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는 스포츠가 공용어입니다.


❝스포츠에서 유일한 것이 승리라면 이기는 그 순간 다시 경합을 벌여야겠다는 욕구는 사라질 것이다. 그렇다면 마이클 조던과 로저 클레멘스가 나이 마흔에 계속 경쟁을 벌였던 사실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 '소크라테스 야구장에 가다' 中에서

야구 선수가 필드에서 할 수 있는 것 다섯 가지뿐이다. - 치기, 달리기, 던지기, 잡기, 세게 치기. 한때 야구판에서 선수를 스카웃할 때 불문율처럼 여겨졌던 5-tool에 대한 얘기입니다. 우리식으로 말하자면, 공수주 삼박자를 두루 갖췄다는 것과도 일맥상통하는 얘기일 것입니다. 한때, 5-tool하면 빼놓을 수 없는 선수가, 텍사스 / 신시네티 레즈의 유망주 루벤 마테오 선수였죠. (네, LG에서 뛰다 가버린 그 마테오 맞습니다. -_-)

요즘은 그걸 '툴'로서 볼 수 있느냐 하는 논란거리가 존재하기는 합니다만, 이른바 ‘머니볼’로 대변되는 오클랜드 에이스의 성공을 바탕으로 소위 플레잇 디서플린(Plate Discipline)이란 것에 대한 접근이 이뤄지고 있는 실정입니다. 이걸 툴이라고 인정한다면, - 치기, 달리기, 던지기, 잡게, 세게 치기였던 툴 목록에 참기가 추가된 거라고 할 수 있겠죠. 말하자면, 타석에서 얼마나 볼을 골라내고 끈질기게 승부를 해주느냐, 하는 점이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이걸 알아볼 수 있는 가장 좋은 자료는 무엇일까요? 개인적인 판단으로는, 상대 투수에게 몇 개의 볼을 던지게 하느냐, 하는 점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직관적으로 느끼고 있는 것처럼, 상대 투수와 유난히 끈질긴 승부를 펼치는 선수들이 있죠. 불리한 볼카운트에 몰리는 걸 두려워하지 않고, 끊임없이 스트라이크 존으로 들어오는 공을 커트해 내면서, 자기가 원하는 코스의 공을 노려치는 선수, 혹은 결국 볼넷으로 걸어서 1루에 나가는 그런 선수들 말입니다.

하지만, 당연히 예상하시는 대로, 우리에겐 그런 자료가 없습니다. 하지만 없다고 해서 실망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 ^^ 이 참에 KBO 한 번 더 욕하고 지나가는 거죠. 한편으로 생각해 보면, 각 스포츠 케이블 채널도 사실 반성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ESPN.com도 원칙적으로는 방송사 사이트 아니던가요? (물론, 세이버쟁이들의 놀이터 같다는 생각이 더 자주 들긴 합니다만. ㅎㅎ) 자기들 방송할 때 어차피 쓰는 자료들, 좀 공개해주면 덧난답니까?

그래서, 방향을 좀 다른 쪽으로 잡아 보도록 하겠습니다. 상대 투수에게 공을 많이 던지게 하는 건 여러모로 우리 팀에게 유리하게 작용할 것입니다. 하지만 기왕이면 다홍치마, 긴 승부 끝에 안타나 볼넷 등으로 출루에 성공한다면 그 효과는 더욱 배가되겠죠. 이를테면, 13구 승부 끝에 내야 플라이를 치는 건, 투수의 힘을 빼놓는 데는 성공했을지 모르겠지만, 타자 관점에선 ‘내가 졌다.’하는 생각이 드는 것도 사실일 것입니다. 하지만 결국 안타를 뽑아낸다면 더더욱 짜릿한 희열을 맛볼 수 있을 것입니다. 볼넷의 경우에도 투수는 두세 배 힘이 더 빠지겠죠. 홈런은 말할 것도 없을 겁니다.

타자의 타석당 투구수를 구할 수가 없다면, 이런 식의 접근을 통해 타자의 끈질김을 측정해 볼 수 있지 않을까, 하고 한번 틀을 세워본 겁니다. 원리대로 접근하자면, 투수에게 많은 공을 던지게 하는 것이 어떤 효과를 유발하는가, 를 알아봐야 하겠지만, 거꾸로 이런 효과를 불러 일으켰다면 투수가 공을 많이 던진게 아닐까, 하는 쪽으로 접근을 해보자는 것입니다.

우선적으로 알아볼 것은, CT%(Contact %)입니다. 말 그대로 전체 타석 가운데 타자가 공을 때려내 플레이를 만들어 낸 비율입니다. (TPA - SO - BB) / TPA. 그러니까 전체 타석에서 삼진 / 볼넷 등을 제외한 비율이 되겠습니다. (사사구의 경우, 타자의 선택이 아니라는 판단으로 고려하지 않았습니다.) 일반적으로 볼을 많이 보는 타자들이 삼진과 볼넷이 다른 타자들에 비해 더 많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 시도해 본 접근법입니다. (지난 번에, young026님께서 투수의 투구수에 있어서 삼진은 투구수가 늘어나는 원인이 아니라고 하셨는데, 타자 시각에서는 어떤지 지적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먼저 CT%가 높은 선수들의 명단입니다.



두산 선수들의 이름이 6명이나 포함되어 있네요.

이어서 CT%가 낮은 선수들입니다.



삼진이 많거나 볼넷이 많거나, 둘 다 많거나 여기 들어 가 있겠죠?

하지만, 이 비율은 초구에 공을 때렸는지, 17구째에 때렸는지를 나타내 주지는 못합니다. 그리하여 이번에는 이 비율을 한번 거꾸로 접근해 보겠습니다. 즉, 전체 타석에서 볼넷과 삼진이 차지하는 비율을 알아보는 것입니다. ( BB + SO ) / TPA 원래 계획했던 대로 접근해 보는 것입니다. 따로 표는 안 구해 드려도 되겠죠? 상/하위를 바꾸면 그대로입니다. -_-

여기서 잠깐, Plate Discipline을 강조하는 이유가, 삼진을 많이 먹으라는 건 아니겠죠? (물론 세이버쟁이들에게 삼진 아웃은 다른 아웃과 마찬가지로 그냥 아웃 카운트 하나일 뿐입니다.) 원하는 투구가 들어올 때까지 공을 기다렸다가 안타를 만들어 내거나, 볼넷을 골라 나가는 데 그 목적이 있을 것입니다. 그럼 볼넷을 골라내는 건 쉬운 일일까요, 어려운 일일까요?

8월 23일까지 투수들의 평균 P/PA는 3.86입니다. 타자들의 평균 P/PA도 3.86이겠죠. 평균적으로 타자들이 공을 본다면, 절대 볼넷은 얻어낼 수 없는 수치입니다. 자료만 있다면, 볼넷과 삼진을 당하지 않을 때는 공을 몇 개나 기다리는지 알아보는 것도 좋은 접근법이 될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만, 패스 ^^; 따라서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마지막 접근법은 볼넷 비율을 통해서 타자의 참을성에 대해 접근하는 것밖에는 남아 있지 않습니다. 순전히 개인적인 판단으로, 이게 타자의 플레잇 디서플린을 강조하는 가장 중요한 까닭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럼 위에서 살펴 본 자료에서 삼진을 제외하고 BB%만 보겠습니다. (BB - IBB) / TPA 이렇게 됩니다. 고의사구는 타자의 플레잇 디서플린이 반영됐다기보다 수비측에서 선택한 결과물이라는 판단으로 제외했습니다. (물론, 고의적으로 보이지 않는 고의사구들도 존재합니다만, 그걸 일일이 걸러내길 바라는 건 무리라고 생각하시죠?)

BB%가 낮은 선수들입니다.



정수성 선수, 1번 타자 하려면 이래선 곤란해요!

BB%가 높은 선수들 ;



봐요, 형은 여기 있잖아요.

다음 단계로, 이렇게 얻어진 비율을 실제 볼넷수와 곱했습니다. 지난번에 올린 게시물 가운데, 지난 10년간 리그의 삼진을 쫓다.에서 K Point를 구했던 것과 마찬가지 접근법입니다. 굳이 제 개인적인 접근법을 밝히자면, 적은 타석에서 볼넷을 많이 얻어내는 선수와 비율을 작아도 누적된 볼넷 수치가 많은 선수들의 균형을 맞춰주기 위함입니다.

BB Point가 낮은 선수들 ;



정수성 선수, 1번 타자 하려면 이래선 곤란해요!(2)


BB Point가 높은 선수들 ;



봐요, 형은 여기 있잖아요.(2)


자, 그럼 다시 삼진 얘기로 돌아가겠습니다. 타석에서의 참을성과 연관이 있는 또 다른 수치는 무엇이 있을까요? 바로 선구안입니다. 볼/스트라이크를 구분하는 능력이 좋을수록 삼진은 더 적고, 볼넷은 더 많이 얻겠죠. 그래서 위에서 구한 BBP에 BB/SO 비율을 곱해서 BBP+를 구해봤습니다.

BB Point+가 낮은 선수들 ;



클리어, 펠로우, 라이온 -_-;


BB Point+가 높은 선수들 ;



김재현 선수, 두둥!

그럼 이 수치는 어떤 기록과 가장 연관성이 높을까요? 그냥 직관적으로 판단하기에 순수 출루율(OBP-AVG)와 연관이 있지 않을까 싶었습니다. 상관관계(r)가 75.5나 나옵니다. 역시 높군요.

사실, 제가 밝히고자 했던 작업은 'P/PA가 많은 타자들이 어떤 면에서 좋은 활약을 보일까'하는 점이었습니다. 하지만 그 자료가 없어서 '어떠한 방식으로 타자의 참을성을 평가할 수 있을까'하는 쪽으로 진행한 것입니다. 김재현 선수는 정말 다른 타자들을 압도할 만큼 참을성이 좋을까요? 정말 투수들에게 많은 공을 던지게 만들까요?

그러리라는 추측을 남긴 채 글을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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