 웃었다.

"If that's how I was valuable to the team," Olerud said, "then it could be a career-ending injury."

“그게 팀에 기여를 하는 것이라면,” 올러루드의 말이다, “그것 때문에 야구를 그만둬야 한대도 상관없어요.”

The doctor, who spoke anonymously, said the injury would have ended Olerud's career if he waited much longer to have it properly diagnosed. Even with that, he almost had to call it quits.

익명을 요구한 담당 의사에 따르면, 조금만 더 올바른 처방이 늦게 내려졌대도 그는 선수 생명을 이어갈 수 없을 거라고 말한다. 올러루드 자신도 거의 은퇴 쪽으로 가닥을 잡는 수밖에 없었다.

Olerud needed surgery to repair his foot, and the Yankees weren't interested in a 36-year-old on crutches when the free agent deadline passed in December. Once again, Olerud found himself without a team. For months, he wondered if he'd play baseball again.

완치를 위해서는 수술이 필요했다. 하지만 36살의 부상중인 선수에 대한 양키스의 관심은 12월 FA 협상 데드라인까지였다. 다시 한번, 올러루드에게는 소속팀이 없었다. 몇 달 동안, 그는 자기가 다시 야구를 할 수 있을지 의심스러웠다.

"It's just kind of weird," Olerud said. "It's that uncertainty of not knowing, is it over? Should I start focusing on family stuff? Should I keep going? It's just that being in limbo, not knowing what's going to happen next, but assuming you'll get picked up. But are you just kidding yourself?"

“이상한 기분이었어요.” 올러루드의 말이다. “아무 것도 모르는 불확실함이었죠. 완전히 끝난 걸까? 이제 내 가족 문제만 신경을 쓰면 되는 걸까? 아니 계속할 수 있나? 다음에 무엇이 벌어질지 전혀 알 수가 없었어요. 갈림길에 선 기분이었죠. 하지만 누군가 절 필요로 할 거라고 믿었어요. 동시에 지금 나 자신을 속이는 건가, 하는 생각도 들었죠.”

He wasn't. The Red Sox contacted him at the start of spring training, needing a replacement for defensive wiz Doug Mientkiewicz. But Olerud still needed time before he could begin rehabilitation. The Sox stayed patient, and when the time came, Olerud reported to Fort Myers, Fla., for extended spring training.

그는 자신을 속인 게 아니다. 스프링 캠프가 시작되려고 할 때 레드삭스 측에서 연락이 왔다. 레드삭스는 수비 마술사 덕 민케이비치의 빈자리를 채워야 했다. 하지만 올러루드는 재활을 위해 좀더 시간이 필요했다. 레드삭스는 침착하게 기다렸다. 그리고 때가 됐을 때, 올러루드는 확장 스프링 캠프에 참가할 수 있다고 통보를 해왔다.

He rehabbed and practiced with players more than a decade younger than him, sweating in the Florida heat like a minor leaguer. No one would have blamed him for calling it a career, for moving back to Seattle with his family. But he had to know he didn't have too many line drives left in his bat before he stopped.

그는 10살도 더 어린 선수들과 어울려 재활 훈련을 받았다. 마이너 리거처럼 플로리다의 태양 아래 굵을 땀방울을 흘리며 말이다. 아무도 그가 은퇴를 늦추려 발버둥친다고 비난하지 않았을 것이다. 아무도 그가 시애틀로 가족과 함께 가시 이사한다고 비난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자기가 방망이 솜씨를 보여줄 수 있는 날이 그리 많이 남지 않았음을 알고 있다.

"You know, I had that good year in '93," Olerud said. "There's always the challenge to get back to that same level, I've got some bad mechanics, some bad habits that I'm trying to get out of. So there's always that challenge. I believe I can get back to that point. And it's driving me nuts that I'm not able to get it."

“제 최고의 시즌은 '93년이었어요.” 올러루드의 말이다. “물론 최고의 모습을 보이기 위해 해마다 노력하고 훈련하는 거예요. 타격 메카니즘에 문제가 있는 것도 사실이고, 나쁜 버릇도 들었어요. 그래서 항상 훈련을 통해 이것들을 바로 잡아야 하죠. 전 다시 예전 같은 모습을 보여줄 수 있어요. 내 속에서 넌 이제 더 이상 할 수 없다고 말하는 나약함과 맞서 싸우는 배짱이 필요하죠.”

Thankful parents
During the offseason, the most difficult of Olerud's career, John and Kelly underwent another life-changing experience. Kelly gave birth to Jessica, the couple's healthy 8-month-old daughter.

오프시즌 동안, 올러루드의 커리어에서 가장 힘든 시기에, 존과 켈리는 삶을 바꿀 만한 또 다른 경험을 했다. 두 부부 사이에 셋째 아이가 태어났다. 제시카는 이제 8개월이다.

Jessica amazes them. She can eat and breathe easily and crawl without effort. She can reach out and grab objects with her fingers, something Jordan still can't do.

제시카는 이 두 부부를 놀라게 만들었다. 제시카는 먹을 수도 있었고, 쉽게 숨쉴 수 있었으며, 노력 없이도 기어 다닐 수 있었다. 이 아이는 팔을 뻗을 수도 있고, 손가락으로 물건을 집을 수도 있었다. 이 모든 것들이 조던은 여전히 하고 있지 못한 일들이다.

"We're so thankful," Kelly said. "I had no idea what an amazing thing a healthy child was. You really gain an appreciation for what an awesome creation we are."

“우린 너무도 감사해요.” 켈리의 말이다. “건강한 아이란 얼마나 놀라운 것인지 미처 알지 못했어요. 우리 자신이 얼마나 대단한 창조물인지 알게 된다는 건 정말 감사해야할 일이에요.”

If you ask her parents, that's just what Jordan is. John calls her "a blessing" and Kelly says she's "a miracle." They're constantly surprised by her resiliency, amazed by her motivation to walk. She has the form down when John holds her up and walks behind her, she just needs the strength and balance. John is sure she'll walk someday, and he smiles when he thinks of that moment.

이 둘 두 부부에게 있어, 가장 대단한 창조물은 다름 아닌 조던의 존재 그 자체이다. 존은 그녀를 “은총”이라고 부르고, 켈리는 그녀를 “기적”이라고 부른다. 이 두 부부는 항상 그녀의 회복력에 놀라고, 걷고자 하는 의지에 놀란다. 존이 자신의 발등에 딸의 발을 얹고 걸음마를 옮길 때마다, 조던 역시 따라 걷는 움직임을 보인다. 이 꼬마 숙녀에게는 다만 힘과 균형이 필요할 뿐이다. 존은 딸이 금방 걷을 수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그리고 그 순간을 떠올릴 때마다 그에게는 웃음이 떠나질 않는다.

They're bewildered by Jordan's toughness, and never prepared for one of Jordan's beautiful, unlikely smiles.

올러루드 부부는 조던의 강인함에 놀라곤 한다. 그리고 조던의 아름다운, 그 진짜 같지 않은 미소는 언제든 새롭고 신비한 것이다.

Jordan smiles most around Garrett. John doesn't know why, but her older brother has a wonderful affect on her. She lights up when Garrett comes around, or when she plays in the living room with her tactile toys, scooting around the carpet.

조던이 웃을 때는 대개 가렛과 함께할 때다. 아빠는 그 이유를 모른다. 하지만 오빠가 이 여동생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끼치고 있다는 것만큼은 확실해 보인다. 가렛이 가까이 오면 조던은 환한 표정을 짓는다. 또 거실에서 올록볼록한 장난감을 가지고 놀 때나, 카펫 주위에서 보행기를 탈 때도 마찬가지다.

Although Jordan likes to hug Garrett, she likes to tease Dad. Olerud will walk up to Jordan, lean down, and say, "Hey Jordan. Can I give you a big smooch? Daddy wants to give you a big smooch." She'll look down and shake her head.

조던은 가렛이 안아주는 건 좋아하지만, 아빠는 곧잘 애가 타게 만든다. 올러루드가 조던에게 걸어가, 몸을 기울이며 말한다. “우리 공주님, 아빠가 뽀뽀 해줄까? 아빠는 너한테 너무너무 뽀뽀하고 싶은데.” 조던은 아래로 고개를 숙인 채, 그대로 설레설레 머리를 저을 것이다.

John chuckles as he relays the story. He's sitting in the dugout, having just completed a game of catch with his son with the Green Monster as the backdrop.

존은 그 얘기를 들려주며 신나게 웃는다. 그는 덕아웃에 앉아 있었고, 경기가 막 끝난 뒤였다.

He's thinking about the lessons he's learned raising Jordan, how much he's learned about suffering, his own and others'. He thinks back to the horrible moment on the doctor's table with the IV, and what he wanted to say to his daughter.

그는 자신이 조던을 키우며 얻게 된 교훈에 대해 생각한다. 그는 자기 자신과 다른 이들의 고통에 대해 아주 많은 것들을 배웠다. 항생제가 놓여 있던 진료대 위의 끔찍했던 순간들, 그리고 아마 그의 딸에게 말해주고 싶었던 것들에 대해서 그는 생각하고 있었을 것이다.

I'd love to tell you why we need to get these antibiotics in you, but even if I could explain it to you, you wouldn't understand. You've just got to trust me.

왜 네게 항생제를 주입해야 하는지 너무너무 말해주고 싶단다. 하지만 내가 그걸 설명해준대도 널 알아듣지 못할 거야. 넌 그저 아빠를 믿으면 된단다.

"Sometimes with our suffering, you look to God and say, 'God, this does not make any sense,' " Olerud said. "I'm getting hammered here, and you could change it. I'm sure he's looking at us saying, I can't tell you why I'm doing this. It is in your best interest, you just have to trust me.

“때로 우린 고통에 대해, 주님을 원망하며 이렇게 말할지도 몰라요, ‘신이시여, 이건 말도 안 되는 일이란 말입니다,’” 올러루드의 말이다. “난 해머로 맞은 것 같았어요. 하지만 우리 자신이 바꿀 수 있어요. 신은 우리를 보시며 말씀하실 겁니다. 내가 왜 이걸 하는지 네게 말해줄 수는 없다. 이 모든 걸 널 위한 일이란다. 넌 그저 날 믿으면 된단다.”

"It's in His control, and He's going to be able to work this for good somehow. You keep going, you keep working at it, you keep loving her and have faith that it's going to work, and this is all part of His plan, and that we're going to be able to help out other people."

“이건 신의 뜻입니다. 그리고 어떻게든 좋은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해 주실 거예요. 당신은 계속 하던 일을 하고, 문제를 풀기 위해 애를 쓰면 됩니다. 우리에게 있어선 계속해서 우리 딸을 사랑하고, 계속해서 신앙심을 잃지 않는 게 바로 그거였죠. 이 모든 건 신의 뜻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모두 다른 사람들을 도와줄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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