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구단에서 다른 곳에 외국인 선수들 숙소를 제공하는 모양인데, 예전엔 외국인 선수들이 제가 사는 아파트 단지에 살고는 했습니다. 홈플러스 앞 횡단보도에서 자연스레 용병 선수들을 만나서 악수를 청했던 기억들이 새삼 떠오릅니다. 그럴 때마다 안타까웠던 건 당시 제 주에엔 저 말고 아무도 그들을 알아보는 이들이 없었다는 점이었습니다. 덩치 큰 외국인이라면 주목받기 참 쉬웠을 텐데 말입니다. 프로야구 챔피언을 노리는 팀에서 뛰는, 프로 야구 판 전체를 통틀어서도 1, 2위를 다투는 수준급 용병들이었는데 말입니다.
어쩌면 제게 외국인 선수들에 대한 이미지는 겨우 그 정도였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말 그대로 용병 말입니다. 저는 이 낱말에 대해 사실 거의 거리낌이 없었습니다. 스포츠에서 군사 용어를 쓰는 걸 너무 아무렇지도 않게 받아들이고 산 모양입니다. 그래서 그런지, 정말 딱 그 정도였습니다. 즉시 전력감으로 각 팀의 구멍을 채워주는 외국인 노동자. 미국 리그, 일본 리그 등지에서 함량미달로 판명되어 떠돌고 떠돌다 우연히 한국 스카우트의 눈에 든 사나이들.
2000 한국 시리즈의 영웅, 퀸란이 LG로 간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조금 아쉽기는 했지만 '아, 어떻게 저런 선수를 내보내냐'하는 생각 들지는 않았습니다. 2000년 한국 시리즈 7차전에 퀸란 선수가 없었더라면 분명 우승하기 힘들었을 텐데도 말입니다. 쿨바, 스트롱, 토레스. 이런 선수들의 이름도 잊고 산 지 오래였습니다. 그리 오래 한국 무대에서 활약을 보이지 않았던 용병 선수들은, 제가 응원하는 팀에서 뛰었는데도 아, 이런 선수도 있었어? 하는 생각이 들 때조차 있었습니다. 국내 선수들은 팬 북 구석에 조용히 숨어 있는 선수조차 놓칠 새라 그렇게 조심스러워했으면서 말입니다.
그런 제게 지난 6~7월에 기아 팬들이 보여주신 리오스 선수에 대한 애정은 실로 놀라울 정도였습니다. 객관적인 성적을 들이미는 타 팀 팬들의 목소리는 그분들께는 정말 아무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것이 객관적이냐 그렇지 않느냐는 중요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어찌 사랑에 객관성이 개입되고, 어찌 사랑에 숫자 몇 개 따위가 큰 의미를 지닐 수 있겠습니까. 그분들은 정재공 단장을 비롯한 기아 프론트진에 대한 배신과 분노에 치를 떨고 있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결과가 드러나지 않았던 대체 용병의 수준도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그렇게 그분들은 리오스를 사랑했던 것입니다. 아니, 리오스에게 중독돼 있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저는 그런 기아 팬들의 모습 속에서, 저도 모르게 리오스 선수에게 중독돼 버렸습니다. 김상훈 선수에게 달려가 힘껏 안기던 그 순간, 저도 모르게 눈물이 핑 돌았습니다. 작년까지 수준급의 활약을 보였지만, 올해는 기록상 철저하게 무너진 그저 그런 외국인 선수에 지나지 않았던 그 선수에게 말입니다. 두산으로 옮겨 치른 첫 경기를 보고도, 잠실 밖에서 던지는 걸 보고 나서야 믿겠다고 함부로 말을 내뱉던 기억이 납니다. 하지만 이제 그가 잠실/사직에서만 던졌다는 이유로 그의 기록을 폄하하는 일 따위는 제게 없을 것입니다.
그래도 엑셀 양이 심심해 하니 ^^; 별 수 없이 기록 놀이는 잠깐 하겠습니다. 리오스 선수도 이 정도는 용서해 주리라고 봅니다. ㅎㅎ
먼저, 리오스 선수가 이번 시즌 전체에 걸쳐 보인 활약입니다.
어느새, 방어율이 3점대까지 내려왔습니다. 특유의 내구력 또한 여전한 관계로 완투 2번을 포함, 경기당 평균 6이닝 이상을 소화해 주면서 무려 164 2/3이닝이나 먹어줬습니다. 승수도 두 자릿수, 삼진도 100개를 넘어섰습니다. 시즌 초반, 기록에(만?) 적용된 부진만 아니었다면 예년 못지않은 굉장한 활약이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그럼 기록을 쪼개서 한번, 기아 시절과 두산 시절을 나누어 보겠습니다. (미리 말씀드리지만, 기아 팬 여러분, 마음 상해하지 마세요.)먼저, 기아 시절;
다소 암울해 보였던 게 사실입니다. 방어율은 5점대에, 승보다 패가 훨씬 많았고, 9이닝당 1.35개의 홈런을 허용할 정도로 많은 홈런을 허용하기도 했습니다. 사사구도 14개, 피안타 140개로 각종 불명예(?) 기록 상위권을 차지하고 있던 게 사실입니다.
그랬던 그가 두산으로 와서 이렇게 바뀌었습니다.정말, 덜^3입니다. 이걸 누가 같은 선수의 기록이라고 보겠습니까? 물론, 위에서도 말씀드렸다시피, 리오스 선수 두산 이적 후에 국내에서 가장 넓은 잠실과 사직에서밖에 등판하지 않았습니다. 그렇다고 해도 이건 정말 너무도 판이하게 달라져 버린 것 같은 기분입니다. 무엇이 선수를 이렇게 바꿔놓았을까요?
DIPS를 통해, 한번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DIPS를 믿지 않으신다면, 위에 기록표만으로 충분하시리라고 봅니다. 사실 이게 정말 맞다고 저도 100% 확신하는 건 아닙니다. 혹시라도 DIPS에 대해 추가 설명이 필요하신 분은, 제가 예전에 작성했던 DIPS를 통해 본 손민한 Vs 배영수를 참조하시면 되겠습니다.먼저, 기아 시절 기록을 토대로 한 DIPS 표입니다.
외국 사이트에서 흔히 Three True Outcomes라고 부르는 홈런, 삼진, 볼넷의 수치는 변화가 없습니다. 하지만, 피안타를 보시면 10%가 줄어들었다는 사실을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덕분에 차이는 얼마 나지 않지만, 이닝에서도 손해를 봤죠. 실점도 20% 가량 늘었습니다. 방어율에서 1점도 넘는 차이를 봤으니 안타깝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DIPS에 충실하자면, 그만큼 수비진이 도와주질 못한 거겠죠.
이어서 두산으로 옮긴 이후 DIPS 표입니다.;어떻습니까? 마찬가지로 홈런, 삼진, 볼넷의 수치는 그대로입니다. 하지만 다른 거의 모든 부분은, DIPS가 가리키는 기록보다 나은 수치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피안타는 50%나 줄여줬습니다. 실점도 55%나 더 막아줬습니다. 덕분에 더 긴 이닝을 소화할 수 있었고, 방어율도 거의 절반 수준으로 유지할 수 있었습니다.
이 둘을 종합해, 현재까지의 전체 성적을 DIPS로 한번 보겠습니다.
어떻습니까? 이대로만 됐다면…
무엇이 이런 차이를 만들었을까요? 이를 확인하기 위해 기아와 두산의 DER을 한번 보겠습니다. 어제까지 기아는 .680, 두산은 .700의 DER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원칙적으로는 리오스가 기아에서 활약하던 때의 DER, 그리고 두산으로 옮긴 이후의 DER을 각각 구해야 하겠으나, 팀의 일반적인 성향을 알아본다는 측면에서 시즌 전체 기록으로 확인해 보겠습니다. (사실 일일이 나누기의 귀차니즘으로 -_-)
투수들이 허용한 콘택트퍼센트(CT%)는 어땠을까요? 두산 투수진을 상대한 타자 가운데 69.6%에 해당하는 1956명의 타자가 공을 때려냈습니다. 기아 상대 타자들은 68.6%(1952명). 그럼 아웃 카운트는 어떻게 됐을까요? CT%에 DER을 곱해주면 두산은 총 1369개의 아웃 카운트를 잡아낸 반면, 기아는 1328개에 그쳤습니다. 41개 차이입니다. 타자는 네 타자밖에 차이가 나지 않았는데 말입니다. 수비진 도움이 그만큼 부족했다는 얘기일 수도 있습니다. 수비 때문에 투수들이 13 1/3이닝을 더 던져야 했는지 모른다는 뜻입니다. 거의 한 경기 반입니다.
이는 DIPS에 대한 올바른 접근법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투수들이 라인 드라이브 타구를 쭉쭉 맞아버렸다면, 수비수들로서도 어쩔 수 없는 일이었을 테니 말입니다. 또 리오스 선수가 두산 이적 이후 드넓은 구장에서만 등판했다는 사실도 분명 어떤 식으로든 기록 향상에 도움을 주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확실한 건 DIPS를 통해 기대됐던 것 이상의 성적향상이 실제로 이루어졌다는 점입니다.
그 원인은 심리적인 것 때문일 수도 있고 '쿠세' 조정 때문일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찐짜 이유가 무엇일까요? 팀을 옮긴 이후에도 수그러들지 않는, 그리고 새 팀으로 옮긴 이후 더욱 늘어난, 리오스 선수의 팬들이 보내주는 열렬한 성원 때문이라도 믿고 싶습니다. 그것이 야구팬으로서 할 수 있는 유일한 대안임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실, 횡단보도에서 만난 그 어떤 용병에게도, 악수를 청하기는 했지만, 사인을 부탁한 적은 없습니다. 하지만 확실한 건, 리오스 선수는 찾아가서라도 꼭 사인 한 번 받고 싶은 선수라는 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