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는 스포츠가 공용어입니다.


❝스포츠에서 유일한 것이 승리라면 이기는 그 순간 다시 경합을 벌여야겠다는 욕구는 사라질 것이다. 그렇다면 마이클 조던과 로저 클레멘스가 나이 마흔에 계속 경쟁을 벌였던 사실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 '소크라테스 야구장에 가다' 中에서

다른 모든 종목 역시 마찬가지입니다만, 야구에서는 홈 어드밴티지의 의미가 특별합니다. 공격과 수비 타이밍이 완전히 갈려 있다는 점, 그래서 홈구장에서는 나중에 공격을 한다는 점은 홈 팀에게 있어 분명 상당히 유리한 점이라고 하겠습니다.

제가 한때 경기를 보는 툴로 애용했던 WP에 따르면, 1979년에서 1990년까지 벌어진 MLB 경기에서 1회초 무사, 즉 경기가 시작되는 시점에서 홈 팀의 승률은 .589에 달합니다. 홈에서 경기를 벌인다는 건 그만큼 유리하다 하겠습니다.

그럼 선수들이 홈에서 잘하는 원인은 무엇일까요? 1) 구장에 대한 친근감 ; 원정 팀보다 당연히 홈 구장의 특징에 대해 잘 이해하고 있을 겁니다. 그래서 그만큼 구장 환경에 맞춰 플레이하는 데에도 익숙해져 있을 것이고 말입니다. 2) 가족의 사랑 ; 아무리 호텔 요리가 맛있다고 해도, 아내나 어머니가 해주는 음식보다 나을 수는 없습니다. 길들여진다는 건 그만큼 무서운 일이니까 말입니다. 3) 베개 높이 ; 원정을 떠나 호텔에서 자야하는 경우, 베개 높이가 잘 맞지 않아 뜻밖에 컨디션 난조를 겪는 선수들이 많다는 제보가 있었습니다.

제가 각 구단 관계자 분들께 특별히 의뢰해 엑셀양과 데이트를 해본 결과에 따르면, 이 가운데 가장 중요한 영향을 끼치는 건 3)이라고 합니다. R-Square=.9800에 이르는 놀라운 수치였습니다. 그만큼 충분한 수면이 선수들의 성적과 얼마나 연관이 깊은지 확인할 수 있는 자료였습니다. 그런데도 '달리는' 선수들이 있었다니 새삼 놀라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일부 선수들은 참다못해 가방에 전용 베개를 챙겨 다니는 실정이라고 하니, 그 심각성이 어느 정도인지 알 수 있을 정도입니다.

또한 이런 증상은 투수보다 타자들에게서 좀더 빈번하게 발생한다는 사실 역시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베개 높이가 맞지 않으면 목 주변 근육에 무리가 갈 수밖에 없고, 이는 머리가 먼저 돌아가 공을 끝까지 보지 못하고 방망이가 뒤따라 나오거나 그 반대의 경우를 유발함으로써 타격 성적에 좋지 못한 영향을 끼친다고 합니다.

따라서 '달리기'가 타격 성적에 끼치는 영향이 이어, 이번에는 '베개 높이'와 타격의 상관 관계에 대해서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이를 통해, 소위 잠만보라 분류될 수 있는 선수들 또는 성격이 예민하고 까탈스러운 선수들을 골라낼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으로 전망합니다. (-/+로 표시된 건 홈/원정 RCAA 변화를 나타냅니다. RCAA는 리그 평균보다 RC라는 관점에서 몇 점이나 더 창출해냈는지는 보여주는 지표입니다.)


베개는 못 바꿔!

1. 서튼(현대) +38.14; 이 분은 안 그럴 것 같으신 분이, 의외로 까탈스러우십니다. 내년에도 수원 구장을 홈구장으로 써주신다면, 원하시는 베개 높이 말씀해주세요.

2. 데이비스(한화) +22.58; 대전/청주 이외에선 신 라면 구하기가 어렵던가요? 시장하기도 하고 베개 높이도 안 맞고 그랬던 걸까요?

3. 심재학(기아) +13.78; 부잣집 아드님이시니, 이 정도의 까탈스러움은 이해합니다.

4. 한규식(前 LG) +11.00; 한번 언급한 적 있지만, 두산과의 원정 경기를 포함한 잠실 구장에서는 타율이 .280, 그 밖의 구장에선 .175입니다. 잠실이 홈일 때는 .294 베개 하나 달라졌을 뿐인데.

5. 안경현(두산) +10.14; 얼핏 장난 잘 치고, 사람들을 유쾌하게 해주는 구석이 있으신 재밌는 양반들이, 뜻밖에 성격이 까칠한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안쌤이 그러실 줄이야.



우리집 베개를 바꿔야겠네.

1. 이대호(롯데) -27.01; 같이 사는 최준석 선수의 경우도 -4.92로 원정 경기에서 더 나은 성적을 올리지만, 이 정도 차이는 사직 구장의 드넓은 외야 때문이지 않을까요?

2. 김한수(삼성) -21.84; 삼성 선수단 서울 숙소가 어디죠? 호텔에서 베개 하나 챙기세요. 잠실에서 ; .367/ .409/ .517 vs 대구에서 ; .236/ .326/ .382

3. 송지만(현대) -16.45; 홈경기 GPA .265 / 원정 GPA .304 수원 구장 바로 앞에 교회도 많은데 왜 이러실까? 신앙심보다 앞서는 그 무엇, 설마 베개?

4. 임재철(두산) -14.81; 잠실이 타자에게 불리하다는 건 따로 말할 필요가 없겠지만, 사직에서 .313/ 문학에서 .324의 GPA를 찍으신 분이 잠실에서 .237은 좀 심하지 않습니까? 두산 팬 여러분, 베개 하나 선물해 드리세요.

5. 마해영(前 기아) -13.30; 광주에서 혼자 사셨죠? 이제 가족들과 함께 사세요. 꼭 친숙한 베개를 베고 주무셔야 합니다.



베개가 뭔 상관이래?

1. 양준혁 -0.30; 오랫동안 미혼으로도 성적을 올릴 수 있었던 비결. 내 베개는 내가 챙긴다. 그래도 이제 잘 맞는 베개 챙겨줄 베필감 만나셔야죠?

2. 김창희 +0.33; 베개를 잘 챙기는 능력만으로 극복하기에 우리의 FA 제도는 문제가 많습니다.

3. 전준호 +0.34; 발은 슬럼프를 타지 않습니다. 현대에서 멋지게 은퇴하고 코치하시길 바랬는데, 모쪼록 일이 잘 풀리길 바랍니다.



홈쇼핑 광고에서 자주 등장하는 것처럼, 그리고 우리가 실제 자주 느끼는 것처럼, 수면은 다음날의 컨디션에 중대한 영향을 끼칩니다. 그리고 수면에 큰 영향을 끼치는 건 바로 또 베개고 말입니다. 옛말에도 고침단명(高枕短命)이라 해서 베개 높이의 중요성이 언급되고 있습니다. 이런 인과과정을 따라가다 보면, 선수들의 컨디션과 성적, 그리고 베개 높이의 인과과정은 너무도 자연스레 드러나게 마련입니다.

이번에 조사를 해보니, 운동 하느라 바빠서 혹은 기타 다른 이유로 자기에게 맞지 않는 베개를 베고 자야하는 선수들이 너무도 많은 것 같아서 안타까웠습니다. 모쪼록 구단 관계자 분들은 좀더 세심하고 꼼꼼한 배려로 선수들의 베개 높이를 잘 조절해 주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자신이 정말 아끼는 선수가 있거든, 선호하는 베개 높이를 조사 그에 알맞은 베개를 선물해주는 것도 선수의 성적 향상에 큰 도움이 될 건 너무도 자명한 일입니다.

누군가의 팬을 자처하신다면, 오늘 그 선수가 선호하는 베개 높이를 한번 알아보는 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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